고창의 의로운 닭싸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부안의 고등학교에서 강의 의뢰가 왔다. 1년 전 본지에 ‘고창의 외로운 닭싸움’이라는 글에서 부안에 있는 동우팜테이블 자회사 ‘참프레’ 도계장에서 날아오는 악취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해도 지역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는 인연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2020년 4월, 부안군과 갯벌을 나누고 있는 인근 고창군에도 같은 회사의 닭, 오리 가공 공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으로 고창군은 발칵 뒤집혔다. 고창일반산업단지에 입주 계획을 밝힌 동우팜테이블 도축장은 부안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다. 하루에 84만 마리의 닭, 오리를 잡을 수 있는 규모였고, 만약에 세워졌다면 아시아 최대의 가금류 도축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유기상 전 고창군수 재임 당시 고창군과 동우팜테이블은 주민들과 상의 한 번 안 하고 그저 1500억 원 규모의 대기업 투자유치와 주민 1000명 고용이라는 말만 크게 부풀렸다. 이에 주민들은 고창군청 앞마당에는 도축장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과 천막을 치고 긴 싸움을 이어갔다.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 위치한 고창산업단지는 처음부터 주민과 자연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유기물이 풍부한 ‘문전옥답’으로 무얼 심어도 잘 자라는 농토였다. 하지만 농사로만 먹고살기 힘들다며 기업을 데려오자면 옥토라도 밀어 산업단지를 만들자 할 때부터 꼬인 일이다. 축구장 90개 면적으로 터를 닦아 놓았건만 막상 들어오겠다는 기업이 없어 투자는 지지부진해지고 한동안 풀만 무성했다. 여기에 빤한 유치권분쟁까지 벌어지면서 고창산단은 지역의 최대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환영받는 시설이 아닌 도축장을 어디에 세울지 헤매던 동우팜테이블이 고창산단에 들어오겠다 하니 전 고창군수와 몇몇 공무원들이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이 사업은 3년을 끌다 지난 6월 30일 엎어졌다. 동우팜테이블은 표류하던 이 사업에 손을 떼겠다 공시하면서 사업은 백지가 됐다. 6·1지방선거에서 도축장 건립에 반대 의견을 내건 후보가 현역 군수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확실한 민의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고창군 산단에는 도축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는 조항을 바꿔서라도 무리하게 입주시키겠다는 강짜를 부렸던 탓이다. 여기에 전북환경청도 환경보전 방법을 강구하라며 두 번에 걸쳐 서류를 돌려보낸 이 사업에 끝까지 목을 걸었던 우매함도 한몫했다. 도축장이 아닌 ‘육가공시설’일 뿐이고, 기업 유치로 고창도 잘 살아봐야지 않겠느냐는 전 군수의 측근들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고창에 물 많이 쓰고 피 튀기는 도축장을 어떻게 짓느냐며 반대하는 주민들이 3년 동안 얼굴을 붉혀왔다. 주민들 다수가 노인인 농촌에서 금방 밀리고 말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 저항은 3년이나 지속되었고 구순의 할머니들이 삭발까지 하면서 도축장을 막아냈다. 할머니들은 자신의 생은 얼마 남지 않았어도 깨끗한 바지락이 나오는 고창 갯벌과 복분자, 수박이 자라는 땅을 물려주고 싶어 머리카락에 가위를 댔다. 이 장면은 1970년대 인도 정부가 돈도 벌고 전쟁에 대비하겠다는 명분으로 아름드리나무를 베려 하자 나무를 끌어안고 저항한 인도 여인들의 ‘칩코운동’의 장면이기도 했다.

폐기물 소각장이나 도축시설, 송전탑과 채석장, 원자력 발전소 같은 시설들은 농어촌으로 몰려가고 주민들은 속수무책 옥답과 강과 바다를 뺏긴다. 지역발전의 이름으로 혹은 기피 시설이라도 받아들여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하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독배를 받아든다. 그래도 고창 주민들의 ‘외로운 닭싸움’은 ‘의로운 닭싸움’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지난 3년, 긴 시간 싸움을 이어오면서 많이 지쳐 이 운동을 이끌던 이들이 몸과 마음이 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디 고창 갯벌의 바지락 안주에 복분자술 한잔 나누며 지난 시간을 잘 다독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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