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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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사람을 평가하는 일 관중은 춘추시대에 제나라 환공을 첫 번째 패자(者)로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힘에 의한 패도가 아니라 덕에 의한 왕도를 이상적인 정치로 추구해온 유교와 성리학의 관점에서 소환된 관중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150여년 뒤인 공자의 시대에 이미, 관중은 자신이 모시던 공자 규를 환공이 죽였을 때 따라 죽지 않고 오히려 환공을 도왔다는 행적 때문에 인(仁)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지목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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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말의 품격 맹자는 말을 아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치우친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언가에 가려 있는 것이고, 지나친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이 어딘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리에 맞지 않는 말에서 그 사람이 보편적인 상식을 외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빙빙 돌리는 말에서 논리가 궁색해졌음을 간파할 수 있다고 했다. 맹자는 바로 그런 말들이 결국 정치를 해치고 많은 이들의 삶을 망가뜨리게 된다는 점을 준열히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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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칼럼 ‘윤석열 대통령’과 전작권 환수론의 역설 작전통제권은 한 나라의 군사주권을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용어 대신 ‘전시에 군대의 작전을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라는 용어를 흔히 쓴다. 이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작전통제권 환수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음에도, 공약 실천 과정에서 작전통제권 환수를 꺼리는 분위기에 밀려 궁여지책으로 작전통제권을 전시와 평시로 나누면서 나온 말이다. 무언가 환수했다는 명분을 찾기 위해 평시작전통제권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1994년 12월 한미연합사로부터 이를 되찾아왔다. 그러나 작전통제권의 요체가 전쟁 발발에 대비하는 것인 만큼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빛 좋은 개살구만도 못하다. 정작 전작권 환수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많은 이들이 자주 국가로서 군사주권의 온전한 행사를 위한 작전통제권의 환수를 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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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어지러운 군주와 어지러운 나라 모든 게 멈췄다. 민생도, 의료도, 외교도, 교육도, 기술경쟁력도, 어디 하나 막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동안 얼마나 애써서 싹틔워 보듬고 키워온 것들인데, 이렇게 동시에 총체적으로 주저앉혀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일부는 저성장 고령화로 접어들며 어느 정도 예견된 위기이고 책임을 특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난제들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하나하나 조심스레 풀어나가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독선과 아집에 가득 찬 통치자가 마치 그 모든 일의 선악과 시비를 쾌도난마로 가를 수 있기라도 한 듯이 계엄이라는 황당무계한 카드를 내던진 순간, 그나마 해결 가능성조차 모조리 막혀 버리고 대한민국은 동맥경화의 마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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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아름다운 풍경 많은 현인들이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를 말해왔다. 적절한 근거와 치밀한 논리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때로 시적인 몇 마디 말에서 더 깊고 길게 마음을 울리는 깨달음을 만나기도 한다. “솔개는 하늘에 닿도록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마음껏 뛰노네.” <시경>을 인용한 이 <중용> 대목도 그렇다. 세상의 이치는 누구나 볼 수 있게 어디에나 드러나 있지만 그것을 알아볼 눈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각득기소(各得其所)’, 각자 제 살 곳을 얻어 즐거움을 누리는 솔개와 물고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 내 앞에 놓인 사소한 일상에서 그 무엇보다 크고 심원한 사람의 도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시적 언어만이 담을 수 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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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레거시의 추억, 혹은 쓸모 사회의 흐름에 따라 언어가 변화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새 어휘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기존 어휘의 뜻이 분화 혹은 확대되기도 한다. 어느 날 급격하게 추락하는 운명을 맞는 어휘도 있다. 우리말은 아니지만 요사이 부쩍 많이 쓰이는 ‘레거시(legacy)’가 그런 예다. 원래 레거시는 법적으로 인정받은 유산을 뜻한다. 고인은 가고 없지만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듯이 도움을 주는 것이 유산이다. 점차 과거의 일이 현재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상징하는 말로 의미 영역을 넓혀 갔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레거시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를 규정하는 요소로 사용됐다. 어제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오늘이 없듯이 내일 역시 오늘의 집적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선한 가치를 지닌 레거시야말로 우리가 후손에게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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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뉴스 안 봐도 되는 세상 설이 지나고 입춘도 지났으니 영락없는 새해, 새봄이다. 요즘은 누구나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로 설 인사를 건네고는 하지만, 가족과 친지가 모인 자리에서 손아랫사람이 세배하면 어르신이 덕담을 건네는 오랜 풍속이 있다. “새해에는 승진했다지.” “새해 돈을 엄청 많이 벌었다며?” 축하하는 과거형의 말에 더욱 강한 소원을 담아 복을 빌어주고는 했다. 입춘에 문이나 기둥에 써 붙이는 춘첩 역시 복을 비는 덕담이 주를 이룬다. 잘 알려진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외에도 부귀와 장수, 풍년을 기원하는 다양한 글귀들이 내걸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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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구차함 구차하다는 말에 사용되는 ‘구(苟)’는 풀이름이었는데 음을 빌려 ‘진실로’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글자의 더 이른 자형인 갑골문을 보면 머리 장식을 한 사람이 꿇어앉은 모양이다. 양을 토템으로 섬기던 종족이 상나라에 ‘진정으로’ 굴복하는 것을 뜻하는 데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구차해진 모습을 담은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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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슬픔과 분노의 연하장 지독한 분노와 슬픔 가운데 새해 인사를 띄웁니다. 최고 권력자가 저지른 난동이 국민의 일상을 앗아가고 나라 살림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것만으로도 참기 어려운데, 다툴 여지조차 없어 보이는 사태를 지지부진한 정쟁으로 끌고 가는 추악한 모습들을 연일 목도하면서, 분노의 게이지는 이미 한계를 넘은 지 오래입니다. 그 위에 벌어진 비극적인 참사 소식에 온몸과 마음이 슬픔으로 떨려 옵니다. 집단 우울증에라도 걸릴 것 같은, 가혹한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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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탄핵에서 협상의 정치로 조선은 탄핵의 나라였다. 조선왕조실록에 탄핵(彈劾)이 463번 언급되고, 유의어인 대론(臺論), 거핵(擧劾), 탄론(彈論), 대탄(臺彈) 등을 합치면 1852건에 이른다.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신진 관료들을 대간(臺諫)으로 임명하고 면책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거침없는 직언의 길을 보장해 주었다. 이마저도 당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면이 있지만, 적어도 왕이나 권세가의 폭주를 막는 제도적 기능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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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묵은 술, 오랜 지혜 중국의 명주 가운데 하나로 ‘루저우라오쟈오(瀘州老)’가 있다. 루저우는 예로부터 술로 유명해서 주성(酒城)이라고 불려온 고장이고, 라오쟈오는 이곳에 있는 오래된 교(), 즉 술을 발효시켜 저장하는 ‘지하 광’을 말한다. 1573년에 만들었다는 궈쟈오(國)가 남아 있어 더욱 유명하다. 수백 년 묵은 발효로만 낼 수 있는 깊은 향을 지녀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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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성명의 의미 기원전 710년의 이야기다. 노나라 군주 환공이 송나라 대부 화보독이 보내온 대정(大鼎·진귀한 솥)을 받았다. 사욕으로 난을 일으켜 자기 군주를 갈아엎고 주변 국가를 무마하려는 뇌물이었다. 이를 본 노나라 대부 장손달이 환공에게 간언했다. “군주란 도덕을 밝히고 사악함을 막아서 백관을 감독하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하더라도 백관이 잘못을 범할 우려가 있으므로, 성명으로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임금 자신이 덕을 버리고 옳지 못한 자를 비호해서야 장차 백관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