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만든 영상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 하늘이 만든 영상

봉준호 감독의 2006년작 <괴물>은 독특한 서사 구조와 사회비판적 메시지로 장르를 넘어서는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러모로 당시 한국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린 명작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몰입을 방해한 요인은 괴물의 움직임이 보이는 약간의 어색함이었다. 한국 영화로서는 적지 않은 제작비와 공력을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눈을 속일 만큼 박진감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기술과 자본이 집약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오픈AI가 며칠 전 공개한 영상이 또 한 번 세계를 흔들고 있다. 촬영이나 편집에 인간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고도 텍스트를 영상으로 뚝딱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 모델이다. 이전보다 훨씬 섬세해진 영상을 보며 많은 이들, 특히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이 모델의 이름은 하늘(空)을 뜻하는 일본어 ‘소라(Sora)’다. 개발팀은 무한한 창의성을 떠올리게 하기 위한 이름이라고 밝혔다.

인간의 언어로 프롬프트를 주기만 하면 마치 물리적 공간에 실재하는 것 같은 영상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야말로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만 생성 인공지능의 답변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질문의 수준이듯이, 더 좋은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기술과 비용, 그리고 지난한 구현 작업을 위한 인력이다. 새로운 영상을 상상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라고, 적어도 아직은 믿고 싶다.

‘소라(空)’는 ‘거짓’이라는 뜻도 지닌다. 실체가 없는데 들리는 듯한 소리를 ‘소라네(空音)’, 혈연도 아닌데 닮은 것을 ‘소라니(空似)’라고 한다. 박진감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만든 더 높은 품질의 동영상이 제한 없이 유통되면,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허구가 실재로 둔갑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치명적인 부작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속도와 자본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소라’라는 이름이 품은 경고를 심각하게 살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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