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와 서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 대설주의보와 서설

눈이 많은 겨울이다. 요 며칠은 한파와 함께 대설주의보, 대설경보까지 내려진 곳도 적지 않다. 눈이 온다고 마냥 즐거워하는 건 아이들과 강아지뿐이라고 했던가. 실외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 분들께 눈과 추위는 맞서 견뎌야 할 악조건이다. 내리는 눈을 보며 낭만을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현대를 사는 생활인에게 눈은 출퇴근길을 힘들게 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조선시대 역시 눈은 발을 묶는 장애물이었지만, 서설(瑞雪)이라는 말처럼 희망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육출화(六出花), 육각의 결정을 지닌 눈을 꽃에 비유한 표현이다. 눈을 반겼던 까닭이 티끌 가득한 온 세상을 새하얗게 덮어 버리는 순수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납전삼백(臘前三白)이라고 해서 동지(冬至) 후 세 번째 술일(戌日)에 행하는 납제(臘祭) 이전에 눈이 세 번 내리면 풍년이 들 조짐으로 여겨 기뻐했다. 눈이 한 자 이상 내리면 해충이 땅속에 낳아 놓은 알들이 깊숙이 파묻혀 버려 농사에 피해가 적어진다는 그럴듯한 이유도 전한다.

하지만 산에 고립된 채 만나는 세찬 눈보라는 서설이라기보다 재앙에 가깝다. 뉴스에서 ‘대설주의보’라는 말만 들으면 나는 늘 최승호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어느덧 40년도 더 된 시인데도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이 만드는 이미지는 여전히 강렬하다. 다시 찾아 읽어보니 “쬐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는 “꺼칠한 굴뚝새”가 휘몰아치는 굵은 눈발 사이로 눈에 밟힌다. ‘계엄령’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1982년 당시의 역사성은 퇴색했지만,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앞에서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출 수밖에 없는 쬐그마한 존재들은 지금도 다른 모양으로 대설주의보에 몸을 떤다.

서설이라 해서 당장 주린 배를 달래거나 추운 몸을 녹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독한 추위의 정점에서 하염없이 내려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곧 올 봄을 떠올리고 풍년을 소망할 뿐이다. 소리 없이 다양하게 내리는 대설주의보에 몸을 떨면서도 “눈보라 속으로 날아”가는 굴뚝새에게, 서설의 위로가 가닿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폭설로 인한 피해가 부디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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