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 즐거운 봄날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 기쁘고 즐거운 봄날

한글은 표음문자다. 글자의 모양 자체에는 어떤 의미나 형상이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어 화자로서 글자만 봐도 무언가 강렬하게 떠오르게 하는 글자들이 있다. ‘꽃’이라는 글자가 대표적이다. 굳이 멋진 캘리그래피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꽃은 꽃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 거기 그 나무가 있었던가 싶었던 자리 여기저기에서 거짓말처럼 툭툭 망울을 터뜨리는 꽃을 발견하며 새삼 생명의 기쁨을 느끼는 계절이다. ‘기쁨’이라는 글자도 그렇다. 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게 한다.

기쁘다는 뜻의 한자 열(悅)은 태(兌)에서 왔다. 입 모양인 ‘口’ 위에 찍은 ‘八’이 웃을 때 잡히는 입주름이고 아래의 ‘’은 사람을 뜻한다. 웃고 있는 사람의 입 모양을 강조한 글자다. <논어> 첫 장을 공자는 기쁨으로 시작했다. 배우고 수시로 익히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고, 마음 맞는 벗과 만나는 일이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하면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고 이러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군자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17세기 인물 유춘식이 별채 이름을 낙재(樂齋)라 붙이고 외조카 이간에게 기문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냇물에서 헤엄치며 즐거워하는 물고기나 구름 속을 날아다니며 기뻐하는 새처럼, 자연 속에 은거하며 안분지족하는 삶을 즐거움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이간은 이처럼 생리대로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에 더하여, 인의를 회복하고 효제충신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누릴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했다. 도덕적 당위라고 할 지점에서 즐거움을 말하는 데에 유가 사상의 진면이 있다. 자신을 돌아보아 진실되면 그 즐거움을 주체할 길이 없다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며, 인의의 회복과 발현이 의무가 아닌 즐거움이 되는 경지를 제시했다.

감염병이 몇 년째 일상을 뒤흔들어 놓아서 기쁨과 즐거움을 말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그럼에도 기쁨으로 피어나는 꽃과 즐거움에 분주한 벌을 보며 기쁨과 즐거움을 다시 떠올려볼 일이다. 성찰을 통한 공부에서 기쁨을 채워나간다는 말, 그 즐거움이 있어야 군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곱씹어 본다. 오늘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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