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변화와 지속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끝과 시작, 변화와 지속

‘지속가능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진 유엔의 공식 보고서가 나온 게 1987년이다. 그로부터 근 30년이 지난 2015년에는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해서 이를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로 결의했다. 각 국가와 기업이 상호의존성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이 목표들의 수행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지 않고서는 이 공동의 목표 역시 이상적인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변함없이 늘 지속된다는 뜻을 지닌 한자 항(恒)은 <주역>의 64괘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항괘가 형통하여 이롭게 되려면 변하고 통하여 때를 따라 오래가야 한다는 것이 항괘의 주된 메시지이다. 고정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해와 달이 뜨고 지듯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 변화해야 오래갈 수 있다. 항이라는 한자 오른쪽 부분 亘(긍)의 위아래 두 선이 하늘과 땅을, 가운데가 달을 의미한다고 설명되어 온 것도 천지자연의 쉼 없는 운행에서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유추해온 전통과 관련된다.

항괘가 어디를 가든 이롭게 되는 것은 ‘종즉유시(終則有始)’ 즉 끝이 바로 시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관건은 각자의 자리에서 늘 한결같으면서 유연하게 흘러갈 수 있는 도를 얻었는가에 달려있다. 끝과 시작은 대개 사람이 나누어 놓은 것이다. 밤의 끝과 아침의 시작,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하나로 맞물려 있듯이 시간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역병으로 한산하던 대학 교정이 졸업을 맞은 학생들로 모처럼 활기를 띤다. 졸업은 정해진 학업을 마친다는 의미에서 끝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졸업식을 코멘스먼트(commencement)라고 불러 시작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평균 연령이 높아져 졸업은 물론 정년퇴임 역시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래서 멈춘다는 의미의 정년(停年)보다는 그저 정해둔 기간이 온 것일 뿐이라는 정년(定年)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 긴 역병 역시 극에 달하면 사그라들고 우리는 그 이후를 이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해와 달이 늘 그렇듯이 뜨고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개인의 삶과 인류의 미래에 궁극의 이로움이란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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