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정치 기자가 되어

구혜영 정치에디터

12월31일과 1월1일 사이엔 도랑이 있다. 작년과 새해는 오늘과 내일일 뿐인데도. 올해 건너야 할 도랑은 유난히 넓다. 지인 허대만, 정태인, 김재용이 세상을 떠났다.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났던 노옥희 선생까지.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고 했다. 사마천에 따르면 이 차이를 가르는 것은 죽음의 방향이다. 이들은 한 뼘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진보의 무게를 감당했던 사람들이다.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구혜영 정치에디터

지난 25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 작가가 별세했다. 마음속 기둥 하나가 뽑히는 느낌이었다. 뭐든 ‘첫’이란 관형사가 붙으면 독하고 강렬해진다. 첫사랑, 첫 기억…. <난쏘공>은 나의 ‘첫’ 소설이었다. 당시 소설들과 달리 가진 자의 죄와 가지지 못한 자의 고통이 다투는 계급 문제와 이 전쟁에서 매번 지는 가지지 못한 자의 소외를 다뤘다. 주인공 난쟁이와 앉은뱅이는 산업화 시대에도 가장 멀리 있는 타자였다. 그러나 도시 빈민 김불이씨 가족의 낯선 현실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 이웃이 겪는 익숙한 현실임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난쏘공>은 광주를 만나기 전 나의 첫 ‘국가’였다. <난쏘공>과 광주엔 그 전까지 알았던 국가와는 다른 국가가 있었다. 광주의 ‘국가’는 시민을 죽였고, <난쏘공>의 ‘국가’는 시민을 버렸다. <난쏘공>을 통해 처음으로 국가의 배신을 느꼈고, 광주를 만나며 다시 국가의 배신을 알게 됐고,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목도하며 또다시 국가의 배신에 몸서리쳤다. 많은 사람들이 ‘<난쏘공>과 나’를 말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시인은 “작가들이 ‘환대’라는 말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점엔 휴먼 카인드, 다정함을 다룬 책이 많다. 타인을 반갑게 맞고 후하게 대한다는 환대의 원뜻에 충실한 트렌드다. <피로사회> 저자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타자가 존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경고했다. 타자를 내쫓으면서 스스로 소외된 신자유주의의 역설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되찾으려면 타자를 받아들여야 하고, 그 방법으로 환대와 경청을 제시했다.

사회 전체가 길을 잃은 느낌이다. 자기 자리에서조차 쫓겨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난쏘공>이 다룬 노동과 빈민은 각자도생 사회에서도 가장 환대받지 못하는 삶을 집약한다. 시인이 말한 ‘환대’에 다른 해석이 필요한 지점이다. 지금의 ‘환대’는 타인을 반갑게 맞아야 한다는 당위보다 자기 땅에서 유배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감 아닐까.

허대만, 정태인, 김재용, 노옥희, 그리고 조세희의 ‘환대’를 생각한다. 이들의 환대는 설 땅을 잃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허대만의 7전7패 도전기는 험지 정치의 역사로 이어졌고, 정태인은 주류 경제에 밀린 착한 사람들에게 연대와 협동의 경제를 건넸고, 김재용의 매니페스토 분투는 정쟁 정치에 정책의 씨앗을 뿌렸고, 노옥희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에게 손 내밀며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실천했다.

그리고 곳곳에 쇠공을 쏘아올린 조세희. 쇠공은 한 발만 더 가면 낭떠러지라는 위험표시 팻말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치는 그 쇠공을 어떻게 받아 안고 있을까. 정치권 밖에선 굴뚝을 벗어나려는 쇠공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오르고 있다. 이미 주권자들은 “정치가 문제”라는 알리바이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농부가 밭을 탓하면 안 된다는 전제를 허물고 이 지경이 된 정치에 내 잘못도 있다며 반성하고 있다. 야권에서 현 정부 비판을 넘어, 전 정권 책임론도 나오지 않는가.

여의도는 승자독식으로, 대통령실은 불통과 양극화로 팻말을 바꿔 달았다. 여야는 선거제 개편 논의를 시작했다. 나를 내어주는 ‘환대’에 동참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로 바꾼들, 호남에서 국민의힘이,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의석을 나눠 갖는 ‘진짜 양당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의 ‘쇠공’은 약자를 살리는 곳을 향해야 한다. 쇠사슬로 몸을 묶고 죽음을 불사하는 노동자들을 살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정치가 늘어나면 세력 균형을 맞추는 제도를 만들지 않아도 주권자들은 ‘내 편’을 만들기 위한 지지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정 내어주기도 싫고 위험신호도 감지할 수 없다면 일단 ‘균열의 시간’부터 갖자. 외부를 받아들이려면 항체가 필요하고 항체를 만들려면 내 안에서 전투를 치러야 할 테니. 제대로 환대하는 정치를 기다린다. ‘어쩌다 정치 기자가 되어’(피터 버거의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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