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애의 이의제기

구혜영 정치에디터

지방선거는 정치의 본질이다. ‘이 골목 주민이 한 말을, 저 골목 주민도 했다면 그게 민심’임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골목의 욕망이 마을의 서사로 나아가는 화두가 나의 일상임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지방선거는 공중전에 묻어가기도 하는 대선, 총선과 달리 직접 온몸을 불사르는 지상전이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구혜영 정치에디터

그 지상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참패했다. 3·9 대선 대비 약 650만표(최소 42.6%)가 이탈했고, 호남은 37.7%만 투표했고, 핵심 지지 기반인 40대는 40%대 초반 투표율에 그쳤다. 심판, 응징도 과하다며 용도 폐기라는 평가도 있다. 쏟아지는 반성문은 오십보백보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남측 빨갱이를 지칭한 ‘수박’이 등장하고, 대선 득표가 순정한 지지인 줄 착각하는 ‘졌잘싸’가 회자된다. 마무리는 이번에도 김대중·노무현 정신이다. 하지만 유산도 탕진했다. 호남 투표율은 전국 최저, 김해시장 선거는 15%포인트 차로 졌다. 그 와중에 국민의힘은 5·18과 봉하를 찾고, 민주당 출신 인사들을 후보로 세우고, 지난 대선 땐 대구·경북(TK)에서 탄핵까지 용인했다. 내부 협치는 물론, 상대의 정통성을 수용하는 외부 협치도 구사했다.

참패 요인으로 팬덤 정치가 꼽힌다. 맹목적 지지, 내로남불이라는 특징을 대입하면 카네티가 <군중과 권력>에서 분류한 다섯 부류 중 ‘추적 군중’에 해당한다. 이는 역으로 지지층에게조차 정치적으로 ‘지지 명분’을 주지 못한 민주당의 후과라 할 수 있다.

대선 후 진영 정치가 더 공고해진 것도 지지자들이 정치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책임론’도 팬덤(에 편승한) 정치에서 뻗어나갔다.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만든 이상 그가 출마하지 않았다 한들 이재명 책임론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민주당은 싫지만 국민의힘 집권은 더 싫어서 투표한 결과가 비호감 대선의 실체다. 이재명 후보 소구력은 윤석열 후보와의 싸움이 최대 효용치라는 뜻이다. 대선에서 패했고, 지방선거에 윤석열 후보는 없었다. ‘이재명 책임론’ 논란은 팬덤 편승 정치에 더해 대선 평가도 없이 지방선거에 임했던 민주당 정치의 수준을 보여준다.

임미애 경북지사 후보는 선거 평가부터 당 쇄신까지 민주당 정치를 상징한다. 험지 출마와 22% 득표는 외연 확장 필요성을, 86그룹 정치인과 여성 광역단체장 후보는 낡은 민주당과 새로운 민주당 좌표 사이에 있 다.

출마 결심까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선거였다. 그러나 당이 결정하면 결심하는 게 당원의 도리. 임 후보는 “대선 패배 이후 세상과 벽을 쌓고 싶었는데 출마해줘서 고맙다는 지지자들 말에 상실감이 치유됐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는 “민주당에 대한 기대치가 떨어졌다”고 요약했다. TK에서 당 지지율이 높았던 곳도 기존보다 낮았다. “민주당이 투표장에 갈 이유를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투표하면 이긴다’는 호소가 통할 리 없었다. 평가도 온통 수도권 중심이다. 국회의원들은 ‘정권심판론으로 총선 치르려면 지방선거에서 지는 게 낫다’는 속내를 숨기지 못했다. 가만히나 있든지, 국민 60%가 반대한 검수완박 밀어붙이기로 대선보다 더한 정치 선거를 만들었다.

임 후보는 책임론 공방을 ‘당권 싸움’이라 규정하며 “왜 온 국민이 당권 싸움을 보게 하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무능 정당 프레임에 가두고 있다”고 쓴소리했다. 특정인 책임론엔 “뭘 하면 안 되는지 가려내면 뭘 할지 보인다.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임 후보는 민주당을 이중삼중 옭아맨 고르디우스 매듭을 어디부터 어떻게 잘라야 하는지 묻자 “당의 성찰이 유일한 단칼”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국면에서 86 용퇴론으로 시끄러웠다. 86그룹은 1987년 민주화항쟁에서 직선제 쟁취에 앞장섰다. 그러나 87체제는 양당체제라는 낡은 유산을 이어왔다. 86그룹 당사자인 임 후보는 “물러나야 한다면 물러나야지. 그러나 수명을 다한 87체제는 시작한 우리가 끝내야 한다”고 했다. 정치개혁 임무를 다하겠다는 각오다. 선거 직후 국민의힘은 혁신위원회를 띄웠다. 선거제 개혁(다당제)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처럼 백지투표제(당선인에 반대한 표도 득표율 포함)를 도입해 ‘겸손한’ 권력이 되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거부할 명분이 없다. ‘권력이 주도하는’ 정계개편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제대로 혁신해야 한다. 한 주제 한 주제 끝장토론부터 하시라.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선거제 개혁으로 다당제가 된다 한들 거대 양당의 분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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