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과 올해의 나무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19세기 말까지, 유럽인들의 탐욕과 폭력으로 점철된 정복의 역사는 환경재앙으로까지 번져갔다. 뒤늦은 후회라도 하는 것인지, 그들은 자연환경에 관심이 높다. <대영식물백과사전>을 집필한 영국 식물학자 리처드 메이비는 “나무가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뿌리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말로 문화의 뿌리가 자연임을 강조했다.

매년 2월 한 달간, 유럽에서는 ‘올해의 나무(European Tree of the Year)’ 선정 온라인 투표가 있다. 우승목은 3월 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의회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2011년부터 시작된 유럽 올해의 나무는 현재 15개 국가가 참여하여 특정 나무(개체)를 선정한다. 기준은 나무 크기나 형상, 수령 등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얽힌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무가 사람을 만나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되는 사례에 주목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그에 걸맞게 올해의 나무 엠블럼은 나무의 수관(樹冠) 모습이 사람의 지문(指紋)을 닮았다. 매년 어떤 나무를 참가시킬 것인지, 각국에서 여론조사도 실시한다. 예비경선까지 치르는 모습이 흡사 유럽연합(EU) 의장 선거를 방불케 한다. 후보 나무에 대한 투어와 어린이 사생대회가 열리고 나무를 주제로 지역 축제까지 개최된다.

첫해인 2011년에는 루마니아의 수령 500년 된 피나무가 선정되었다. 교회 옆에 자라는 이 피나무는 오래전부터 마을의 중대 사안을 논의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일종의 마을 법정이나 회관과 같은 기능을 한 셈이다. 2023년에 선정된 올해의 나무는 폴란드 우치의 대학 인근 공원에 자라는 로부르참나무인데, 마치 팔 벌려 사람을 껴안으려는 듯 커다란 줄기가 낮게 옆으로 퍼져 자란다. 이 나무는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헝가리, 스페인, 체코 등에서 벚나무, 느릅나무, 소나무 등이 유럽 올해의 나무로 선정되었다.

한편 독일에서는 이미 1989년부터 자국 내에서 올해의 나무(Baum des Jahres) 선정 행사를 시작했다. 자타공인 환경국가답게 이 분야에 앞장서 있다. 이 행사에서는 특정 개체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생태학적 가치와 희귀성 등을 기준으로 하나의 수종을 선정한다.

노거수에 대한 사랑은 아시아도 뒤지지 않는다. 한국·중국·일본 3국이 함께하는 이런 행사가 있었으면,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끼리, 그리고 사람과 나무 사이가 더욱 친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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