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위키피디아의 ‘카사노바’ 항목은 언어별로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영어·이탈리아어·독일어·프랑스어판 등에는 대부분 그를 모험가, 작가, 연금술사, 외교관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탈리아어판에는 그 외에 철학자로도 설명한다. 한국어판에는 작가, 시인을 자칭한 사기꾼으로 묘사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내용으로 모든 것을 재단할 수 없지만, 국내 평가는 곱지 않다.

그가 활동했던 18세기 유럽에선 전통적 가치와 권위가 부정되었다. 세속주의가 본격 대두되고, 계몽주의에 힘입은 혁명이 일어났으며 물리학의 새로운 체계가 완성되었다. 그런 격변의 사회 속에서 인간사회의 여러 군상은 어떤 삶을 보냈을까? 그 내면을 소개한 사람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자코모 카사노바였다. 17세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여성 편력만큼이나 직업도 다양해 박물학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당시 많은 학자들이 세계를 돌며 새로운 문화와 자연을 탐구할 때, 그는 사교계를 주유하며 전 유럽을 탐색(探色)했다. 열정과 감각으로 무장한 그가 미식가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에게 음식과 사랑은 불가분이었다. 푸아그라는 물론 와인과 치즈, 메추라기 요리 등을 좋아했다.

그가 즐겨 먹던 음식 중에는 정력에 좋다는 굴도 있다. 최음제로도 알려졌던 굴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촉진하고 정자 생성을 돕는다. 굴에는 항상 레몬을 곁들였다. 비린내를 없애고 살균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다른 이유로 레몬을 즐겨 찾았는데, 바로 피임 도구였다. 그는 여성의 질 안에 반달 모양의 레몬 껍질을 삽입하여 임신을 예방하는 일명 ‘페서리’로 사용했다. 강산성 레몬은 정자를 죽이는 효과가 있으니, 그에게 레몬은 사랑의 서사에서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였던 셈이다.

드라마틱한 자서전 <내 인생 이야기> 덕분에 후대 사람들은 당시 상류사회의 숨겨진 문화 현상을 알 수 있었다. 교황에서부터 시골 아낙네까지 그가 만났던 사람은 다양했다. 그의 자서전은 저급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내밀한 ‘관능의 문화사’라 할 만하다. 2010년 10월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자서전 원본을 700만유로(약 100억원)에 구매해 전시키로 했다니, 그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셈이다.

자유로운 사랑을 전파하며 감각과 관능에 충실했던 카사노바. 그는 18세기라는 유럽의 역동적 무대에서 열연한 배우이자 호모 센수알리스(homo sensualis)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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