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가우디와 사이프러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무려 140년 넘게 공사 중! 무슨 일이든 후딱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에겐 익숙지 않지만, 느긋한 스페인에서는 가능한 일인 모양이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이야기다. 옥수수 모양의 외부와 달리,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키 큰 나무들이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천장을 받치고 있는 듯하다.

바르셀로나의 성자 가우디는 건축을 지탱하는 많은 요소를 자연에서 차용했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덕분이다. 항상 자연에서 건축의 구조를 찾으려 했던 그는 하중을 시각화할 수 있는 간단한 방식으로 줄에 추를 매달아 늘어뜨린 ‘현수 모델’을 만들었다. 줄이 포물선을 이루며 추의 무게가 고르게 분산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이를 그대로 뒤집어 성당의 구조로 삼았다. 당시 절대적 원칙이던 구조의 수직성으로부터 건축을 해방시킨 셈이다. 이는 자연의 겉모습을 모사하는 태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인위적으로 형태를 만든 게 아니라 자연 속에서 그가 원하던 것을 ‘찾아낸’ 결과다.

성당의 외부는 예수의 일생을 형상화한 3개의 파사드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탄생의 파사드’만이 그가 생전에 직접 감독하고 완성하였다. 파사드 가장 높은 곳에는 사이프러스가 우뚝 솟아 있다. 사이프러스는 지중해 지역에 자라는 상록침엽수로, 죽음과 애도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희망·영생·생명의 나무로도 평가된다. 유대 전통에서는 사이프러스가 영혼 불멸을 상징하여 묘지에 자주 심었다. 또한 혹독한 환경에도 살아남는 사이프러스를 오스만 제국에서는 생명 그 자체로 묘사하였다.

한편 성서학자로 유명한 애덤 클라크는 노아의 방주가 사이프러스로 만든 것이라 주장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관도 사이프러스로 제작되었으니, 사이프러스는 삶과 죽음을 모두 아우르는 나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수십종의 동식물에서 따온 조형물이 성당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식물만 해도 30여종이 조각되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그 옛날 뭇 생명을 태우고 멸망의 땅에서 탈출하려 했던 노아의 방주가 연상된다. 그러고 보니 성당은 수많은 생명체가 함께하는 작은 지구처럼 보인다. 가우디는 창조주의 권위를 과시하고 칭송하는 대신, 전쟁과 질병, 혐오와 차별에 시달리는 세상의 영혼들을 어루만져 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름에서 이미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성스러운 가족임을 표방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기호와 상징으로 가득 찬 현대판 노아의 방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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