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곤
사월의 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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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삶 ‘나도 정치병 환자인가?’ 가까운 지인들이 가끔 정치 과몰입을 지적할 때면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SNS나 칼럼 등의 글에서 감정이 들끓는 정치적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경우가 많아서일 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살아가는 일이 다 정치인데 어찌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겠느냐며 대충 화살을 피하곤 한다. 속으로는 ‘이 신나고 흥분되는 일을 어찌 멈추라는 거냐’고 중얼거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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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가성비로 따질 수 없는 것들 책을 읽자는 얘기는 이제 하기가 싫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책을 팔아서 먹고사는 입장이지만, 듣기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이지 계몽적인 어조로 책 읽기의 미덕을 자꾸 설파해봐야 꼰대의 잔소리로 들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는, 책 안 읽는 시민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책 읽기 어려운 환경,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기풍이 더 문제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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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죽음의 권리를 돌려달라 가을이 되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다. 나는 유물론자로서, 이런 기분은 해가 짧아지고 일조량이 줄어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긴 탓이라고 간단히 믿는 편이지만, 요즘 들어 아는 사람의 부고나 암 선고 소식을 자주 접한 탓도 있는 듯하다. 이런 소식이 예전과 달리 범상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제 나도 노년이 머지않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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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밀키트가 된 공부 ‘강연의 시대’라 할 만큼 곳곳에서 강연회가 열리고, 많은 독서모임에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클릭 몇 번으로 필요한 동영상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이 시대에 왜 우리 사회의 교양과 지적 수준은 날로 쇠퇴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본다. 지난번 “언어소통, 지식, 의견은 이제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가치이기보다 시장의 소비재이자 서비스 상품이고, 그것을 구매하는 이는 다만 뼛속까지 소비자일 뿐”이라고 썼거니와, 이 이야기를 이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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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심심한 사과에서 복사학위까지 며칠간 SNS를 뜨겁게 달군 ‘심심한 사과’ 논란에 뒤늦게 한마디를 얹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 조심스럽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진단과 공감이 가는 비판을 내놓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논란의 배후에 있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징후가 눈에 걸려 사족이 될 것을 무릅쓰고 몇 마디를 얹는다. 시작은 서울의 한 카페가 웹툰 작가 사인회를 연기하면서 예약자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표현을 쓰면서부터였다. ‘심심한 사과’를 ‘심심하다’는 뜻으로 오독한 예약자들이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는데, 예약자들이 자신들의 어휘력 부족과 무지를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한 태도로 그런 어려운 말을 쓴 상대를 비난한 것이 논란을 키운 원인이 되었다. 이에 대해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거나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 또는 실질 문맹률을 걱정하는 말들이 나왔지만, 이 진단들은 확실히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하다. 한자를 모르거나 어떤 단어의 뜻을 몰랐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무지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논란의 중심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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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철학책을 읽는 이유 벌써 30년이 훌쩍 지난 옛일이다. 대학 신입생으로 철학과에 입학한 후 처음 맞는 철학개론 시간이었다. 모든 학과가 수강하는 교양과목이었지만 대학 첫 강의인 데다 철학 전공생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을 기다렸다. 마침내 뚜벅뚜벅 강단에 선 교수는 첫 마디로 교탁을 가리키며 다짜고짜 “이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다. 강의실 안의 그 누구도 다 다른 형태로 교탁을 보고 있고, 고개를 돌리면 교탁이 여전히 거기 있는지 알 수도 없는데,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교탁’이라 부를 수 있으며, 도대체 교탁이란 것이 지금 여기에 있기는 한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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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우리들의 자유 이 사회는 정말로 중병이 들었나보다. 뉴스를 보거나, SNS에 올라온 글과 사진을 보거나,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흔한 행동거지를 볼 때마다 나는 자주 이런 징후를 느끼곤 한다. ‘질병’이나 ‘진단’과 같은 의료적 용어로 사회문제를 병리화하는 것이 마땅치는 않으나, 나는 곳곳에서 마주치는 이 사회의 물리적·심리적·윤리적 퇴행의 징후들을 보면서 ‘병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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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자전거는 공평하다 겨우내 방치해두었던 자전거의 먼지를 털고 매일 거르는 날 없이 자전거를 탄 지 두 달째다. 올봄은 얼마나 고마운지 예년에 비해 충분히 긴 계절을 맘껏 탕진할 수 있었다. 출퇴근길에 지나는 공원의 신록은 기뻐 죽겠다는 듯 반짝거리고 바람은 살랑살랑 땀에 젖은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주말에 나선 장거리 자전거 길에는 또 숲과 햇빛과 바람이 조용히 기다리다 난데없이 나타난 객을 반겨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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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땅이 들려준 이야기 여느 사람들보다는 책을 조금 더 읽는 편이긴 하지만 크게 배우거나 공감하는 책을 만나는 일은 드물다. 몰랐던 지식을 얻는 즐거움은 자주 있어도 ‘삶이 송두리째 변화한’ 경험 같은 건 돌이켜보건대 없는 듯하다. 그러다 최근에 만난 김해자 시인의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는 굳어버린 마음을 흔들고 공감케 하는 언어가 매 쪽마다 가득하여 책의 거의 절반에 밑줄을 치며 읽었다. 농부들의 삶과, 자연이 전해준 시와, 환대와 우정의 생생한 이야기에 눈시울이 뜨뜻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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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혐오 장사꾼 곧 여당이 되는 제1야당 대표는 오늘도 열심히 “나는 장애인을 혐오한 적이 없다”는 글을 SNS에 올리며 분투 중이다. 그의 글을 다시 한번 찾아보니 오늘도 역시 부지런하게 일하는 듯하다. “바쁜 출근길 시민을 볼모로 한 투쟁을 정당한 투쟁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전장연은 독선을 버려야 한다”면서 여전히 장애인 시위를 비판하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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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이 칼럼이 지면에 실릴 때면 20대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었는지 결과가 나왔을 터이다. 신문 1면에서부터 새 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크게 실릴 것이고, 초박빙의 결과에 대한 분석이 분분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나는 지면 한 귀퉁이에 실릴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은 글을 위해 머리를 짜내는 중이다. 유례없이 치열했던 선거가 끝난 게 다행이랄까. 선거가 있거나, 월드컵 축구가 열리거나, 국내외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출판은 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업계는 이런 일들로 가끔 특수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는데, 왜 이 업계는 늘 손해만 보고 특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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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오두막에서 만든 책 책 만들기에 관한 예전의 경험담을 가끔 꺼내면 사람들은 꽤 재미있게 또는 신기하게 듣기는 하지만, 이제는 사라진 한때의 이야기로 소비하고 곧 잊어버린다. 회고담 또는 ‘라떼는…’ 따위의 이야기로 들릴까봐 늘 조심스럽지만 아무렴 어떠랴. 시대가 변하고 사물이 바뀌면 그것에 얽힌 경험과 말들도 희미해지는 법.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사물이 바뀌는 만큼 어휘가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어서, 이제는 의미가 달라진 어휘가 과거를 오늘의 잣대로 잘못 이해하게끔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따르면 사라진 것은 단어가 아니라 그것에 결부된 경험과 기억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