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공평하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겨우내 방치해두었던 자전거의 먼지를 털고 매일 거르는 날 없이 자전거를 탄 지 두 달째다. 올봄은 얼마나 고마운지 예년에 비해 충분히 긴 계절을 맘껏 탕진할 수 있었다. 출퇴근길에 지나는 공원의 신록은 기뻐 죽겠다는 듯 반짝거리고 바람은 살랑살랑 땀에 젖은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주말에 나선 장거리 자전거 길에는 또 숲과 햇빛과 바람이 조용히 기다리다 난데없이 나타난 객을 반겨주곤 한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자전거는 인간이 자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최적의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볼베어링의 위대한 발명으로 사람은 도보에 비해 세 배 이상 빠르게 자력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자동차보다는 훨씬 느리지만 내가 탄 이동수단 때문에 앞에 나 있는 길을 가지 못하는 일 같은 건 자전거에게 없다. 아니, 자전거가 훨씬 느리다고? 자동차의 천국 미국의 시민은 연평균 1만2000㎞ 이동에 1600시간을 쓰는데 이것은 시간당 7.5㎞에 불과한 속도다. 자전거가 쉽게 낼 수 있는 시간당 15㎞의 절반이다. 자동차의 비효율은 그것뿐이 아니다. 선진국 국민은 날마다 30㎞의 거리를 이동하는데, 반경 10㎞를 벗어나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소모하는 시간은 깨어 있는 16시간 중 4시간에 달한다. 자동차 구입비, 유류비, 보험료, 세금을 버느라 쓰는 시간이 다 포함된 수치다. 즉 우리는 자동차 때문에 매일 4시간을 도로 위에서 쓰거나 그것을 위한 돈을 마련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와 속도를 독점함으로써 사회적 자원을 낭비한다는 데 있다. 널따란 도로를 차지한 자동차는 사람과 자전거를 밀어내고, 모두가 낸 세금을 도로와 각종 교통시설에 낭비케 한다. 하지만 하마처럼 세금을 잡아먹는 도로에서 가장 이익을 보는 이들은 따로 있다. 보통사람들은 매일 쳇바퀴처럼 대중교통 안에서 긴 시간을 소모하지만, 좋은 차를 가지고 가장 한적한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속도와 시간 절약의 이점을 누린다. 그리고 이 속도는 에너지 소비에서 나온다. 속도를 더 누리는 사람이 에너지를 더 많이 쓰는 셈인데, 에너지 소비에서 나온 탄소 부산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간다. 아니다, 피해는 차를 가장 적게 타는 노인과 약자에게 먼저 돌아간다. 자동차는 그 자체로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또 물류와 택배산업 같은 복병도 있다. 바로 옆 동네에 있는 판매자의 물품을 구입하면, 택배트럭은 멀리 대전의 물류센터에 갔다가 길을 되돌아 구매자에게 온다. 이런 어리석은 일에 에너지와 속도를 낭비하고, 도로를 새로 뚫고, 질 낮은 고용을 늘리는 것을 우리는 ‘성장’이라 부르고 GDP 증가라고 부르며 기뻐한다.

이동하려는 욕구와 능력은 인간에게 천성적인 것이다. 인간은 원래 자신의 보폭과 이동속도에 맞춰 생활공간과 생활시간을 설정하고, 자신과 환경 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존재다. 내비게이터가 가르쳐주고 도로가 뚫린 대로 졸졸 따르며 운전하는 이에게는 건물의 생김새도, 스쳐지나가는 풍경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우리는 내 발이 직접 닿는 한에서만 나의 주변 환경과 대지와 건물을 기억하고, 나의 생활공동체를 구성한다. 자전거는 이런 도보 이동의 가장 확장된 형태이자 그 한계선이다.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스스로를 제한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전거가 탈것의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주말에 일 없이 교외를 다녀오기 위한 비싼 놀잇감이나 운동기구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다. 남한강자전거길, 아라뱃길 같은 곳보다는 도심의 생활자전거를 위해 예산을 써야 한다. 자전거 타기는 에너지 불평등을 줄이고 화석연료에 중독된 성장을 넘어 모두가 공평한 세상을 이루는 아주 쉬운 길이다. 건강은 자전거 타는 이들이 덤으로 받는 선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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