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장사꾼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곧 여당이 되는 제1야당 대표는 오늘도 열심히 “나는 장애인을 혐오한 적이 없다”는 글을 SNS에 올리며 분투 중이다. 그의 글을 다시 한번 찾아보니 오늘도 역시 부지런하게 일하는 듯하다. “바쁜 출근길 시민을 볼모로 한 투쟁을 정당한 투쟁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전장연은 독선을 버려야 한다”면서 여전히 장애인 시위를 비판하느라 바쁘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비린내. 글에도 냄새가 있다면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냄새는 비린내일 것이다. 썩은 냄새나 구린 냄새와 달리 적당히 감췄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 그의 말은 화려한 언변과 논리로 치장했기에 언뜻 보면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저를 여성 혐오자, 장애인 혐오자로 몰아도 무슨 혐오를 했는지는 설명을 못하죠. 왜냐하면 지금까지 수많은 모순이 제기되었을 때 언더도그마 담론으로 묻어버리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죠. 치열하게 토론하기보다는 프레임 전쟁을 벌이는 거죠. (…) 결국 그런 프레임을 내세운 이들이 성 비리 등으로 물러나도 그 담론을 포기 못하는 게 복어 패러독스입니다. 정작 소수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주제 자체가 갈라파고스화되는 방식으로 끝납니다.”

확실히 그의 발언에는 비린내를 감추기 위한 향신료로 ‘복어 패러독스’니 ‘갈라파고스화’ 같은 지식인 어휘가 듬뿍 뿌려져 있다. 이 야릇한 글을 해석하면 이렇다. 나는 소수자 권리 주장을 언더도그마(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독단적 주장)라고 비판한 적이 없는데 그런 논지로 치부하는 것은 결국 프레임 전쟁 때문이다. 비판자들은 맛있지만 치명적인 복어처럼 그 프레임에 얽매여 결국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갈라파고스에 고립될 것이다.

그가 여러 차례 했던 혐오 발언을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공격 대상의 약점을 과장하고 물고 늘어지면서 혐오한 적이 없다고 한다. 임종을 하러 가는 지하철 승객에게 버스를 타라고 했다는 (맥락 삭제된) 시위자 사례나,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정의당 부대표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굳이 꺼내서 공표하는 것은 전혀 혐오의 의도가 아니다. 상대를 정치 집단화하고 부정적 편견을 조장하는 방식도 입으로 혐오를 발화하지 않았으니 혐오가 아닌 것이다.

아까운 지면을 할애해서 그의 발언을 다루자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는 일개 사인이 아니라 공당의 대표이고 정치인이다. 기괴한 세계관을 가진 이 구역의 양아치라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어서 문제다. 이리 둘러치고 저리 메치는 그의 발언이 겨냥하는 것은 딱 한 가지로 보인다.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를 혐오 대상으로 삼아 주류의 지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확보하는 전략. 그런 전략이 먹히는 이유는 우리가 ‘여론’이나 ‘대중’이라 부르는 무형의 유권자들이 언제든 거기에 합류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등가의 권리를 가지고 이익을 추구한다는 시장주의적 정치관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배하는 여론이다. 시장에서는 시민적 권리조차 거래와 교환의 대상이 되기에 모두에게 보장되는 공유재로서의 인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모두가 동등한 구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왜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지 묻는다. 이준석은 이런 대중이 낳은 이 구역의 왕자인 것이다.

장담하건대 이 글에도 공정과 권리의 평등을 내세우는 혐오성 댓글이 달릴 것이다. 혐오를 하지 말라면서 왜 당신은 타인의 생각을 혐오하느냐는 거짓 등가 논리도 등장할 것이다. 장애인 권리를 희생하고 그간 지하철을 편히 누린 ‘이익’은 당연한 권리처럼 언급될 것이다. 그렇게 믿는 이들은 모든 인권의 문제를 시장의 이권 다툼으로 돌리는 혐오 장사꾼에 의해 자신의 권리와 표조차 이리저리 거래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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