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이 칼럼이 지면에 실릴 때면 20대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었는지 결과가 나왔을 터이다. 신문 1면에서부터 새 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크게 실릴 것이고, 초박빙의 결과에 대한 분석이 분분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나는 지면 한 귀퉁이에 실릴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은 글을 위해 머리를 짜내는 중이다. 유례없이 치열했던 선거가 끝난 게 다행이랄까. 선거가 있거나, 월드컵 축구가 열리거나, 국내외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출판은 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업계는 이런 일들로 가끔 특수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는데, 왜 이 업계는 늘 손해만 보고 특수는 없는가.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고 신문·방송에 볼 게 없어야 책이 팔린다는 얘기를 정설처럼 주고받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진실은 책이 이 사회에서 늘 서자에 불과하다는 점일 것이다. 사회가 평온하다고 해서 언제는 책을 읽었는가. 책 읽는 나라의 국민들은 정치가 혼란하면 뭔가를 알고 싶어서 책을 읽고, 날씨가 나쁘니까 책을 읽고, 날이 좋으면 햇볕에 나가 책을 읽는다. 반면에 책 안 읽는 사회에서는 정치가 이렇게 혼란한데 무슨 책이냐 하고, 날씨도 안 좋은데, 또는 날이 이렇게 좋은데 책이나 읽느냐고 한다. 책 읽는 사람에게는 세상만사가 책 읽을 핑계가 되고, 안 읽는 사람에게는 만사가 못 읽는 핑계가 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 1월 발표한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보면 비슷한 핑계를 만날 수 있다. 지난 1년간 책을 1권 이상 읽은 인구는 성인 47.5%, 초·중·고생 91.4%였다고 한다. 성인의 절반은 한 해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는 얘기다. 책을 읽은 사람도 독서량이 4.5권에 그쳐서 전년보다 3권이 줄었다. 특별히 눈길이 간 부분은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였는데, 성인의 26.5%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를 들었다. 한국의 과도한 노동시간이 책 못 읽는 이유의 하나임은 분명하지만, 이런 설문의 특성상 자기변명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증가세를 보이는 유튜브나 SNS 이용시간은 뭐란 말인가.

출판계 대표 단체의 하나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이번 대선 후보들에게 출판과 독서에 관한 정책을 묻고 답변을 받았다. 뭐든지 열심히 해보겠다는 식의 정책 답변에서는 ‘역시 관심이 없구나’라는 생각만 들었고, 차라리 후보들이 추천도서로 소개한 책들에 눈길이 갔다. 다 열거할 수는 없고, 이재명 후보가 꼽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윤석열 후보가 언급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심상정 후보가 꼽은 나오미 클라인의 <미래가 불타고 있다>가 눈에 띄었다. 과연 후보들의 문제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답변이었는데, 우리 사회의 공정성 논란과 불평등 심화, 기후위기에 대한 후보들의 관심에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윤석열 후보의 철저하게 치우친 답변이 꽤 불안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개인의 자유, 기업의 자유가 없어서 문제인가. 규제가 그토록 걱정스러운 일인가. 신자유주의 일변도의 치우친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답변이어서 차라리 솔직한 정체성 고백처럼 느껴졌다.

답변이 어떻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출판인의 입장에서 나는 답변 내용에 앞서 대통령 될 사람들이 그간 읽은 책을 뽑고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물론 대통령의 관심이 책 몇 권을 언급해서 반짝 판매효과를 일으키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는 ‘저녁이 있는 삶’이나 ‘주4일 근무제’와 같은, 책 못 읽는 국민들의 삶의 기저를 고민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처럼 TV드라마에 몰두하느라 책이라고는 도통 안 읽는 대통령에게 그런 정치적 기대를 할 수야 없지 않은가. 아무쪼록 이번에는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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