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권리를 돌려달라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가을이 되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다. 나는 유물론자로서, 이런 기분은 해가 짧아지고 일조량이 줄어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긴 탓이라고 간단히 믿는 편이지만, 요즘 들어 아는 사람의 부고나 암 선고 소식을 자주 접한 탓도 있는 듯하다. 이런 소식이 예전과 달리 범상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제 나도 노년이 머지않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진리에 한마디를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병원에서 죽는다.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니, 요즘의 죽음을 더 자세히 정의하는 게 좋겠다. 우리는 누구나 병원에서 아플 대로 아프다가 죽는다.

집에서 어르신의 상을 치른 친구가 죽음의 순간을 병원에서 맞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경찰 조사와 의사의 사망 진단과 장례 절차 등 골치 아픈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데도 ‘자연사’란 존재할 수 없고, 사망에는 반드시 의사가 판정한 원인과 경찰의 승인이 있어야만 한다는 얘기였다. 병원 아닌 곳에서 죽는 것은 꽤나 예외적인 일로, 이제 죽음은 병원과 의사의 소유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가능하다. 은유나 역설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이라면 고통과 기쁨도, 실패와 성공도, 도덕마저도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죽을 운명의 인간이기에 그 삶은 의미를 얻는다. 이처럼 죽음이라는 사태가 삶에 들어와 인간의 실존을 가능케 한다고 본 이는 하이데거였다.

하지만 의학이 죽음을 관장하면서 죽음은 실존의 조건이기는커녕 정복의 대상이 되었다. 의학이 죽음을 관장하게 되었다는 말은 인간의 삶 자체를 관장하게 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현대 의료가 치료의 초점을 아픈 사람에게서 건강한 사람으로 옮김으로써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WHO 헌장은 이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건강이란 단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체코 의사 페트르 스크라바넥은 이를 두고, “보통사람은 이런 종류의 느낌을 오르가슴이나 약물을 했을 때나 맛볼 것”이라고 조롱한 적이 있다.

현대 의료가 질병과 죽음을 넘어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는 ‘기술주의’와 ‘소비자주의’가 우선 눈에 띈다. 망치를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 신약의 개발과 의료기술의 발전은 의사로 하여금 질병의 정복이 가능하다고 믿게 했다. 하지만 기술을 가졌다고 해서 바로 치료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은 뒷전이고 질병 자체에만 집중하여, 고장 난 기계를 해부대에 올리는 것이 최선이라 믿는다. 환자는 환자대로 어떤 병이든 능력이 있으면 치료의 권리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의료 서비스는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고 고객은 만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잉의료는 의외로 병원과 의사의 이윤 추구 때문이 아니라 고객의 요구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런 소비자 요구로 인해 의료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약자에게 먼저 배분되어야 할 복지재원이 탕진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 기술적 대상이 된 것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 바탕에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고통, 노화, 장애, 죽음을 비정상적인 것, 제거해야 할 무엇으로 보는 문화 말이다. 그러는 사이 정말로 고통스러운 사람, 죽음에 처한 사람은 방치된다. 질병을 정복하겠다는 의지 앞에서 완화와 연민은 뒤로 밀려난 것이다.

게으른 탓에 나는 아직 연명치료 거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 이것부터 시작해서 죽음의 권리를 되찾는 게 우선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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