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교과서도 문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코바치와 로젠스틸이 네 번째 판본을 찍었다는 소문을 듣고 내심 기다렸다. 존경하는 언론학자 이재경이 번역하고 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한 번역본이 곧 나오리라고. 과연 ‘기자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개정 4판이 도착했다. 다른 일도 이렇게 바란 대로 착착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노래하며 표지를 넘겼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쉽지 않은 책이다. 내용이 지시하는 현실부터 그렇다. 뉴스같이 보이는 선전들, 사실이면서 편파적인 주류 언론, 공정성 논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공영방송, 폐쇄적이고 공모적인 기자단 운영 등 우리 언론 현실을 배경으로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미국 언론이라면 뭔가 다를까 싶어서 이 책을 읽는 자는 누구나 실망할 것이다. 사례의 특성과 심각성에 차이가 있을 뿐, 세계의 언론 전문가들은 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이 책을 기다렸다. 먼저 교과서로서 지위를 재빠르게 확립한 이 책이 판본을 거듭하면서 주목하고 보완하는 내용이 뭔지 확인하고 싶었다. 예컨대 성공적인 2001년 초판에 이어 7년을 기다려 나온 개정판에는 ‘확증의 언론’이란 개념이 담겨 있다. 저자들은 진실을 보도한다면서 당파적으로 흐르는 현대 언론이 어떻게 갈등을 심화하는지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20년 만에 나온 이 판본은 ‘도덕적 명료성’이란 개념을 소개한다. 이는 퓰리처상을 받은 웨슬리 로우리 기자가 이제는 뉴스의 객관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제시한 대안이다. 저자들은 그러나 기자가 도덕적으로 충실하다고 해서 객관주의가 초래하는 혼란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이들은 기자가 도덕적으로 명료하기보다 포괄적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주문하는데, 이는 어쩐지 취재와 보도의 투명한 검증을 강조했던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만 같아 실망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아직도 기자의 공정성 같은 ‘옮음’에 대한 주장을 회피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저자들은 초판에서 공정성과 균형성이 너무 모호해서 언론의 준칙으로 삼을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언론학계에 충격을 준 바 있다. 기자의 ‘옮음’이나 뉴스의 ‘좋음’의 문제를 마주하지 않고 취재의 투명함과 기사 내용의 진실성에 주목하는 것만으로 시민을 도울 수 있다고 패기 있게 주장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언론의 공정성과 불편부당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운명이며, 따라서 규제적 이성의 한계에 속한다고밖에 볼 수 없는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를 첫째 원칙으로 완고하게 밀고 있다. 이 책의 나머지 모든 부분은 현실적으로 왜 언론의 진실에 대한 다짐이 불완전하게 실현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런저런 보완적 규칙과 고려사항들로 보완해야만 하는지 덧붙인 변명처럼 읽힌다.

애초에 초판은 간결하게 언론의 기본 요소를 정해서 기자가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제목이 미국식 실용적 글쓰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스트렁크와 와이트의 <문체의 요소>와 같다. 간결하게 실천적인 요점을 전달하는 문장들도 그랬다. 그러나 판본을 거듭하며 불어난 해명과 부연 설명은 어쩐지 ‘언론학자의 관점’이 아니라 ‘기자의 관점’을 명료하게 전달했던 초판의 미덕을 잃고 있다.

장황한 문장을 읽다가 문득 멈춘다. 나는 언론의 실패에 대해 고민하는 데 지쳤다. 우리 언론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고 검증하는 일에 의무감으로 매달려 있지만 기가 빨린다. 이제는 좀 실패가 아닌 성공 사례를 놓고 현장의 기자들과 함께 축하하고 싶다. 우연한 성공과 사소한 성취라도 과정과 원인을 밝혀 재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미국 기자가 쓴 언론에 대한 변명이 아닌 우리 언론인의 취재기록과 성찰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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