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누구를 대상으로 삼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론조사를 보며 울고 웃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로는 도저히 누가 대통령이 될지 예단하기 어려우니 힘 빼지 마시라.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선거결과를 예측하겠다는 전문가의 면모를 봐두라. 대신 아껴둔 힘으로 이번 선거가 끝난 뒤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조사기관이, 누구의 의뢰를 받아, 어떤 방법론을 적용해서, 어떻게 분석한 여론조사 결과가 편향이 적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우리나라 선거 여론조사는 일단 모집단이 틀렸다. 유권자를 모집단으로 간주하는 오래된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유권자의 일부만 실제 투표장에 나와 주권을 행사할 뿐이며, 따라서 제대로 선거예측을 하겠다면 유권자가 아니라 투표자를 모집단으로 간주해서 분석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경우라면 유권자 전체를 모집단으로 간주하는 게 타당하겠다. 교육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미성년 학생을 포함한 이해관계자 모두를 대상으로 삼아 조사한 후, 학생과 일반 시민의 여론을 비교하면 좋겠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라면 유권자를 대상으로 묻는 게 적절하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결과를 놓고 조사를 하면서 투표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니 놀라운 일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지지율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다. 주요 선거를 앞두고 후보지지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투표자 등록을 마친 유권자를 모집단으로 삼아 조사한다. 그리고 선거에 임박해서 등록한 유권자 중에서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응답자 중에서 무응답을 분류해서 득표율을 산출한다. 이렇게 해도 편향이 발생하고 오차를 피할 수 없다.

유권자로부터 예상 투표자 집단을 분리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여론조사 요청을 거절하는 ‘조사거절자’의 성향을 추론하거나, 여론조사에 응답했지만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는 ‘응답유보자’의 성향을 예측하기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선진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투표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연구한다. 여론조사 응답자의 특성을 보정하는 방법론을 개발한다.

우리나라 여론조사 기관의 곤란함을 짐작 못할 일은 아니다. 싸구려 조사와 부실한 보도가 넘치는 현실에서 최소한의 방법론적 충실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조사방법의 타당성과 신뢰성은 도외시한 채 자기 편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만을 활용하려는 당파적인 언론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조사비용을 후려치려는 인색한 의뢰자에게 시달리다 보면, 투표자 예측모형을 도입하자는 게 웬 말이냐 싶을 거다.

지금이 기회다. 지금처럼 오리무중인 상황이야말로 조사방법 개발에 투자할 적기다. 다수가 여론조사를 불신하고 모두가 관행을 따를 때, 방법론적 혁신을 기해 앞서 나갈 수 있다. 예컨대 지난 선거에서 투표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을 찾아보자. 투표한다는 다짐의 말보다 과거 투표장에 나왔던 행위가 더 예측력이 있다. 사전투표를 한다면 어떻게 할지 물어 보자. 계획은 행위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준거변수다. 또한 투표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 참여 여부에 대해 물어 보자. 이번 출구조사의 긴 설문지에 실험적으로 도입하면 된다.

여론이라는 게 언론처럼 누구나 전문가인 척할 수 있다. 누구나 입이 있고 귀가 있다면 그 형성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권력에 대한 여론이라면 누구도 무심할 수 없다. 주변의 안색을 살피며, 별점을 치며, 기도 끝에 비친 형상을 해석하며 권력의 향배를 묻는 일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그래서 이 바닥에 사짜가 판친다. 다행히 선거 여론조사는 사후 결과를 놓고 평가하고 설명할 수 있다. 누가 진정한 여론의 전문가인지 이제부터라도 이론과 방법론을 꺼내놓고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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