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다시보기

‘정글스토리’

불꽃처럼 살다간 인생이 영사되는 스크린은 매번 가슴을 뜨겁게 한다. 최근 레이 찰스의 이야기를 담은 ‘레이’가 개봉하여 음악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하나가 보태졌다.

[영화다시보기]‘정글스토리’

반면 한국에선 실존한 대중음악인의 궤적을 상업영화로 담은 적이 많지 않다. ‘불꽃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님에도 그렇다. 대신 특정 계층이나 태도를 대변하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음악인을 내세운 경우는 있다.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지만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픽션, 예를 들면 ‘정글스토리’(1996)가 그런 영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이자, 얼마 전 해촉파문을 겪은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던 김홍준 감독이 10년 전에 만든 ‘정글스토리’는 당시 록 음악인들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이지 라이더, 멍키헤드, 시나위 등은 실제로 활동하고 있던 록 밴드들이었고, 도현과 함께 공연하는 사람들도 초기 윤도현밴드의 멤버들이었다. 그리고 낙원상가, 락 월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등 친근한 장소들을 볼 수 있었다.

음악하는 게 꿈인 도현(윤도현)은 상경하여 낙원상가에서 일한다. 도현은 선배를 만나 이지 라이더에 보컬리스트로 가입하여 작은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매니저 지우(김창완)에게 발탁되지만 댄스가수 일색인 오버그라운드에 진입하기는 힘들다. 방향을 틀어 라이브 중심의 밴드를 꾸리고 삭막한 공터에 세워진 허름한 비닐하우스에서 연습에 들어간다.

암울하지만 그래도 겉모습은 실상에 가까웠고, 충분한 자격과 의지가 있음에도 현실의 벽에 의해 좌절하는 약자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아이일 땐 넓어 보이던 큰 길이 커서는 좁은 골목으로 보이는 것처럼 작아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에서도 느껴진다. 김홍준의 ‘장밋빛 인생’, 그리고 임순례의 ‘세친구’와 ‘우중산책’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감독 모두 소외된 자들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정글스토리’ 역시 매니저가 가수를 키우려 하고, 밴드를 매니저가 조직하는 순간부터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엇나갔다. 일체의 지명도도 없는 밴드가 공연장을 빌려 장기공연을 감행한다는 것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모한 일이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야외무대에서의 마지막 공연으로 희미한 희망과 대안을 보여주겠다는 인식부족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절박한 현장에선 구체적이었다. ‘정글스토리’가 나올 무렵 한국에서도 독립음반사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활동하는 인디 시스템이 태동한 것이다. 거창한 구호에 의한 물결이라기보다는 자구적인 몸부림에 가까웠다. 거기에선 특이한 음악만이 아니라 80년대 중·후반이었다면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았을 법한 대중음악들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었다. 90년대의 대중음악 시스템은 더이상 진지한 음악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 대중음악의 암흑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이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구멍을 찾을 생각은 않고 풍랑 탓만 하고 있다. ‘벨벳 골드마인’과 ‘헤드윅’에서처럼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몸으로 절규하고 예술혼을 외치는 고독한 예술인의 모습은, 당장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사치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밴디트’에서의 여성주의적 저항마저도 남의 일처럼 보인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가 자본주의와 미국의 허상을 조롱한 유머도 부럽다. 그런 여유를 이제 찾을 때도 되었지만, 슬프게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바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도원|웹진 ‘가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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