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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코로나에 무너진 인간…연결·공감으로 희망 찾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민승남 옮김|열린책들|320쪽|1만6800원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덮었던 2020년 봄, 뉴욕은 봉쇄령으로 인해 고요한 침묵에 잠긴다. 맨해튼에 사는 소설가인 화자는 지인의 부탁으로 캘리포니아로 떠난 한 부부의 반려 앵무새 ‘유레카’를 돌보게 된다. 원래는 한 대학생이 맡기로 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진 탓에 화자가 급히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관계와 접촉이 단절된 시기, 화자는 유레카를 돌보는 일이 뜻밖의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유레카가 느낀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나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그 기이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에겐 유레카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갔다.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 -
책과 삶
노동자 삶 뭉개고 돈만 좇는 억만장자 ‘다보스맨’
스위스 다보스는 인구 1만명 남짓한 작은 도시에 불과하지만 해마다 1월 말이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정치 지도자와 기업 최고경영자(CEO)부터 유명 학자와 언론인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대거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기 때문이다.‘다보스맨’은 2004년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고안한 표현이다. ‘다보스포럼’이라고도 불리는 WEF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억만장자들을 지칭한다. 다보스포럼을 수차례 취재한 뉴욕타임스(NYT) 기자 피터 S. 굿맨에 따르면 이들은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야수’다. “그것은 희귀하고 놀라운 생명체로,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거침없이 공격하는 포식자이며, 다른 사람의 영양분을 빼앗는 동시에 모두와 공생하는 친구로 위장하여 보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책 판매에서 시작해 지금은 4억종 이상의 상품을 판매하는 아마존은 세계화된 분업 체제와 물류 혁신이 없었다면 성공할 수... -
새책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外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시와 소설, 두 장르에서 활약하며 주목받는 작가 수반캄 탐마봉사의 첫 소설집이다. 이민자, 여성, 어린이 등 사회적 소수자의 다채로운 삶이 담겼다. 라오스계 캐나다인인 작가는 스스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상에서 소외되고 지워진 존재들을 조명한다. 이윤실 옮김. 문학동네. 1만6800원낙원맨션방우리 작가의 첫 소설집. 2014년 김승옥 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수상한 ‘이사’를 비롯해 표제작과 ‘창문을 여는 일’ ‘물왕멀’ ‘등의 작품이 실렸다. 일상에서 서서히 또는 느닷없이 갑자기 마주하는 상실의 순간을 공허감, 불안, 단절감, 고립감 등의 정서로 담아냈다. 교유서가. 1만5500원영화감독부제는 ‘개인의 이야기로 보편적 집단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장항준, 김용훈, 하마구치 류스케, 이성진, 김지운, 한지원 등 영화감독 6명의 인터뷰를 담았다. 일과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거진B의 ‘잡스’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이다. ... -
책과 삶
신라 왕은 평소 ‘금관’ 썼을까…문화유산에 숨은 이야기 탐험
발굴과 발견도재기 지음 | 눌와 | 364쪽 | 2만4000원신라를 다룬 사극을 보면 왕은 언제나 금관을 쓴다. ‘出’ 모양과 사슴뿔 모양의 틀, 금실에 매달린 옥으로 장식한 금관의 독창적 조형미 때문일 것이다. 신라 금관은 해외로부터 전시 출품 요청을 많이 받는 대표적 문화유산이기도 하다.그런데 정말 신라 왕이 금관을 썼을까. 연구가 진행될수록 금관은 왕이 국정 수행 중 실제 쓴 것이 아니라 장례용품일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판이 너무 얇아 구조적 안정성이 떨어지고, 장식물이 많아 머리를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라 왕이 실제 왕관을 썼다면 머리를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일해야 했을지도 모른다.1971년 12월25일 동국대박물관 불교유적 조사단은 울산 울주군 주민들에게 제보를 받았다. 조사단의 불교유적 조사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주민들이 “저 아래 바위 절벽에 호랑이 같은 이상한 그림이 있다”고 알려준 것이다. 배를 타고 ... -
금요일의 문장
공화주의자라면 독재자·아첨꾼에 단호해야 한다
“자유에 대한 사랑은 독재자에 대한 혐오에 있다. 진정한 공화주의자는 자유를 혐오하는 자유의 적들을 진심전력으로 혐오한다. 그가 가진 수단이 얼마 안 될지라도 기억은 오래가고 의지는 자유의 적들 못잖게 강하다. 자유의 적들이 자신들에게 가해진 위해를 절대로 잊거나 용서하지 않듯이, 진정한 공화주의자도 자유의 적들이 가한 위해를 절대로 잊거나 용서하지 않는다. 이 두 부류 사이에는 적의만 있을 뿐이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아티초크) 윌리엄 해즐릿(1778~1830)은 영문학사에서 조지 오웰에 견줄 만한 탁월한 에세이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는 국내에 번역된 그의 두 번째 에세이다. 버지니아 울프에 따르면 해즐릿은 “평생 소수파로 남아서 자유와 동포애와 혁명의 신조를 옹호했다.” 급진적 공화주의자였던 해즐릿은 ‘독재자와 아첨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 개인의 넘쳐나는 권력은 사람... -
낙서일람 樂書一覽
만년 2군 야수 선우씨 ‘타격이 확 바뀐 이유’
데드볼손장훈 외 지음황금가지 | 508쪽 | 1만8000원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밤 9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잠실 야구장.한마디로 선우는 밤 9시의 잠실 야구장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시간 그 장소에 서 본 적이 없다. 나이 서른이지만 아직 1군 무대를 밟아 보지 못한 프로야구 2군 선수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왜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냐는 어린 딸의 물음이 잊히지 않는 그는 1군으로 올라서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염원과는 달리, 그의 실력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고, 이제는 2군 타석마저 위태롭다. 그러던 어느 날, 선우는 경기 중 데드볼을 맞고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충격에 기절했다가 눈을 뜨니 방금 전, 공이 날아오기 직전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다. 선우는 곧 이 현상의 원리를 깨닫는다. 데드볼을 맞을 때마다 시간이 되돌아간다. 덕분에 선우는 마치 독심술이라도 쓰는 듯 상대를 완벽히 예측하며 타격을 이어갔... -
이미지로 여는 책
어느 날 찾아온 바위가 몸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면
바위와 소녀크리스틴 인트번 글 | 마르타 베르샤펠 그림박서영·정원정 옮김브.레드 | 78쪽 | 2만원빵 반죽을 하던 소녀의 집에 거대한 바위가 배달된다. 소녀는 이런 바위를 주문한 적이 없지만, 배달원은 소녀의 것이 분명하다며 바위를 안겨주고 떠난다. 단단하고 거칠고 차갑고 거대한 돌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역시 버려야 한다. 하지만 바위는 어느샌가 소녀의 몸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바위는 예고 없이 닥친 불행, 고통, 떨쳐지지 않는 짐이다. 자동차 세 대에 코끼리 일곱 마리를 얹은 만큼 무겁다. 깔려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무게지만, 바위는 소녀를 죽이진 않는다. 소녀는 바위를 버리러 간 골짜기에서 바위와 함께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어쩌면 계속 바닥에 누워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바위를 이고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소녀는 누군가 던져준 밧줄을 붙잡고, 수도 없이 미끌어지면서도 다시 위로 올라가길 택한다. 여전히 몸에 붙... -
남자는 왜 나이 들수록 절친이 줄어들까
코미디언 맥스 디킨스는 영국 런던에 사는 30대 중반의 남성이다. 여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려던 어느 날, 그는 신랑 측 들러리로 세울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는 사람이야 많지만 ‘친구’라고 할 순 없는 사이이고, 온라인 메신저에서 가장 최근 친구와 대화한 것은 몇 달 전이었다. 구글에 “신랑 들러리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요?”라고 검색하자 이미 많은 남성들이 작성한 비슷한 게시물이 쏟아진다. 디킨스의 머릿 속엔 커다란 질문이 떠오른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는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책이다. 디킨스는 결혼식 들러리 찾기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으로부터 출발해 점점 넓고 깊게 ‘남성의 우정’을 파고들어간다. 자신이 왜 남성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지 않게 되었는지, 남성 간 우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지, 남성들이 동성 친구 앞에서 왜 ‘약함’을 드러내지 못하는지 질문은 꼬리에... -
전쟁·식민지배 상흔 다룬 동남아 문학 작품 잇따라 번역·출간
전쟁과 식민 지배의 아픔을 다룬 베트남, 필리핀 등의 동남아시아 문학 작품들이 잇따라 국내에 번역·출간되고 있다.국내 독자들에게는 아직 낯선 동남아 문학이지만, 강제 점령과 전쟁이라는 고통스러운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만큼 한국 독자들도 공감할 작품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베트남의 퇴역 군인이자 소설가인 스엉응웻밍의 단편집 <랑하의 밤>(도서출판 b)은 13개의 단편소설을 묶은 작품집이다. 대령으로 퇴역할 때까지 20여 권의 책을 출판한 저자는 이번 소설집에서 베트남 전쟁에 초점을 맞춘다. 전쟁의 참혹함뿐만 아니라 그 후유증으로 인한 상실과 좌절을 날카롭고 처절하게 그려냈다.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산이 노래하다>(마르코폴로)는 베트남 소설가 응우옌 판 꾸에 마이(52)의 장편소설로, 프랑스 식민지 시기부터 베트남의 남북 분단과 전쟁에 이르기까지 20세기 격변의 역사를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 -
책과 삶
숲과 우리의 삶은 이어지고 얽혀 있다
세계숲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 지음 | 노승영 옮김아를 | 320쪽 | 2만원다섯 살의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는 진노랑 가시금작화가 반짝이는 들판에 있었다. 말과 당나귀가 가시금작화의 잎을 베어 물었다. 말과 당나귀가 눈 똥에서는 맛 좋은 주름버섯이 자랐다. “가시금작화는 콩과에 속한다. 콩과는 부지런한 질소고정식물이다. 말은 질소를 섭취해야 한다. 말똥에는 질소가 풍부하다. 이 질소 덕에 주름버섯은 자실체를 틔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버섯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이것이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 식물학자인 저자가 “숲과 우리의 삶은 이어지고 얽혀 있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시적인 언어와, 과학자의 엄밀한 언어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나무의 제인 구달’이라고 불리는 저자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1960년대 초부터 내다봤다. 숲의 ‘어머니 나무’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나무가 화학적 언어를 통해 소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나무에는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