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하세요, 폭력의 현장 속 고통 받는 여성들을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이브 엔슬러 지음|김은지 옮김|푸른숲|410쪽|1만8800원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 위치한 부카부에는 ‘기쁨의 도시(City of Joy)’라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회복 공동체가 있다. 내전이 장기화되고 분쟁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부군, 반군, 민병대할 것 없이 여성들을 강간했다. 강간은 공동체를 파괴해 광산을 차지하려는 군대의 전쟁 전술이자 무기였다. 강간 피해를 입고 살아남은 여성들을 부카부 판지병원을 찾았다. 의사 드니 무퀘게는 헌신적으로 그들을 치료하고 지원했다. 헌신과 신뢰, 연대로 ‘기쁨의 도시’가 건설됐다. 무퀘게는 이 공로로 201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2018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기쁨의 도시>는 전쟁 범죄 피해자인 콩고민주공화국 여성들이 끔찍한 기억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맞서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는 절망의 폐허 속에서 ... -
팔자 좋은 양반? 먹고사는 데 진심이었다
양반과 선비정진영 지음|산처럼1권 368쪽·2권 328쪽|1권 2만4000원, 2권 2만원그 사람 참 양반이네.이 양반아, 눈깔도 없어?우리는 일상에서 ‘양반’이라는 단어를 상찬으로, 욕으로, 때로는 ‘저기요’처럼 누군가를 부르는 중립적 호칭으로 다양하게 사용한다. 양반은 고려시대의 문반, 무반을 지칭하던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점차 문반, 무반에 소속된 사람과 그 후손, 인척 등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양반과 통용돼 쓰이는 ‘선비’라는 단어는 비슷하게 느껴지나 확실한 차별점이 있다. 선비는 공자, 맹자로부터 유래된 말로, <맹자>에서 선비는 “떳떳한 생업이 없으면서도 떳떳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설명된다. 선비는 학문에 정진해야 하는, 인(仁)과 의(義)로 무장한 전문 지식인 집단이었다.“조선시대는 양반의 사회였고, 선비의 시대였다.”조선시대 민중운동사와 ... -
당과 인민 外
당과 인민중국에서 당과 인민의 관계는 현대 중국의 발전과 함께 진화했고, 시진핑 체제에서 다시 한 번 진화했다. 조지워싱턴대 정치학과 국제문제 교수 브루스 J 딕슨이 중국 공산당을 중심으로 현대 중국의 정치 체제를 분석했다. 박우 옮김. 사계절. 2만6000원메리와 메리최초의 페미니즘 저서로 꼽히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와 그의 딸이자 과학 소설의 고전 <프랑켄슈타인> 저자 메리 셸리의 전기다. 여성의 권리 증진에 헌신한 사상가, 낭만주의 문학 선구자의 이야기다. 샬럿 고든 지음. 이미애 옮김. 교양인. 3만8000원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한국 과학의 토대를 만든 근현대 과학자들을 조명한 책.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과학기술인을 발굴해 삶의 자취를 추적했다. 최초의 화학자 리용규부터 한국 유기광화학 분야를 개척한 심상철까지 자연과학 분야 인물 30명을 소개한다. 김근배 외 지음. 세로북스. 4만90... -
불합리한 지시엔 ‘의문’을 품어라
진짜 노동데니스 뇌르마르크 지음 | 손화수 옮김 자음과모음 | 468쪽 | 2만2000원2014년 노키아 최고경영자 스티븐 엘롭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열망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e메일을 직원들에게 발송했다. 이후엔 ‘전략’ ‘가장 많은 가치’ ‘미래’ ‘생산성’ 같은 어휘들이 이어졌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정작 발신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기 어렵다. ‘더 많은 일’은 무엇인지, ‘전략을 가시화’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호하다.인류학 전공자로 노동·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데니스 뇌르마르크는 전작 <가짜 노동>에서 직원을 바쁘게 하지만 정작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직장 문화를 지적했다. 끝없는 회의, 불필요한 서류 작업 등의 문제점을 말했다. 후속작 <진짜 노동>에서 그는 엘롭의 메일이 ‘훌륭하고 전문적’으로 보이지... -
‘안전한 책’이 좋은 책일까?…흥미진진 ‘금서의 세계’로 떠나자
나쁜책김유태 지음글항아리 | 404쪽 | 1만9800원최근 공개된 박찬욱 감독 연출의 미 HBO 시리즈 <동조자>는 비엣 타인 응우옌이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베트남·프랑스 혼혈이면서 남북 베트남의 이중 스파이인 주인공이 두 개 문명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분투하는 이야기다.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인 응우옌은 데뷔작인 이 장편 소설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최고 권위의 상 수상에 TV 시리즈화까지. 작가의 고국 베트남이 떠들썩해질 법하다. 그러나 정작 베트남은 조용하다. <동조자>는 베트남에서 출간조차 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공산당과 공산주의 활동에 대한 소설 속 묘사 때문으로 추정된다.<나쁜 책>은 <동조자>를 비롯한 금서의 세계로 떠나는 책이다. 정치 권력, 종교 등에 의해 ‘나쁘다’고 규정된 책들이다. 시인이자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인 김유태가 썼다. 매주 출판사에서 ... -
노벨상 숨은 비결은 호기심과 재미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브라이언 키팅 지음 | 이한음 옮김 다산초당 | 272쪽 | 1만8500원‘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있다. 수십년간 실험실에 틀어박혀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 강한 자기 확신과 고집으로 이제껏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던 과학적 사실을 증명해내는 사람.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는 물리학자인 브라이언 키팅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9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그런데 인터뷰 질문이 조금 특이하다. 키팅은 1979년 노벨상을 수상한 셸던 글래쇼에게 ‘물리학자에게 자존심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고 묻는다. 88세가 된 과학자 라이너 바이스에게는 ‘지구에서 88년 동안 쌓은 지혜 중 미래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젊은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애덤 리스에게는 ‘뛰어난 동료를 만났을 때 자신감을 잃거나 자기 자신을... -
“그는 가질 뻔했던 것이 사라졌단 사실을 알았다”
그는 자기가 가질 뻔했던 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경험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고 혹여 온다 해도 자기가 물리치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힘든 일이 닥치면 그는 우주의 먼지로 작아지면서 곤경을 벗어날 수 있었다.”<힘내는 맛>(문학동네) 중에서서른여섯 살 영업사원 한철에겐 부양해야 할 부모가 있고,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하는 사고뭉치 동생이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자신을 꾹꾹 눌러가며 살아온 한철은 어느 날 6주 과정의 무료 연극 강좌에 참여하게 된다. “연기를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직접 무대에 서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철은 이내 연극에 빠져든다.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른 채 줄곧 원하던 것을 방금 손에 넣은 것 같았다.” 한철은 연극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강좌 마지막 공연 날 이를 연출자에게 말하기로 한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한철은 뜻밖의 관객을 만난다.처음 가족을 벗어... -
할아버지 이발소는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꽃비’
바다의 꽃비스케노 아즈사 지음·유하나 옮김곰세마리 | 32쪽 | 1만4500원바닷가의 작은 마을, 아담한 집들 사이에 파란색 문을 단 이발소가 있다. 이발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녀이자 그림책의 화자인 ‘나’는 여름방학마다 이곳을 찾는다. 할아버지의 작은 이발소에서 나는 심심할 틈이 없다. 소란스러운 이발소는 신기하고 재미난 일 투성이다. 손님이 가고 나면 할아버지는 나의 머리카락도 싹둑싹둑 잘라준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은 ‘남자 아이’ 같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과 귀끝을 스치는 가위소리가 좋기만 하다.거실에서 간식을 나눠먹다 창밖으로 펼쳐진 맑은 하늘을 보면서 할머니가 문득 ‘꽃비’ 이야기를 한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봄과 가을이면, 동네 사람들이 꽃비 구경을 가자고 했어. 바다로 저무는 노을을 보고 있으면 반짝반짝 알알이 퍼지는 노을빛이 꽃비 같았거든.” 할머니는 “꽃비는 소중한 사람이 꽃이 되어 만나러 오는 거”라고 말해... -
“혐오문제 말해볼까요?”···다정한 공간 만드는 ‘무수’씨의 하루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혐오문제’를 우리는 얼마나 이야기하며 살고 있을까. “서로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 민감한 주제라고 생각해요.” 나인채씨(27)가 말했다. 모여 앉은 참가자 너덧 명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전시를 무대로 혐오문제 말해요’라는 제목의 모임 참여자들이 21일 경기 수원시립미술관 1층에 둘러앉았다. 이들은 여성 노동을 주제로 한 전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둘러본 다음 각자의 감상을 나눴다.대화에 앞서 이 모임을 주최한 미디어 스타트업 모어데즈의 대표 홍슬기씨(33)가 ‘약속문’을 함께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다정한’ 모임을 위한 약속문에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대화가 시작되자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물류센터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해아씨(활동명·35)는 “아직도 ‘여자랑 얘기하기 싫으니까 남자 바꿔’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전시를 보며 내 노동도 저평가... -
‘삼체’ 인기에 책 ‘침묵의 봄’판매량 급증··· OTT 효과 탄 ‘드라마셀러’
류츠신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1화에는 ‘불온서적’ 한 권이 나온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 아버지를 잃고 농촌으로 하방돼 벌목작업을 하던 예원제(로절린드 차오)에게 한 인민 청년이 영어 원서 한 권을 건넨다. 책의 제목은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 청년은 “서구에서 영향력이 큰 책으로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폐해를 기술했다”며 “우리가 이렇게 계속해서 자연을 파괴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어떨지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당시 영어원서는 금지돼 있었고, 예원제는 밤중에 손전등을 켜고 이 불온서적을 몰래 읽는다. 예원제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인류 문명 발전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침묵의 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기존의 시각을 더 굳힌다.세계적으로 흥행한 드라마의 영향력은 굉장했다. <삼체>의 흥행으로 인해 침묵의 봄 판매량이 드라마 공개 후 크게 증가한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