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익환 30주기 추모 문집 발간
문익환 목사(1918~1994) 별세 30주기를 기념하는 추모 문집 <반드시 돌아올 계절, 늦봄>(다산책방)이 출간됐다.구약학자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문 목사는 59세가 되던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을 주도하면서 재야 활동을 시작했다. 반독재·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문 목사는 총 6차례 투옥됐다. 투옥 기간은 10년 3개월이 넘는다.이번에 출간된 30주기 추모 문집에는 신학자, 시인, 목사, 재야운동가로서 살았던 문익환을 다각도에서 조명한 글들이 실렸다.문익환의 아들이자 배우인 문성근의 고교 동창으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시절 문익환의 동지이기도 했던 시인 김정환은 추모글을 통해 1970년대 문 목사가 주요 번역자로 참여한 공동번역 성서를 두고 “걸작 장편을 능가하는 문학이고 큰 시인이라는 호칭도 어쭙잖다”고 평가했다. 공동번역 성서는 기존 성경의 난해한 한자어 어휘와 생경한 고어투를 지양하고 성경 구절을 현대적이고 읽기 쉬운 한국어 문체로... -
중국에서 소설 2위, 뒤늦은 주목 황석영…“근대의 구멍난 곳 들여다 보는 것이 문학”
“한국은 겉모양이 선진화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방에 펑크 난 곳을 때운 것 같은 ‘구멍마개’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개를 열고 구멍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지난 1일 중국 베이징 한국문화원 강당을 가득 메운 150명가량의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출판사 시론이 마련한 황석영 작가(81)의 강연을 들으러 온 이들이다.황 작가는 “사회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이들은 청년들”이라며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부른 외환위기를 겪고 2000년대 들어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돼 버린 것을 예로 들었다. 황 작가는 “근대는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가 보는 것이며 따라서 전 세계의 근대화는 모두 왜곡된 근대화일 수밖에 없다”며 “<해질 무렵>은 청년의 시각으로 마개를 열고 구멍을 들여다본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에서는 2015년 출간된 <해질 무렵>은 서울 달동네 출신의 성공한 6... -
책과 삶
미래 체제로 소환되어 온 ‘시대 지체자들’
스위트 솔티황모과 지음 |문학과지성사 |304쪽 |1만7000원2030년 한국. ‘나’는 ‘스마트보디’ 갱신센터에서 일한다. ‘시대 지체자’들에게 인간 신체를 뛰어넘는 다양한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보디’를 제공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시대 지체자’들은 마치 냉동인간처럼 몸의 시간이 정지한 상태로 과거에서 미래로 건너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인간 고유의 신체인 ‘플랫보디’를 지니고 있어 지극히 제한적으로 세상을 감각하고 정보량 또한 현저히 적다. 또한 수십 년의 시간 공백으로 시대 감각 또한 정체돼 있어 국가는 이들에게 치료와 재활, 돌봄 등을 전액 국비로 제공해 이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한다. 그런데 이 ‘시대 지체자’들은 어쩌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미래의 체제로 소환되어 온 것일까. 게다가 왜 국가는 이들의 복귀를 전폭 지원하고 있는 것일까.소설가 황모과의 소설집 <스위트 솔티>... -
책과 삶
애절한 ‘헌사’처럼…유품으로 ‘어머니의 삶’ 복원한 딸
굿바이, 영자씨박정애 지음 사람의무늬 | 288쪽 | 2만원미술사학자인 딸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래며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어머니를 추모하고 기억하기로 한다.장롱 깊숙한 곳에 있었던 흑백 사진, 엄마가 매일 쓰던 일기장, 휴대폰 속 저장된 사진, 먹을거리와 함께 보낸 메모지…. 미술사학자로서 옛사람이 남긴 그림이나 생활용품을 대하듯, 엄마의 유품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정성스레 기록하면서 어머니 ‘허영자’의 삶을 복원한다.1940년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난 영자씨는 꾸미기를 좋아하고 마을에서 옷을 가장 잘 입는 소녀였다. 국민학교는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 중학교 교복을 닮은 카라옷을 지어입고 사진을 찍고, 친자매 같은 사촌동생과 함께 시내로 나가 ‘불파마’를 한 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멋쟁이였다. 하지만 결혼 후 영자씨에게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진다. ‘뒤꼭지가 예뻐서’ 반했다는 아버지와 ... -
우석훈 “국가 소멸 막으려면 ‘알바 공화국’으로 가야”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OECD 회원국 중 1.0 미만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통계청은 우리나라 인구가 2024년 5200만명에서 2072년 3600만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의 전망은 더 과감하고 더 암울하다. 최근 출간된 <천만국가>(레디앙)에서 그는 “연간 10만명이 태어나고 기대수명이 100년이며, 이 같은 조건이 장기간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최종인구수는 1천만명 정도 된다”면서 “그걸 ‘천만국가’라고 부르기로 하자”고 말한다.오랫동안 한국은 노동에 비해 자본이 부족한 ‘자본 희소 사회’였으나 인구 감소 여파로 ‘노동 희소 사회’로 바뀌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스웨덴(1054만명)이나 스위스(885만명) 같은 강소국가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노동력이 풍부했던 시절에 형성된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책과 삶
어느날 집안으로 들이닥친 전체주의, 뉴스가 현실로
예언자의 노래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은행나무 |364쪽 |1만8000원여느 날처럼 적당히 피곤하면서도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미생물학자이자 네 아이의 엄마인 아일리시는 어둠이 깔린 정원을 바라보던 중 갑작스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방문자는 교원 노조 간부인 그녀의 남편 래리를 찾으러 온 GNSB(사복 경찰)들이었다. 경찰들은 명함을 전달하며 남편에게 최대한 빨리 연락해줄 것을 독촉하며 돌아갔다. 아일리시는 불길한 느낌을 떨치려 하지만, 문밖에 있던 “어둠의 일부가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느낀다.2023년 부커상 수상작인 폴 린치의 소설 <예언자의 노래>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전체주의가 일상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문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한 전체주의의 침입은 이내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평범한 삶의 기반을 모조리 무너뜨리며 아일리시... -
책과 삶
“구해줘 지구를!”···동물의 지혜에 접속하는 ‘동물 인터넷’
마르틴 비켈스키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장은 1990년대 후반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조류학자 빌 코크런과 함께 월동지를 찾아 이동하는 올리브색지빠귀들을 추적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밤마다 차를 몰고 소형 발신기가 부착된 새들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동안 놀라운 발견을 했다. 새들은 통념과 달리 목적지를 향해 단숨에 비행하지 않았다. 새들은 일정한 고도까지 올라가 소리를 내서 다른 새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른 새가 없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다시 소리를 냈다. 끊임없이 재잘대며 다른 새들과 신호를 주고받았다. “새가 타고난 유전 암호를 따르는 생각 없는 자동 기계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며 어느 고도로 날아갈지, 어느 방향으로 날아갈지 논의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하지만 대륙을 횡단하는 새들을 토네이도 추격자들처럼 차를 타고 뒤쫓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를 인공위성을 사용해 포착한다면 어떨까. 만약 지구상의... -
책과 삶
유물 2000개로 보는 태초의 모계 사회
인류 공동체는 태초부터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제’ 사회였을까. 고고학자이자 선사학자인 마리야 김부타스는 부계 사회 이전에 모계 사회가 있었다는 역사를 밝혀냈다. 김부타스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남성 중심 문명은 일시적이며 전쟁과 지배의 문화는 병리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김부타스의 <여신의 언어>는 1989년 처음 출간돼 고대 그리스를 원류로 삼았던 서구 문명에 큰 충격을 줬다. 한국에선 2017년 초판이 절판된 이후 7년 만에 복간됐다. 이 책에는 기원전 7000년경부터 3500년까지 고대의 사원, 신전, 무덤에서 발굴된 조각, 인형, 프레스코화 등 2000개가 넘는 유물의 도판과 그림이 실렸다. 용어 해설, 연대표, 유물 출토지 지도까지 부록으로 담아 1만년 전 세계를 복원한다.신석기 시대까지 신을 묘사한 석상의 90%는 남신상이 아니라 여신상이었다. 김부타스는 여신을 모성으로 설명하는 유럽 문명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여신들의 다양한 주... -
팬클럽 생기고 사인회 매진···아이돌 아니고 ‘에세이 작가’입니다
독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필력은 기본, 뚜렷한 가치관과 개성으로 주목을 받는 에세이 작가들이 있다. 이들은 삶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글로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그들의 철학과 라이프스타일까지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 이제 이들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아이돌처럼 팬클럽이 운영되고, 북토크 예매가 ‘10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막강한 티켓파워를 자랑한다. 작가가 여는 행사에 기업이나 지자체의 후원이 잇따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이반지하의 공간침투> 등에서 ‘정상성’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를 독보적인 유머와 파토스로 비판해온 이반지하 작가. 퀴어 페미니스트, 현대미술가, 퍼포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거침없이 자신만의 예술을 펼치는 이반지하의 존재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다. 그의 팬클럽 ‘감태’는 단순한 팬을 넘어 그의 작품 세계와 메시지를 지지하는 커뮤니티다. 특히 팬클럽에는 퀴어... -
“떠난 이들 기억하고, 남은 이들 잘살도록”…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맞아 열린 전시회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를 애도하고 세상에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전시가 열렸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은 1998년 11월2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로 살해당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리타 헤스터를 추모한 데에서 유래했다.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는 19일 서울 중구의 ‘공간채비’에서 트랜스젠더 추모 도서전 ‘안녕을 기억하기, 기억으로 살아가기’를 열었다. 전시회장 곳곳은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색과 하늘색의 종이꽃·깃발로 장식돼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검은색 빈 액자와 꽃이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리나 조각보 활동가는 “이 액자에는 과거의 나 자신의 얼굴이 들어갈 수도, 세상을 떠난 우리의 동지들의 얼굴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성 정체성을 깨닫기 이전의 자신,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다른 트랜스젠더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전시회장 벽면 한쪽에는 ‘11월의 일상’을 주제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