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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 회담, 국정기조 전환·민생 길 여는 자리 되어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오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회담하기로 했다. 천준호 민주당 대표비서실장은 26일 “총선에 나타난 민심을 가감없이 윤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국민이 원하는 민생 회복과 국정기조 전환 방안을 논의하는 회담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별한 의제 제한은 두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초 민주당은 회담 의제를 조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대통령실이 난색을 표해 난항을 겪었다. 이 대표는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했다.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일단 만나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압도적 과반 의석을 점한 제1 야당 대표이다. 이 대표가 협조하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취임 후 2년이 되도록 이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앉은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의 이런 비정상적·독단적 국정 운영은 4·10 총선에서 엄중히 심판받았다.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접고 정치를 복원... -
서울시의회 학생 인권·공공 돌봄 역주행, 온당치 않다
서울시의회가 26일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서울사회서비스원(서사원)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시민사회와 서울시교육청,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다수당인 국민의힘이 표 대결로 밀어부쳤다. 학생 인권을 더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있는 조례마저 없애고, 지금도 턱없이 부족한 돌봄서비스 공공기관을 없애는 것은 인권의 가치와 공공돌봄 강화라는 시대의 책무에 역행하는 것이다.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것은 충남에 이어 두번째다. 앞서 지난 24일 충남도의회에서도 국민의힘 주도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됐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쪽에서는 교권 추락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과거처럼 학생의 권리를 억눌러야 교권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주장은 사안의 본질을 호도할 뿐이다.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권리는 공존 가능한데도 ‘제로섬’인 양 간주하는 것은 학교 구성원 간의 권리를 적대적 관계로 규정하는 것이다. 더 실효적인 보완책도 상호 간에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방적인 학생인권조례... -
‘대충’ 한국 vs ‘치밀한’ 인도네시아…한국은 이미 졌다
단기간 대충 운영되고 꾸려진 팀과 오랜 시간 단단하게 다져진 팀 간 대결이었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상대전적에서는 앞섰지만 인도네시아가 4년 동안 쌓아온 땀과 노력에는 무릎을 꿇었다. 한국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를 강호가 아니라 약체에 패하면서 뼈아프게 배웠다.한국은 26일 아시아 23세 이하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패했다. 연장전까지 이해하기 힘든 수비축구, 맥락 없는 개인 플레이로 간신히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10-11로 졌다. 9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자랑해온 한국은 FIFA랭킹 134위에게 패하면서 굴욕을 당했다.인도네시아는 신태용 감독이 부임한 뒤 4년 동안 만들어진 팀이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선수들을 귀화시켜 공격수 등 취약 포지션을 메웠다. 이번 대표팀에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선수 3명이 인도네시아 대표로 출전했다. 한국전에서 2골을 넣은 라파엘 스트라이커도 네덜란드에서 출생한 공격수다.인도네시아는 국가대표팀과 올림픽... -
허울뿐인 민생이 아닌, 노동입법의 정치
한 달 후면 21대 국회도 마무리다. 곧 22대 국회가 출범한다. 그러나 지난 4년의 모습을 답습하면 안 된다. 되짚어 보면 21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여야의 눈치로 차별금지법은 좌절되었고 노조법 2·3조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가로막혔다. 정부 부처와 관료조직의 소극적 행정 또한 제도의 지체에 영향을 끼쳤다. ‘아프면 쉴 권리’를 위한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구멍투성이고 전국민고용보험은 소리 없이 정책에서 사라졌다. 이 모두 우리 사회가 차별이 아닌 평등으로 나아가야 할 바로미터인데도 말이다.21대 국회 평가는 여러 잣대가 있겠지만 입법성과만 살펴보자. 지난 4년 동안 국회에서 약 2만6783건의 법안을 다루었다. 그러나 법안 처리는 36.1%(9676개)에 불과하고 그 외 다수는 처리되지 못했다. 문제는 시민의 삶과 밀접한 고용노동과 보건복지 법안들 대부분이 계류된 점이다. 통과 법안 다수는 경제·산업, 건강·안전, 인권·참여 분야다. 그에 비해 복지돌봄과 고용노동 분야는 ... -
시대정신이 사라진 나라
한때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시대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에야 날개를 펴듯, 시대정신은 그 시대가 저물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헤겔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 알아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 비밀을 먼저 손에 쥐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자신이 있든 없든, 일단 그것을 천명하려고 노력했다. 권위주의에서 보통사람들의 시대로, 다시는 군인이 권력을 잡을 수 없는 문민통치의 시대로, 평화적 정권교체로 증명된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고 관치를 넘어 공정한 시장경제의 틀을 만드는 것, 선거 때 표만 던지는 유권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시대정신이었다.어느 순간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시대는 역행했다. 이명박 후보의 747 공약은 박정희 개발독재 모조품이었고,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향수의 결정체였다. 민주화... -
지금이 사과 타령이나 할 때인가
지난달 베란다 화분에 홍로 사과나무를 옮겨 심었다. 지난 2년간 뒤뜰에 있던 것인데 일조량이나 기온 탓인지 도통 꽃을 피우지 못해서다. 북쪽에선 싹 틔우기도 힘드니 꽃이 필 리 없다. 올해는 홍로를 맛볼 수 있을까.올해만큼 이토록 화려했던 봄은 내 일찍이 못 봤다. 진달래, 개나리가 벚꽃과 동무가 되고, 목련이 채 피기도 전 벚꽃잎이 봄바람에 휘날린다. 조팝꽃이 산수유보다 일찍 향을 뽐내질 않나. 온통 뒤죽박죽이다. 봄의 전령들은 어쩌다가 이런 철부지가 됐을까. 덕분에 봄나들이는 멋지게 즐겼지만 왠지 씁쓸하고, 슬슬 불안해진다.누구는 <침묵의 봄>(1962)을 우려했어도, 우리는 이 ‘화사한 봄’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만일 봄 기온이 갑자기 3도 정도로 떨어져 수십일 지속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농작물은 태반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할 것이다. 어떤 영화처럼 자전축이 틀어지거나 하는 사태가 아니어도 이런 위험이 불현듯 닥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 -
돌고래가 원고가 되는 세상
전 세계 기후소송이 2만2000건을 넘어섰다. 기후소송은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을 방지하거나 이미 발생한 손실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소송으로, 최근에는 공공 과실 또는 국가 과실 주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국가가 기후위기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에 근거해 과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달 23일 기후 헌법소원 변론이 열려,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미진해 헌법과 기본권을 침해하고 미래세대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며 정부에 항의했다. 2020년 3월 소송을 제기한 이후 4년 만에 청소년과 시민, 영유아, 법률가 등이 함께 입을 모았다.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가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독일의 헌법은 국가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자연과 동물을 보호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밀림개발을 막는 재판에서 승소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 마오리족의 터전인 황거누... -
서정춘이라는 시인
외출했다 돌아오니 책상에 흰 편지가 놓여 있다. 인정머리 하나 없는 인쇄체의 청구서 따위와는 확 비교되는, 정겨움이 폴폴 나는 시인의 손글씨였다. 봉투를 뜯으니 어느 신문의 서평 스크랩이 나왔다. 내가 식물에 관심이 많은 걸 알고 가끔 이렇게 챙겨주신다.시인을 처음 소개해준 이가 전해준 남도 여행의 일화.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조금 일찍 수저를 놓고 시인은 일어나 마당으로 나간다. 이 지역과 연결된 자잘한 화단의 근황부터 종내에는 큰 나뭇잎의 뒷꼭지까지를 요모조모 살핀다. 송아지의 귀를 살피듯 잎사귀의 털을 매만지면서 방금 놓은 숟가락과 잎은 왜 이리 닮았을까. 뭐, 그런 궁리도 하는 것 같은 시인의 뒷모습.봄이 되면 꽃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곳을 찾아 나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구례-순천을 연결하는 송치재의 보람찬 골짜기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얼레지 앞에 엎드리는데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아버지 삽 들어갑니다/ 무구장이 다 된 아버지의 무덤을 열었다/ (…)/ 어... -
‘과일사막’을 막자
낮에 한여름같이 더운 4~5월에도 귤이 나온다. 청로다. 만생종인 이 귤은 당도가 15브릭스 정도로 높다. 적절한 산도도 있어 입안에서 느끼는 균형감이 절묘하다. 균형감은 긴 여운으로 이어진다.나는 청로 같은 감귤류를 초겨울부터 5월까지 즐기려고 한다. 퇴근하고 바로 감귤류를 먹으면 낮 동안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씻겨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딸기와 사과 같은 당과 산이 조화로운 과일을 먹을 때도 비슷한 효능을 느낀다.그런데 며칠 전 청로를 아내 대신 직접 사서 귀가했는데 가격에 놀랐다. 2㎏에 2만3600원이었다. 작년에 1만5000원 정도 했던 데 견줘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과일값은 올 초부터 큰 폭으로 올라 사회적 이슈가 돼왔다. 오름 폭도 컸지만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슈가 된 탓도 있었다. ‘애플레이션’(사과를 뜻하는 애플+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민생 경제의 화두로 떠올랐다.실제 우리나라 과일 가격 상승률이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수준이다.... -
다시, 공부란 무엇인가
새삼 공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내가 속한 작은 인문학공동체와 나의 공부에 대한 질문이다. 신도시 주택가에서 16년 전 처음 마을인문학 공동체를 열었을 때, 세상에서는 우리를 ‘공주(공부하는 주부)’로 불렀다. 당황했지만 현실이었다. 이후 ‘공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은 “다른 공부가 다른 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다시 모스, 마르크스, 폴라니 등의 공부로 연결되고, 또다시 마을작업장, 마을화폐의 실험으로 나아갔다. 이후 청년들이 오면 “청년들과 중장년 세대의 연대”라는 화두를 붙잡고, 또 밀양과 엮이면 “에너지 정의와 탈성장의 삶”이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공부가 진행되었다.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진화란 자연선택이 아니라 자연표류라고 한다. 마치 산꼭대기에서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똑바로 흘러가다가 돌이나 나무에 걸려 진로를 바꾸기도 하고 비바람의 영향도 받으면서 불규칙하게 흐르듯이, 진화도 그렇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우리 공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