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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 어떻게 할까
연금개혁에서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가 뜨거운 주제로 부상했다. 정부는 이 장치가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야당은 은퇴 후 연금액을 대폭 삭감하는 조치라고 비판한다. 두 주장 모두 사실이다. 재정이 안정되는 만큼 급여는 낮아질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논의가 필요한가이다. 나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이번 연금개혁에선 상호 공방만 벌일 이 주제는 제외하고 우선 시급한 과제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자동조정장치는 경제, 인구 환경이 변하면 이를 자동으로 국민연금 제도에 반영하는 수단이다. 국민연금 발전 방향에 대해 저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경제, 인구는 국민연금 제도 밖 객관적 변수다. 공적연금 철학·가치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연금제도 밖 변화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그대로 연금개혁에 포함하자는 취지를 지닌다. 저성장, 초고령 시대에 연금개혁의 탈정치화라 볼 수 있다.자동조정장치는 이미 외국 연금개혁에서 주요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OECD... -
대학살들의 역사
“Never Again(다신 안 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력과 살상 행위를 묵인하는 논리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기억하면서 다신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유대인의 생명과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종의 ‘판단 원칙’으로서 작동해 왔다.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세계적 철학자가 이를 옹호하기도 했거니와, 내 주변에서도 이에 심정적으로 동조한다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유대인 대학살이 또 다른 학살을 정당화할 정도로 인류 문명사에 있어 그토록 특별한 일일까?얼마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비판적섬이론학회’에 참가한 영국의 비판이론가 마크 데브니는 유대계 독일 철학자인 아도르노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아도르노는 근대적 기획인 ‘이성’이 어떻게 홀로코스트와 같은 야만을 초래하게 되었는가를 비판하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를 서구 유럽의... -
합창단
전에 합창단 대장으로 널뛰기도 했는데, 스님과 신부님 그리고 원불교 교무님과 목사님들이 뒤섞여 성탄절 캐럴을 부른 일이 있었다. 환경보호 일환으로 함께한 행사였다. 이왕 합창을 하려면 이 정도 생판 다른 기라성들을 모셔야 재미가 있지. 사실 예수님도 한때 스님이었다는 사실, 그대 아실랑가 모르겠네. 법명은 지저스님, 띄어쓰기에 주의할 것. 지저 스님 아니고 지저스 님. 웃자는 소리니 덤비지 마시라. 최근 시민자유대학에서 합창단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친구가 나더러 고문 역할을 맡아달래. 고문이라면 물고문 전기고문, 무궁무진이야. 합창의 미덕이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단 것. 사실 노래를 너무 잘하는 사람이 합창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혼자 소락때기(소리)를 지르며 튀어 오르면 이대로 망하자는 소리. 음악다방에 찾아온 아가씨가 방귀를 못 참겠어서 꾀를 낸 게 베토벤 운명 교향곡에 맞춰 빠바바밤. 그런데 뒤에 앉은 경상도 총각이 하필 이 소릴 들어버림. “이기 인간이가 오디오가... -
윤석열·한동훈의 기싸움을 왜 봐야 하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폭탄주’와 ‘콜라’만큼 기질이나 스타일이 한참 다르다. 그래도 두 사람은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에서 만나 형님, 동생 하며 20년을 지냈다. 고락을 함께한 둘의 브로맨스가 얼마나 깊었던지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 대표를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법무장관으로 정권 2인자, 소통령으로 불렸다. 지금 보면 두 사람은 서로가 존경·존중하는 마음으로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게 아니라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틀에서 이해가 맞았던 것 같다.신의가 배신이 되는 건 순간이다. 이해관계가 틀어진 두 사람은 등을 돌렸다. 한 대표가 지난 1월 비상대책위원장 때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국민 눈높이’를 꺼낸 게 발단이었다. ‘윤·한 1차 갈등’이다. 대통령의 사퇴 요구를 거부한 한 대표의 승리도, 한 대표의 폴더 인사를 받은 윤 대통령의 승리도 아니었다. 둘의 관계는 지금까지 돌이켜지지 않았다.윤 대통령은 ... -
마음을 들키는 순간
“만일 내일 지구가 사라진다면, 마지막으로 나는 무엇을 할까?”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 건, 레이디 가가와 브루노 마스의 신곡 ‘Die with the smile’을 막 듣고 난 뒤였다.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서 웃으며 잠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좀 더 역동적으로, 마지막까지 체력과 정신력을 불태울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면 인류 멸망을 목전에 두고 거리에 피아노를 끌고 나와 마지막까지 화려한 연주를 이어가지 않을까, 바둑 고수들은 자신의 라이벌과 마지막 대결을 하겠지, 우리 검도관 사범님이라면 끝까지 대련을 하실 거야, 같은 지레짐작을 늘어놓다가 문득, 나는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엄청나게 몰두한 것도 없으니 집에 좋은 술이나 쟁여 두었다가 꺼내 먹어야겠다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 하고많은 것 가운데 술이라니! 술을 좋아하는 속내를 들켜버렸다.사람의 성향 같은 걸 알아내는 또 다른 게임도 있다. 지금 당장, 가장 먼저 생각나... -
눈동자의 사랑
얼마 전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다가 마음에 오래 남은 구절을 보았다. “나는 나의 내면을 보려다 눈동자 하나를 발견한다./ 누구의 눈인가?/ 알 수 없다.” 배시은의 ‘수면의 신’(<창작과비평> 2024년 가을호)이다. 화자는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잠자지 않고 깨어 있는 동안 누군가를 보고 싶어하거나 무언가를 저울질하기를 멈추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보이는 것은 누군가의 깊은 눈동자. 그러자 예상치 못하게 무언가를 보려는 능동적 행위는 곧 스스로가 보이는 수동적 행위가 된다. 이 매력적인 시를 읽고 나면 니체의 유명한 잠언에서 ‘심연’이라는 단어를 ‘눈동자’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이 눈동자를 오래 바라본다면, 눈동자 또한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누군가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일은 이상한 일이다. 손, 코, 귀, 입 등 다른 신체 부위를 바라보는 일에 비할 바 없이 그렇다. 아마도 그 눈동자를 바라보는 주체 역시 눈동자이... -
가장 큰 기적 ‘1% 바뀜’과 양지연씨
“계속 제자리요…제자리…괜찮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내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야 해요, 기다려줘야 해요.”그래서 그녀는 기다린다.애정을 갖고 ‘나는 널 떠나지 않을 거야’라는 믿음을 눈빛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아이에게 심어주며 기다린다. 기타를 치며 기다린다. 어느 순간 아이가 기타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 스스로 기타를 치기 시작한다.‘장애연주자의 악기 지도자’ 양지연씨(1973년). 작년 초, 그녀에게 고민이 생겼다. “자폐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클래식기타를 가르치기 위해 제주도에 내려가야 하나?” 환경과 시간, 만나는 사람의 바뀜은 ‘내가 바뀔 수 있는(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제주도와 경기도 용인(집)을 오가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키로 결정하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오늘까지 장애(발달장애, 자폐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클래식기타를 가르치며, 뚜띠앙... -
과학이라는 빨간 약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우주의 거대한 침묵 속에 둘러싸인 고독한 자신을 발견한다.” 과학자이자 철학자로서 큰 자취를 남긴 파스칼의 말이다. 우주나, 지구나, 숲이나, 탄소 배출로 기온이 계속 오르는 지구의 대기나, 인간에게 쥐뿔도 관심 없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인간에게 우주는 아무런 답도 들려주지 않는다. 다른 우주도 있다. 이 우주의 한가운데에는 지구가 있고, 밤하늘을 가득 채운 반짝이는 뭇별은 우리를 중심으로 돈다. 땅을 적시는 비는 풍성한 수확을 위한 자연의 선물이고, 더운 여름 땀 흘린 농부를 위해 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아이가 착한 일 하면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받고 어른이 착하게 살면 다음 생에서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온다. 이 우주는, 인간의 삶이 전 우주적인 의미가 있다고 끊임없이 우리 귀에 속삭인다. 큰 시련이 닥쳐 정말 힘들어도 이 또한 우주가 품은 원대한 계획의 일... -
심기 보호의 결말
가을이 깊어지면서, 왕의 일정도 덩달아 바빠졌다. 왕이 직접 선대 왕의 능을 찾아 제사 지내는 행차 때문인데, 조선의 22번째 왕인 정조에게는 제사 지내야 할 능도 많았다. 정조는 능행차를 통해 자기 왕통의 정당성과 권위를 백성들에게 드러내고 싶어 했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왕의 권위가 드러날 정도의 대가(大駕) 행렬을 만들려 했던 정조로 인해, 왕을 시위해야 하는 문무 관료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1785년 음력 9월4일은 가까운 창릉과 명릉, 서칠릉, 경릉, 홍릉을 하루 만에 돌아야 하는 일정이었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속도감 있는 행차가 이루어져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시위부대뿐 아니라 수행하는 신료들과 각 관서의 하급 관료들까지 어느 하나 어긋남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 바쁜 일정이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왕의 행차가 궁을 나와 모화관에 이르렀을 때 형조 소속 하급 관리들이 떼지어 왕의 대가 행렬을 침범했다. 대가 뒤쪽의 계속되는 소란에 정조는 결국 ... -
하늘 감옥으로 스스로 올라간 노동자
“오늘 제 발로 하늘 감옥으로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이 현장, 내일은 저 현장 매일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하루의 고통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는 우리 건설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세상을 향해 한 번은 소리치고 싶어 스스로 하늘 감옥에 올라왔습니다. ‘우리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지난 10월2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광고탑 고공농성에 돌입한 두 명의 노동자가 농성에 들어가며 남긴 글이다. 건설경기가 어려워지자 건설업체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당이 높은 건설조합원들을 현장에서 내모는 것이었다. 그 자리는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젠 고용을 무기로 내·외국인 건설노동자들의 일당을 삭감하려 한다.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건설노동자들을 ‘건폭’으로 매도하며 건설노조를 탄압했다. 그 과정에서 양회동 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건폭몰이 이후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는 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