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주단기’ 머무름, 떠남, 소통…담담한 휴먼드라마

‘천리주단기’ 머무름, 떠남, 소통…담담한 휴먼드라마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

감독 장이머우·후루하타 야스오

-출연 다카쿠라 겐·양젠보·데라지마 시노부-

머무름과 떠남은 늘 소통의 문제를 수반한다. 우리는 종종 소통이 힘겨워 머물던 곳을 떠나고, 떠나고 싶지만 할 말을 못다한 탓에 그 자리에 더 머물기도 한다. 그곳은 연인의 마음 속일 수도 있고 부모·자식간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때론 직장일 수도 있다. 장이머우 감독은 ‘책상서랍 속의 동화’(1999)와 ‘집으로 가는 길’(1999) 등을 통해 떠나는 자와 기다리는 자, 그리고 그들을 잇기 위한 애틋한 끈의 한가운데에서 세상살이의 표정을 살피곤 했다. 그러니까 ‘천리주단기’는 자못 장구해보이는 제목과 달리 ‘연인’(2004)이나 ‘영웅’(2002)과 같은 감독의 블록버스터급 최근작들과는 계보를 달리 하는, 담담한 문체의 휴먼드라마다. 때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예민함이 진정한 호방함일 수 있음을 깨우쳐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공동감독인 후루하타 야스오는 ‘호타루’(2001), ‘철도원’(1999)으로 잘 알려진 일본 감독. 그와 함께 한 일본의 국민배우 다카쿠라 겐은 평생을 한곳에 머물며 묵묵히 다른 사람의 머무름과 떠남을 관장하던 역무원이었거나(‘철도원’) 원양어업(떠남)과 양식업(머무름)을 오가며 지난날을 되짚어가는(‘호타루’) 인물이었으니 이들 감독·배우의 조합은 그 자체로 절묘하게 어울린다.

아들과의 소원한 관계를 뉘우치고 있는 다카타(다카쿠라 겐)는 아들이 병을 앓기 전 중국에서 작업하던 경극 ‘천리주단기’ 촬영을 계속 진행해주기 위해 중국 윈난성으로 향한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아들 사이에서 며느리가 서로의 의사를 중개해줘야 하고, 말이 안통하는 중국에는 통역 가이드가 있지만 신통치 않다. 중국의 관료체제는 오히려 현지 주민들에 의해 더 폐쇄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다카타의 촬영작업은 어려워진다. 언어, 기억, 관습 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고투하는 다카타의 모습은 개발시대 중국이 안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격차를 에둘러 표현하는 한편 마냥 친밀하지만은 않은 현재 중·일 관계까지를 염두로 가져간다.

그런 와중에 다카타가 이용하는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등 현대식 소형기기들은 타지에서의 소통과 기록을 가능케 해주는 ‘유목’의 풍경 또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감독은 이동과 정착이라는 상반된 화두를 변증법적 합일로 이끌고 싶어하는 일관된 관심을 드러낸다.

감독의 여성 표현은 논란의 대상이다. ‘귀주이야기’(1992)와 ‘책상서랍…’의 씩씩한 여주인공이 적극적 발산형이었다면 ‘집으로 가는길’에서는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수렴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번 작품에선 중개자로서 ‘소통’을 원활케 해주는 여성들의 역할은 토론의 여지가 풍부하다. ‘천리주단기’는 ‘삼국지’에서 조조에게 잡혔던 관우가 유비와의 의리를 위해 한나라를 탈출, 천리를 말달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경극 제목이다. 다카쿠라 겐은 예의 전형적인 강직한 표정이 굳어져 이젠 풍부함을 잃은 것으로도 여겨진다. 20일 개봉했다.

〈송형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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