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비라 마디간’ 과 모차르트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눕니다. 하지만 차마 쏘지 못하지요. 그때 어디선가 나비 한마리가 나풀나풀 날아옵니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그 나비를 쫓아가지요. 그녀가 나비를 마악 손에 잡으려는 순간 화면은 멈춥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두 발의 총성. 아름다운 초원에서, 인상파 그림 같은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면서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죽어갑니다. 참으로 지독한 낭만주의였지요. 1967년도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입니다.

[당신의 클래식]영화 ‘엘비라 마디간’ 과 모차르트

엘비라 마디간은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소녀였습니다. 육군 중위 식스텐과 사랑에 빠지지요. 전쟁을 혐오하는 식스텐은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리고 엘비라와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도피행각을 쫓아가지요. 그 도피는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합니다. 두 사람은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수시로 세어보고, 허기에 지친 엘비라는 토끼풀을 뜯어 먹기도 하지요. 국내 모기업의 CF에 등장했던 유명한 장면, 서로 다투던 남녀가 ‘미안하다’는 쪽지를 적어 시냇물 아래로 흘려보내던 모습도 바로 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지요.

당시 17살이었던 스웨덴의 발레리나 피아 데게르마르크는 이 영화 한 편으로 단숨에 스타가 됐지요. 청순하기 이를 데 없는 외모의 그녀는 67년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이듬해에 또 한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엘비라 마디간’으로 남겨놓은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인지 그 영화는 이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데게르마르크는 딱 두 편의 영화만 남겨놓고 자신의 본업인 발레리나로 돌아갔지요.

영화 ‘엘비라 마디간’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만들어놓기도 했습니다. 빌보드 톱10에까지 올라갔을 정도였지요. 모차르트는 모두 27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폭넓은 사랑을 받는 곡이 바로 ‘21번 C장조’인 듯합니다. 60년대에 보기 드물었던 인상파적 영상미를 연출했던 영화. 그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흐르던 2악장 안단테의 선율은 관객의 청각을 온통 사로잡았지요. 행진곡풍의 1악장 때문에 ‘군대’라고 불렸던 이 협주곡의 별칭을 ‘엘비라 마디간’으로 바꿔놓을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CD가게에서 가서 “‘엘비라 마디간’ 주세요” 하면, ‘피아노협주곡 21번’을 꺼내 줍니다.

모차르트가 28세 때 작곡했던 이 협주곡의 1악장은 당당하게 시작합니다. 음악학자 아인슈타인은 이 위풍당당한 서주에 대해 “젊은 혈기가 아름답게 녹아있다”고 극찬했지요. 반면에 2악장 안단테는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창가의 성애처럼 흐릿한, 그래서 더 가슴이 아린, 모차르트 특유의 애상(哀想)이 잔잔하게 녹아 있지요. 3악장은 다시 경쾌한 느낌으로 돌아옵니다. 당당하게 시작해서 슬픔을 유영하다 다시 경쾌해지는 구성이지요. 어느 협주곡이나 그렇지만, 특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때는 피아노와 관현악이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애청되는 음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하고 프리드리히 굴다가 피아노를 맡은 74년 녹음입니다. ‘20번 D단조’가 함께 수록돼 있지요. 영화 ‘엘비라 마디간’ OST에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는 게자 안다(1921~76)입니다. 모차르트 연주에 능했던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였지요. 그의 연주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문학수 기자〉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