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창가, 꿈꾸는 카메라

우리는 어려서부터 꿈을 갖는다. 아이들은 누군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물음에 저마다 큰 소리로 “대통령, 판사, 의사” 등의 거대한 직업들을 외쳐댄다. 이것이 치기 있는 행동이라 여겨질 지라도 꿈이란 이루지 못해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어느 곳엔 꿈이란 불빛조차 감히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가난한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과 마주하며 사는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 평범한 꿈조차 사치가 된다. 아마도 인도의 캘커타 홍등가에서 태어난 아이들 역시 그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아이들은 다큐멘터리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의 주인공들이다.

이 작품의 감독은 기존의 다큐멘터리 감독들과는 달리 ‘방문객’이 아니다. 그들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일상생활을 카메라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계획을 무너뜨린 것은 다름아닌 감독이 촬영하는 대상인 ‘아이들’이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삶이 차마 감독의 마음이 온전히 촬영에만 임하게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 이러했다. 부모는 술집에서 몸이나 술을 팔고 아이들은 부모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동안 쓸쓸하게 집을 지킨다. 어떤 아이는 곧 있으면 자기도 술집에 나가서 일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고작해야 10살 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아이인데 말이다.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도 마치 학대와 좌절이 정해진 운명인 마냥 그것에 저항하려 하지조차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감독은 본래의 목적만을 달성하는 것에서 그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하고자 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플래시를 터뜨리듯이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선물한 것이다. 하지만 이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것보다 더한 의미를 선사할 거란 걸 그 때는 아무도 몰랐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카메라를 보고 신기해하며 재미 삼아, 장난 삼아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자 카메라를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깨닫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이들은 더 의미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고 ‘어린 아이’ 의 발상을 뛰어넘는다. 그들은 사진에 풍경을 담아내는 건 한 순간이지만 그 사진에 머무는 감동은 길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 간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 속에 담긴 것은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호기심이 아닌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진실된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그들을 가두는 세상의 어둠과 족쇄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고 그 어둠은 그들의 재능이 더욱 빛나게 도와주었다. 아이들이 저마다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자 감독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에게 더 큰 기회의 문을 열어주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들을 모아 사진전을 개최하는가 하면 아이들을 기숙학교로 보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혼신의 힘을 다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모든 아이들이 기숙학교로 가고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하였다’ 라는 결말을 맺었으면 좋으련만. 현실의 족쇄는 어린 아이들이 감당해내기엔 너무 무거운 것이었다.

마지막에 감독이 써 내려간 내레이션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아이도 있었고 부모의 강제에 의해 집으로 끌려온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 중에선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가출을 하고 다시 기숙학교로 돌아간 아이도 있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비록 감독이 터뜨린 ‘플래시’가 잠시 잠깐의 짧은 빛이었을 지 등대의 빛처럼 그들의 꿈이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을 안내해줄 빛이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것이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의 짧은 빛이라 하더라도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이 작품은 ‘작은 것은 작은 변화를, 큰 것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라는 기존의 통념을 산산조각 내버렸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작은 카메라가 아이들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것 일까.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람들이 인식하는 커다란 세계에서는 웬만큼 큰 변화가 아니면 감지조차 하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인식하는 ‘사창가’ 라는 세계에서 그것은 그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갈림길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마치 바다에 던진 돌은 아무 미동도 없이 사라질 지라도 연못에 던진 돌은 커다란 파동을 낳듯이 말이다. ‘큰 도움이 진정한 도움’이라고 생각해온 우리들에게 이 작품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갈증을 달래주는 소중한 자원일 지도 모른다.”라고.

최원경/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인턴 기자(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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