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겐의 반지’ 등 파격적 무대, 그 속에 빛나는 한국가수들

바이로이트 | 박상미 문화평론가

바그너 탄생 200주년 맞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은 지금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탄생 200주년인 올해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 지난달 25일 개막해 이달 28일까지 계속되는 이 축제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음악축제와 함께 유럽의 양대 음악축제로 꼽힌다. 덕분에 소도시 바이로이트는 축제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 티켓 가격은 15유로에서 280유로까지 다양하지만 예매 신청 후 10년 정도 기다려야 관람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세계 최고만이 설 수 있는 이 무대에는 그동안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오페라 가수 필립강, 연광철, 사무엘윤, 아틸라전이 주역으로 활약하며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지난해 동양인 최초로 주연을 맡아 ‘바이로이트의 영웅’이라 불리며 화제가 되었던 사무엘윤이 올해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로엔그린>의 주역을 따냈다. 또 1999년 25세에 바그너 페스티벌 역사상 최연소 오페라 가수로 데뷔한 아틸라전이 <신들의 황혼>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지난 29일 <지크프리트> 공연 관람을 기다리는 동안 아틸라전과 함께 바그너 축제극장을 거닐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23세 때 벨베데레 콩쿠르에 2위로 입상하고, 24세 때인 1998년부터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주역가수로 활동했다. 그에게 10여년 만에 바이로이트 무대에 다시 돌아온 감회를 물었다.

문화평론가 박상미씨(오른쪽)가 오페라 <신들의 황혼>에서 악역인 하겐을 연기하는 한국가수 아틸라전과 인터뷰하고 있다.

문화평론가 박상미씨(오른쪽)가 오페라 <신들의 황혼>에서 악역인 하겐을 연기하는 한국가수 아틸라전과 인터뷰하고 있다.

“운이 좋았다.(웃음) 24세 때 우연히 오디션을 봤는데, 당시 볼프강 바그너(바그너의 손자)가 바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작은 역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어린 나이에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에 덜컥 오르게 되니, 꾀부릴 틈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운도 철저히 준비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난 지금도 직업 오페라 가수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늘 배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틸라전은 이번 축제에서 <신들의 황혼>의 하겐 역할을 맡았는데, 연기하기 힘들 만큼 지독한 악역이다.

“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악역이다. 뼛속까지 악인이 돼야 한다. 무대 위에선 하겐 역에 몰입하는 아틸라전으로, 무대를 내려오면 선한 보통사람, 전승현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31일 첫 공연을 치르는 아틸라전이 자리를 떠난 뒤 이동재씨(52·바이로이트대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독일에 유학생 및 학자로 체류하면서 22년 동안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오페라 축제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이씨는 히틀러가 바그너 음악의 애호가였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페스트슈필의 총책임자였던 손자 볼프강 바그너는 히틀러를 ‘볼프 삼촌’이라고 부를 만큼 가까웠다.

“바그너와 히틀러 사이의 친분은 히틀러의 무명시절부터 시작됐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초기 작품 <리엔치>(1842)를 30회도 넘게 관람했다고 한다. 1923년 나치당은 뮌헨에서 쿠데타를 시도했는데 그때 바그너의 아들 지그프리트와 며느리 비니프레트가 공개집회장에 관객으로 참가했다. 그들의 친분 관계 때문에 여전히 논쟁은 뜨겁다. 핵심은 ‘바그너 음악에도 이런 사상적인 요소들이 표현되어 있는가’인데, 바그너 전문가인 옌스 말테 피셔는 바그너 음악엔 사상이 녹아 있다고 단언한다. 현재 페스트슈필의 책임자인 바그너의 증손녀들은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니벨룽겐의 반지’ 등 파격적 무대, 그 속에 빛나는 한국가수들

올해 축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라인골드>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이다. 바그너의 주요 작품인 데다 지난 2년간 빠졌다가 올해 프랑크 카스토르프의 실험적인 연출로 새로 무대에 오르는 만큼 ‘세기적 연출’에 대한 기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축제 5일차인 29일 공연된 <지크프리트>는 예상을 뒤엎는 파격적인 실험무대를 선보여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360도 회전 무대, 도시의 뒷골목, 배우와 무대의 숨은 뒷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 위에 나타난 카메라맨…. 무대 전후좌우, 천장과 지하까지 모든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며 관람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그너 축제극장에서 관객들은 두 번 놀라게 된다. 뛰어난 공연과 불편한 좌석 때문이다. 딱딱한 나무의자, 비좁은 통로, 음향 때문에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아 사우나처럼 찌는 실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 안락함을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흡수되는 음향을 느끼면서 무대로 빠져든다. 관객석은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모방해 경사가 졌기 때문에 어느 좌석에 앉더라도 무대가 잘 보이고, 똑같은 음향을 즐길 수 있다. 바그너는 평등한 좌석배열을 중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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