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탐욕·무너진 사회정의… “우리는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문학수 선임기자

두산아트센터 ‘엔론’·‘배수의 고도’ 두 편 잇따라 무대에

‘우리는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두산아트센터(예술감독 강석란)가 7일부터 잇따라 공연하는 두 편의 연극은 ‘불신의 시대’를 주제로 내걸었다. 영국의 극작가 루시 프레블이 쓴 <엔론>(성수정 번역, 31일까지)은 미국의 에너지 대기업 엔론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실제 금융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이어지는 일본 극작가 나카쓰루 아키히토의 <배수의 고도>(이홍이 번역, 6월10일~7월5일)는 3·11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소재로 삼았다.

강석란 예술감독은 “최근 몇년 사이에 우리 사회의 불신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며 “작게는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적 양심과 제도, 공동체의 힘과 가치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두 편 모두 연극과 인문학의 만남을 표방하는 ‘두산인문극장’의 일환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주제를 같이 생각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연극 <엔론>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엔론> 두산아트센터 제공

<엔론>은 경영진의 잘못된 리더십과 무너진 도덕심으로 인한 파멸을 그렸다. 한때 미국 7대 기업에 속했던 엔론은 분식회계를 통해 이익을 부풀렸으나 2001년 파산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기업회계 부정 사건으로 손꼽히는 엔론 사태는 지금도 여전히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정부의 부실한 감독, 회계법인과 투자은행의 방조, 정경유착 등이 함께 드러나면서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은 미국이 아닌 영국의 극작가에 의해 연극으로 만들어져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2009년 초연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과 맞물리면서 수차례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 이수인은 “금융 사건의 복잡한 디테일보다는 자본주의의 탐욕과 허영이 어떻게 엔론을 초고속으로 성장시키고, 또 파멸에 이르게 했는지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배수의 고도>는 2011년 초연 당시 일본 연극계에서 화제로 떠올랐던 작품이다. “위험보다는 불신에 초점을 맞춘 연극”이라는 것이 강석란 감독의 설명이다. 극중 화자인 코모토 슈스케는 방송국 기자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취득하지만 이를 보도할 수 없게 되자 다큐멘터리 제작부로 자리를 옮겨 이시노마키 지역으로 탐사 취재를 떠난다. 연극은 그가 참사 현장에서 목격하거나 인터뷰하는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강석란 감독은 “환경 대재앙 등 오늘날 인류가 처한 극단적 위기에서 완전히 무너진 사회정의의 문제를 되짚고 있다”면서 “쉬쉬하면서 사태를 덮으려고 하는 정부의 기만적인 태도, 언론에 대한 통제 등을 보노라면 지금 우리의 현실이 고스란히 겹쳐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김재엽이 연출을 맡는다.

‘두산인문극장’은 공연과 더불어 인문학 강좌도 마련한다. <엔론>이 공연되는 이달에는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홍기빈, 12일) △지젝의 기묘한 이데올로기 강의(소피 파인즈·슬라보예 지젝, 19일) △민주주의와 그 불만(최장집, 19일)이 마련돼 있다. <배수의 고도>와 연계된 강의로는 △소외되는 인간, 소내되는 인간, 소내하는 인간(김진석, 26일) △대화의 예술, 예술의 대화(심보선, 6월2일) △이웃의 소리들(클레버 필류, 6월9일) △언어, 공동체, 삶의 형식(강진호, 6월9일)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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