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지구 어디에도 없는 곳

신동호 논설위원

단 네 가구만 사는 중국 고비사막 오지, 핵실험장이었던 미국 네바다사막 유카산, 스위스 알프스 산맥 깊숙한 화강암 속, 호주 남서부 ‘판게아 프로젝트’ 대상지…. 스위스 핵물리학자이자 저명한 핵폐기물저장소 전문가인 찰스 매콤비 박사가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 처분 후보지를 찾아다닌 여정이다. 인간은 물론 모든 외부 접근과 철저히 차단되고 10만년 이상 지질학적 변화를 겪지 않을 안정된 지형을 찾으려던 그의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지난 5월14일 제11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 에드거 하겐 감독작 <지구 어디에도 없는 곳을 찾아서>의 줄거리다.

지난 60년 동안 지구상에 쌓인 고준위 핵폐기물은 35만t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400기가 넘는 원전이 가동되고 있어 고준위 핵폐기물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지만 인류는 아직 그것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단이나 방법을 찾지 못했다. 재처리·중간저장·영구처분 등 거론되는 방법 가운데 영구처분이 최선으로 꼽히고 있으나 그런 시설을 짓기에 적합한 장소는 영화 제목처럼 지구 어디에도 없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지금까지 영구처분 방침을 결정한 나라가 스웨덴과 핀란드뿐인 사실이 그런 사정을 잘 말해준다.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는 원전을 23기 가동하고 있고 앞으로 계속 늘릴 계획인 우리 정부에도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2018년 월성원전, 2019년 한빛원전, 2021년 한울원전에서 원전 내 저장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른다고 한다. 저장 조밀화, 호기간 이송 등을 통해 기술적으로 늦출 수 있는 포화 시기도 2024년까지라고 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오늘 첫 공개토론회를 개최한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공론화위는 올해 말까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사용후 핵연료 관리 방안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지구 어디에도 없는 곳’을 찾기 위해서는 뜨거운 공론화가 필요할 것이다. 반대나 문제제기가 봉쇄된 ‘조용한 공론화’는 합리적 대안 마련을 어렵게 할뿐더러 결과적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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