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역 구호현장은 물불 안 가리는 전쟁터”

유인경 선임기자

[유인경이 만난 사람] 구호전문가 권기정 소장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남수단 국가사무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기정씨는 얼마 전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남수단에서 활동 중이지만 15년간 아이티, 아프가니스탄, 르완다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았다. 수시로 총성이 울리고, 전염병이 창궐하고, 마실 물조차 부족한 재난지역에서 그는 어떻게 15년을 버틸 수 있었는지, 무엇이 그를 저 낮은 땅으로 이끌었는지 궁금했다.

구호전문가는 어떤 일을 합니까. 구호단체의 홍보대사인 연예인들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모습을 연상하기 쉬운데….

“기아나 전쟁 등 고통에 시달리는 현장에 투입되어 필요한 물자를 나눠주는 일을 하긴 합니다. 참 쉬워 보이지만 사실 전쟁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도처에 총과 칼, 포탄이 가득하고 몇 날 며칠을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은 생명입니다. 먹을 것을 보면 물불을 안 가리는 상황이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평화롭게 나눠줄 수가 없어요. 공중에서 투하하기도 하지만 대단한 소요가 일어납니다. 긴급구조나 구호가 필요한 지역은 항상 현지 경찰이나 군대와 같이 움직입니다. 식량을 나눠주는 데도 고도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활동상황은 기록 사진이 없어요. 긴박한 상황에서 촬영할 여유가 없거든요. 전쟁 중이거나 개발도상국에서 빈곤, 질병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와 기초보건을 제공하여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주임무입니다. 전쟁이나 쓰나미 등 재해가 발생한 곳에서는 의약품도 나눠주고 치료도 해줘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전쟁이 매일 지속됩니다.”

인도주의적 의지보다 전문성이 필요하겠군요.

“그렇죠. 우선 그 지역민들의 상황을 이해·파악하는 데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식량보급은 물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고 지속적인 구호를 하려면 5~10년 정도 걸려야 제대로 관리가 되거든요. 학교를 만들어 교육을 담당하고 아이들에게 축구도 가르치고… 현지인들과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테러나 강도 등 사고도 많이 당합니다.”

한양대 경영학과 출신이면 대부분 기업에 들어갈 텐데 왜 구호전문가가 되었는지요.

“단순무식한 성격 때문입니다.(웃음)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이후에 아프가니스탄이 재난 상황이 되어 어린이들도 죽어간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절박한 상황의 기사를 보고 막연히 ‘이 지역에는 정말 도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서핑을 해서 100여 군데 국제 구호단체에 ‘참가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 전에는 구호란 개념도, 관심도 없었습니다. 다만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그 눈빛이 너무 애절해서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01년에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 8개월간 일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잠시 객기로 갔거나 살짝 돌았나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03년에 다시 르완다로 떠났습니다. 1994년 대학살 이후 재건·복구사업을 하는 중이어서 1년간 지역 개발사업을 도왔습니다. 영화 <호텔 르완다>에 나오는 그곳입니다. 살육과 공포의 르완다이긴 하지만 제게는 정말 아름답고 고마운 곳입니다. 그곳에서 미국 선교단체에서 선교활동을 하러 온 아내를 만났으니까요. 아내에게 한국에서 결혼식만 하고 오자고 설득해 귀국했다가 마침 군대, 구호활동 등으로 졸업 못한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마쳤습니다.”

결혼도 하고 대학도 졸업했으면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공식인데요.

“물론 저도 다른 나라의 고통은 잠시 잊고 ‘나의 길을 가련다’라며 취업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200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아시아에 쓰나미가 닥친 겁니다. 그 당시엔 구호전문가가 드물 때여서 알량한 2년의 경험만으로도 전문가 대접을 받고 언론에서 구호활동에 대한 인터뷰를 하게 되었죠. 인터뷰하다 ‘쓰나미가 일어났으니 또 가시겠군요?’란 기자의 질문에 얼떨결에 ‘네, 가야죠’라고 답했습니다.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어서 취직은 접어두고 스리랑카로 떠났습니다. 친한 후배가 진심으로 ‘형, 미쳤어?’라고 묻더군요. 그 후에도 이집트, 아이티를 거쳐 2013년부터 내전 중인 남수단에서 10여년간 피해 주민들을 위한 구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내전이 나면 구호사업이 일시 중단되고 전문가들이 억류되기도 합니다. 저도 2013년 12월 남수단 내전 때는 3~4일 억류되어 있다가 피난민인 척하고 우간다를 통해 돌아왔습니다.”

정말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 인내심이 강한 분들도 남수단 등에 가면 며칠을 못 견디더군요. 전쟁의 공포만이 아니라 마실 물도 드물고, 먹을 것도 없고, 낮엔 폭염이고, 밤에는 춥고, 전기는 안 들어오고…. 그런 곳에서 몇 달, 몇 년을 견디고 또다시 재난지역으로 떠나는 이유가 뭔가요.

“어릴 때 읽은 위인전, 특히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고 받은 감동과 감명이 너무 컸습니다. 저는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우리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기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면 누구라도 뿌듯하고 기쁠 겁니다. 작은 손길 하나, 빵 하나에 그토록 맑고 밝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어요. 제가 그들에게 해준 일 덕분에 저렇게 행복해 한다는 느낌에 저도 행복해집니다. 제가 행복해지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재난지역에 갑니다. 특히 아프리카 아이들은 정말 예뻐요. 그 아이들의 깊고 그윽하고 착한 눈빛을 보면 그 어떤 고생도 잊게 만듭니다. 한국에 와서도 자꾸 그 눈빛이 떠올라 돌아가고 싶어져요. 마약보다 더 무서운 중독성이 있어요. 또 제 아내도 저와 함께 10년간 구호활동을 했는데 이젠 현장 요리전문가가 되어 된장, 고추장 등만 있으면 어떤 현지 재료로도 요리를 만들어내서 음식 불편도 없습니다. 물이 안 나오고 전기가 없는 곳에 살다보면 편히 샤워만 해도 너무 감사하고, 마음 편하게 전기만 써도 천국 같아요.”

구호전문가 권기정 소장<br />/ 이상훈 선임기자

구호전문가 권기정 소장
/ 이상훈 선임기자

전쟁터의 공포, 부족한 식량은 물론 말라리아 등 풍토병에도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한 구호단체의 경우 식량과 구호품을 싣고 가던 버스를 무장강도에게 탈취당하기도 했더군요. 공포심은 어찌 극복합니까.

“구호전문가는 수시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무장강도도 많고, 지진 등의 재해, 콜레라가 창궐하는 곳에서 매일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 같아요. 작년 10월에 잠시 귀국했는데 잠복해 있던 말라리아균이 퍼져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금실이 워낙 좋아서 아내도 함께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 후 아내를 두고 저 혼자 남수단으로 돌아갔는데 12월 15일에 내전이 발생했어요. 주변에서 귀국을 종용했지만 다들 고생하는데 저만 빠져나올 수는 없었어요. 내전이 나면 전쟁 고아가 많이 생기는데 고아원을 운영해서 그 아이들을 돌봐야 하거든요. 서울에 있어도 자꾸 그들 생각이 나고 자책감이 느껴져 차라리 현장에 있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해요. 그래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팀을 꾸려 2014년 1월 8일에 다시 남수단으로 갔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어서 크건 작건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제가 소속한 단체로부터도 보호를 받으니 정말 감사해요. 이국에선 다 애국자가 됩니다.”

지역민들과의 소통도 중요할 텐데요.

“그럼요. 그냥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파트너라고나 할까요. 구호사업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더불어 방향을 설정하고 큰 그림을 공유해야 하고 인류학, 문화적인 지식과 기술도 필요합니다. 매일 한 사람에게 1달러씩을 주면 처음엔 감사하지만 나중에 안 주면 실망하거나 적이 됩니다. 한국의 구호단체들 가운데 지속적 지원을 하지 않아서 지역주민들과 불화가 생기거나 잘 적응하지 못하고 철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동지라는 인식도 심어주고 지역개발의 경우 5년, 10년을 장기적으로 기다리면서 함께 가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남수단 주도인 주바에서 교육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 내전으로 모든 구호단체의 사업이 중단되는 바람에 우리도 잠시 귀국했어요. 마을사람들이 우리가 없는 와중에도 그 학교를 운영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지역에 가니 ‘살아 돌아와 감사하다’고 안아주는데 정말 울컥하더군요.”

구호전문가의 경우 매뉴얼이 있나요. 지역마다 다를 테고, 또 한국인과 미국인의 구호 스타일도 다를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제가 갖고 있는 숙제입니다. 유럽의 경우 구호단체나 지역개발이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한국적 특징을 살린 국제개발 교과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 나름대로 정한 것이지만 저는 구호 1.5세대라고 생각합니다. 1세대들은 선교사들입니다. 국제구호개발 전문인력이 없던 시절 선교사들이 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2세대는 국제구호개발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청년들이 해당하는데, 대학 시절부터 인턴십을 거쳐 참여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한국인들은 환경유전자라고나 할까요. 재난에 강하고 구호지역에서 정말 내성이 탁월합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내성이 강해졌고 우리 아버지나 삼촌 세대들이 중동 등 극한과 오지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 분들이라 구호전문가로서 탁월한 능력이 체득화된 것 같습니다.”

요즘은 베스트셀러 작가 한비야씨나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 같은 분들 덕분에 재난지역에서도 기꺼이 일하겠다며 국제구호전문가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청년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면.

“모두 성자나 영웅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려면 재난지역으로 떠나기 전에 왜 국제구호개발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이 일은 부와 명예를 주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제3세계로 떠나기 전에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바로 우리 곁의 사람이나 우리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들을 돌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돌봄과 구호가 일상 속에서 체득화되지 않으면 정말 힘듭니다. 가난, 전쟁, 물과 밥이 부족한 곳, 병든 노인, 아픈 어린이 등등이 일상인 곳이 현장입니다. 그런 일상을 국내에서 경험해볼 것을 권합니다. 21세기는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너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입는 옷, 매일 마시는 커피, 수시로 사용하는 휴대폰 등이 실은 제3세계 아동이나 노동자들을 착취해 저임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 혹은 피로 만들어진 상품들로 우리가 평화롭게 평온하게 사는 셈입니다. 공정무역 등을 통해 그들에게 평등한 세상을 주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재난지역으로 떠날 예정인가요.

“제가 필요한 곳은 어디로든 떠나야죠. 하지만 저도 그렇고 다른 이들에게도 가장 취약한 것이 ‘철학’인 것 같습니다. 구호사업에 대한 철학을 더 공부하고 대중들에게 잘 알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재난지역만이 아니라 실상 우리나라도 갈등이 너무 심하더군요. 지역 간 갈등, 세대 간 갈등…. 다음 세대는 아마 다문화가정의 갈등이 심해질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이주여성들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우리 문화로 편입하고 한국인 만들기만 강요했다면 이제는 그들의 문화를 우리 안으로 끌어들여 그 콘텐츠를 국가 자산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한국이란 큰 솥 안에서 필리핀,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등의 문화를 녹여내 더 크게 활용해야죠. 그런 일도 해보고 싶습니다. 또 결혼 후 구호지역에서 일하다보니 아이가 없었는데 올해 한국에 들어와서 아이가 생겼습니다. 내년 봄에 아이가 태어나면 아내, 아이와 함께 또 다른 지역에 가서 더 큰 보람과 행복을 누릴 겁니다.”

권기정 소장은 마치 하와이 등 휴양지에서 온 듯 표정이 해맑고 행복해 보였다. ‘저렇게 온 가족이 재난지역만 돌아다니면 한국에서 내집 마련은 어찌 하고 노후는 또 어떻게 보내려나’란 속물적 걱정을 하다 깨달았다. 진정한 행복은 내가 손에 쥔 것이 아니라 내 손에서 나눠준 것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Today`s HOT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