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사랑한 트로트

◇‘자옥아’부른 가수 박상철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노래 ‘자옥아’의 가수 박상철(35)은 ‘트로트계의 서태지’로 불린다. ‘4대천왕’(설운도·송대관·태진아·현철)이 버티고 선 자리, 신인가수가 못 큰다는 트로트계에서 그는 초고속 성장으로 정상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최신 유행곡의 척도라는 휴대폰 벨소리로, 나이트클럽에서는 리믹스버전으로 ‘자옥아~’가 울린다. 감칠맛나는 목소리에 찰떡같이 감기는 멜로디, ‘탤런트 김자옥과 무슨 관계냐’는 호기심 유발까지 히트곡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

“김자옥씨와는 무관해요. 우리나라 여자이름 중에 가장 흔한 글자가 ‘자’하고 ‘옥’이라서 만든 이름이죠”

김자옥의 남편이자 ‘있을 때 잘해’의 가수 오승근이 부른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공연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자네가 이리 어렸는감?”하며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고.

그의 인기가 최근 들어 날개를 단 것은 노래보다 찡한 무명시절이 SBS ‘인생 대역전’을 통해 알려지면서였다. 강원도 삼척에서 지지리 가난하게 자란 그는 가수의 꿈을 안고 고교 졸업 뒤 곧바로 상경했다. 오디션에는 합격하자 주최측은 음반제작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1980년대 말 반지공장의 월급이 10만원이던 시절에 그는 막노동으로 번 피땀어린 돈 1천만원을 건넸으나 고스란히 사기를 당했다. 혹한의 겨울에 한 푼도 없이 노숙자로 나앉은 그는 자살도 생각했다. 하지만 가수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미용기술을 익혀 헤어디자이너로 재기, ‘노래하는 미용사’가 됐다. ‘네 박자’를 만든 박현진 작곡가를 어렵사리 만난 그는 ‘자옥아’를 받아들었다.

가슴은 뛰었지만 길은 멀었다. 박상철은 “트로트였기 때문에 알릴 방도가 없던 현실이 답답했다”고 털어놓는다. 온통 1020세대 취향이 독점하다시피 한 방송사만 쳐다볼 수는 없었다. 새벽 방송부터 PD들을 찾아다니는 한편 직접 발로 뛰며 동대문 남대문 의류상가의 DJ들에게 테이프를 돌리고 다녔다. 낮에는 가위손이, 밤에는 발바닥이 부어올랐다. “이처럼 고생을 해도 8년이나 지난 후에 뜨는 곡들도 있는 게 트로트계의 현실”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운이 도왔을까. 1년이 지나자 사람들이 ‘자옥아’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회원 수가 2,000여명이나 되는 인터넷 팬클럽도 생겨났다. 정많은 아줌마들은 타지에서 고생하는 동생 돌보듯 그에게 관심을 기울여줬다. 방송사 녹화 때마다 200여명이 피켓을 흔들어준다. 웬만한 10대가수 부럽지 않다.

그는 ‘서프라이즈’ 등 재연프로그램에 코믹한 단역배우로도 부지런히 출연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막노동을 하며 연기학원에 다닌 게 도움이 됐다”는 그는 출연이유에 대해 “젊은층에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성인층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트로트를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그는 “가요순위프로그램에 트로트곡들이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트로트계의 명랑 게릴라’를 꿈꾸고 있는 듯했다.

/최민영기자 myc@kyunghyang.com/


Today`s HOT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