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를 하는 이유요? 곱절의 자유를 추구하는 거죠”

손동우 사회에디터 sdw@kyunghyang

국악과 대중음악 결합 음반 내는 싱어송라이터 이정표

어떤 하나의 요소와 다른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요소가 합쳐져서 새로운 그 어떤 요소가 되는 이른바 퓨전(Fusion) 현상은 다양함을 갈망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적 욕구의 발현이라고 할 만하다. 요즘 웬만한 중국음식점에는 짬뽕 반그릇과 자장면 반그릇이 함께 나오는 ‘짬짜면’이라는 ‘퓨전 음식’-볶음밥과 짬뽕의 ‘볶짬면’이나 탕수육과 볶음밥의 ‘탕볶밥’도 원리는 같다-을 내놓고 있다. 이를 두고 경제학에 조예가 깊은 이들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재화의 소비가 늘어날 때 마지막 한 단위가 주는 만족(효용)은 점점 줄어드는 법칙이 바로 ‘짬짜면’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짬뽕과 자장면을 똑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짬뽕을 반그릇 먹은 뒤 짬뽕에 대한 한계효용이 줄어들 무렵 자장면이 나오면 다시 한계효용이 높아진다. 고객으로서는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하는 식사를 하게 되고, 중국집 처지에서도 재료가 늘어가는 것은 아니므로 서로 ‘윈·윈’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성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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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거창한 경제학 이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그냥 짬뽕과 자장면을 동시에 다양하게 즐기기 위해 짬짜면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할 터이다. 이 같은 ‘퓨전 음식’이 음악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크로스오버(crossover)’가 된다. 클래식 악기인 첼로 반주에 재즈풍으로 노래를 부르는 따위일 것이다. 중·고교와 대학에서 가야금을 공부한 ‘국악 엘리트’이자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 송라이터가 국악적 요소와 서구의 대중음악적 요소를 융합시켜 음반을 내고 공연을 갖는다. 서울 홍대앞 KT&G 상상마당 라이브 홀에서 20일 라는 제목의 처녀 공연을 갖고 이날 같은 제목의 첫 음반을 내는 이정표를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만났다. 그는 음반 출시와 공연을 앞둔 소회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냈으나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는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이정표는 “워낙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가야금을 해서 음악 그 자체는 생소하지 않으나 내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공연을 갖는 최초의 음악적 열매를 맺는다는 점에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이름을 건다는 것에 어떤 사회적 책임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공연 이름이자 음반의 표제인 는 음반에 실린 네 곡 가운데 첫번째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대 나비처럼 내게로 오세요/내가 나비처럼 그리로 갈까요…”라는 노랫말은 이미 마음이 떠난 연인을 향한 화자(話者)의 자조와 비애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랫말의 슬픈 내용 이면에는 ‘나비처럼 작은 비상(飛翔)을 해보자’는 각오와 결의가 숨어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음반에 실린 네 곡 모두 이정표가 노랫말과 곡을 썼는데 를 제외한 나머지 세 곡은 이른바 ‘크로스오버’에 해당한다. 즉 <그대, 아직 살아있는가>는 이정표가 직접 피아노를 치고, 그의 서울대 국악과 후배들로 구성된 국악 앙상블 ‘아라연’이 가야금, 대금, 소금을 연주한 작품들이다. <그대…>의 경우 여행작가 유성용의 글에 이정표가 곡을 붙였다. 이번 음반 출시와 공연을 위해 1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노랫말과 곡을 쓰고 가야금과 피아노를 연주하며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매달렸다는 것이다. 이정표는 “1년 동안 흘린 땀을 세상에 내놓는다고 하니 마치 아이를 낳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국악과 서구 대중음악을 조화·융합해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크로스오버 싱어 송라이터’로서 이정표가 생각하는 크로스오버의 부등식(不等式)은 ‘1+1≥3’이다. 즉 하나의 음악장르와 또 다른 장르가 결합하면 적어도 셋 이상의 음악적 효과와 효용을 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 교향악단이라는 클래식 음악 ‘1’과 스파이스걸스라는 팝음악 ‘1’이 크로스오버라는 형식을 통해 만났으면 최소한 3이상 이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2이하인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정표는 “베를린 교향악단이 스파이스걸스를 은연중에 천박·경박한 것으로 폄훼하거나 스파이스걸스가 베를린 교향악단을 알게 모르게 ‘뭣도 모르는 꼰대들’ 정도로 치부할 때 이 같은 ‘역(逆)부등식’이 성립한다”고 말했다. 클래식과 팝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을 때 이러한 현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세상 그리고 사람]“크로스오버를 하는 이유요? 곱절의 자유를 추구하는 거죠”

이정표는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의 경우 서로 다른 음악장르가 만나 부딪치면서도 결코 상대를 업신여기거나 훼손하지 않고 어루만지며 존중한다”며 2004년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자신이 작사·작곡하고 노래한 <찬비>를 예로 들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흐려지더니/찬비가 내리고/눈을 감으면 볼 수 있을까 느낄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닿을 수 있을까…”라는 노랫말을 지닌 이 노래는 이정표가 최초로 세상에 내놓은 크로스오버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그의 대학 후배인 강지은이 해금 반주를 곁들였다. 이정표는 “<찬비>에서는 피아노가 해금의 선법(旋法)을 이해했고, 해금은 피아노의 음계를 이해했다”면서 “만일 피아노와 해금이 서로를 수용하지 못하고 이물감을 느꼈다면 아무런 음악적 성과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로스오버나 나아가 음악 전체에 대한 이정표의 견해는 일종의 ‘사통팔달(四統八達)·대동소이(大同小異)’의 이론에 닿아 있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으로 명칭은 다르지만 결국 서로 연결된 하나의 바다이듯이 음악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정표는 “아프리카 원주민이 두들기는 드럼과 북, 우리 농악대의 신명나는 장구나 꽹과리, 유럽 도시의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제각기 다르면서도 결국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적 장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서로 사용하는 장비만 다를 뿐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면서 “내가 크로스오버를 하는 것은 곱절의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표는 대학 2학년 때인 2001년 서울대 교내 밴드인 ‘Fuze’ 6기에 가입해 보컬로 활동했다. 퓨전 재즈&펑키 밴드인 퓨즈에 들어간 것은 국악이라는 틀을 벗어나 음악으로 좀더 폭넓게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1년 간의 밴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이정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공동체적 삶에 대한 중요함을 인식했고, 나아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당시 퓨즈는 MBC 대학가요제 1차 CD 심사에서 통과한 뒤 ‘고(GO)’와 ‘스톱(STOP)’을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을 벌였다. 이정표를 비롯한 ‘고파(派)’는 “어차피 1차에 통과했는데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었고 ‘스톱파(派)’는 “시험공부도 해야 하고 학점관리도 해야 하는데 이쯤에서 접자”고 맞섰다. 그러나 이정표가 소속된 참여파가 반대파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퓨즈는 이정표가 작사·작곡한 <천국으로 오세요>로 금상이라는 ‘천국’까지 가게 됐다. 이정표는 “퓨즈 1년 간 배운 것은 음악 비전공자인 동아리 구성원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면서 “이것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했고, 음악으로 업을 삼을 전공자들이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뮤지션으로서의 이정표가 높이 평가하는 뮤지션은 <랩소디 인 블루>를 작곡한 조지 거슈윈이다. 이정표는 “그가 만든 노래를 들으면 무한한 자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다지 유명하지 못한 클럽가수로 지내다가 암으로 사망한 에바 캐시디의 노래를 좋아한다. 에바 캐시디는 평생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불렀는데도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갖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이정표는 “그러한 진정성이 빠지면 노래는 단순한 꾸밈에 지나지 않는다”며 “나도 이들처럼 자유롭고 진정성 넘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서의 이정표가 꼽는 자신의 장점은 아무래도 국악과 서구 현대음악에 두루 익숙하다는 점이다. 그는 “모두들 어려서부터 양복만 입어서 한복 입는 법은 모르는데 나는 한복·양복 모두 입을 줄 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스스로 꼽는 단점은 한국적 상황에서의 ‘엘리트’로서 “세상에 구를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정표는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들을 위한 봉사활동 등을 펼치는 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2004년 고려인 강제이주 140주년을 맞아 동북아시아평화연대 등이 주관한 기념공연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러시아 현지와 국내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당시 우수리스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어느 고려인 할아버지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깡마르고 주름투성이의 할아버지는 흥겨우면서도 슬프게 아코디언을 연주했고, 이정표는 ‘할아버지에게는 음악만이 위로가 됐던 시기가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할아버지의 그리움과 회한,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음악이 어떤 것이 있을까 궁리했다”면서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표는 또 다음달 일본 구마모토에서 열리는 ‘K-팝’에 심사위원 및 초청공연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 행사는 일본사람들이 한국 가요를 부르는 것인데 이정표는 이번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정표가 이처럼 사회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예술인은 방안에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평소의 믿음 때문이다. 그는 “예술인은 자신의 예술이 갖고 있는 선의의 권력을 대중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표의 꿈은 우선 “음악으로 밥도 먹고 꿈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대중에게 음악적 능력을 인정받으면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일 터이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내 눈만 보면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정표라는 그의 이름이 궁금했다. 본명같지는 않고, 예명이라면 이정표(里程標)란 말인가. 이정표라는 남자 트로트가수도 있던데…. 그런데 이정표(李貞杓)는 그의 본명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부친과 잘 아는 어느 한학자가 이름 세 개를 지어 보내왔다고 한다. 한글식으로 하려면 ‘슬기’, 평범한 여자로 살려면 ‘윤정’, 아들노릇까지 하려면 ‘정표’라고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무남독녀인 그는 정표가 됐다. 나는 이정표에게 아들노릇 하는 딸을 넘어서 ‘음악계의 이정표’가 되라고 덕담을 보냈고, 그는 “꼭 그렇게 되겠다”고 화답했다.

이정표는

△ 1981년 서울 출생

△ 국립 국악중·고, 서울대 국악과 졸업

△ 200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천국으로 오세요’ 로 금상 수상

△ 2004년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찬비’ 로 대상 수상

△ KBS 드라마 <바람의 나라> 의 ‘황조가’ 작곡

△ KBS 드라마 <풀하우스> 의 ‘샬랄라송’과 <두번째 프러포즈> 의 주제가 부름

△ 대불대, 서울예술종합학교 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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