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淸의 아편 탐닉, 결국 몰락의 길로  

윤민용 기자

▲중국을 뒤흔든 아편의 역사…정양원 | 에코리브르

강희·옹정·건륭 등 걸출한 3인의 황제가 재임했던 130여년간(1661~1795)은 청(淸)의 치세기였다. 이들은 세계제국으로서 청의 기틀을 닦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연해주, 몽골, 위구르, 티베트를 잇달아 복속시키며 세계를 제패할 기세였던 청은 그러나 반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쇠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두 차례의 아편전쟁 이후 영국에 땅을 내줬고 서구열강의 침탈 위협에 시달렸다. 향촌사회는 급속도로 붕괴됐고 신분제 역시 동요했다. 거대제국 청이 순식간에 몰락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아편’이라는 물질이다.

청 말기 아편을 피우는 만주 여인(미국 국회도서관).

청 말기 아편을 피우는 만주 여인(미국 국회도서관).

“상품도 사람처럼 사회적인 삶, 곧 인생 역사를 지닌다”는 아르준 아파두라이의 관점을 따르는 저자는 아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근대 중국의 역사를 훑어내려간다. 아편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그 보급과정에는 중국의 근대가 역동적으로 반영돼 있다. 책에서 다루는 15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시기는 아편이 의약품이 아니라 쾌락 등 다른 용도로 소비된 시대였다.

애초 양귀비의 즙액을 가공한 아편은 중국 당(唐)대부터 원(元)대까지 약용으로 사용됐다. 의서에 따르면 설사, 이질, 일사병, 검기, 천식과 통증에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1483년 무렵부터 아편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은 달라진다. 벵골, 자바, 시암 등 명(明)의 조공국들은 다량의 아편을 진상했고 이후 아편은 쾌락을 위한 황실의 사치품으로 기능한다. 황실에서는 아편을 방중술의 비약으로 여기며, 몸을 회춘하게 만든다 해서 춘약(春藥) 혹은 성욕을 일으킨다 해서 미약(媚藥)으로 불렀다. 실제로 명말 재임한 만력제의 유골에는 다량의 모르핀 성분이 함유돼 있었다.

상류층 사이에 유행하던 아편은 18세기 사회 각층에 침투한다. 여기에는 명청대 발달했던 소비문화·여가문화도 한몫했다. 당시 아편은 부를 지닌 유한계급과 여유있고 교양있는 이들의 상징이었다. 소수 유한계급의 취향은 곧 사회구성원 다수가 선망하는 유행의 대상으로 변모하곤 한다. 황실은 아편 판매를 금지했지만 아편 취미는 종횡으로 퍼져나갔다. 아편 취미는 아편을 피우는 관리들이 지방을 순환근무하면서 중국대륙 전역으로 퍼졌고, 아편 구매를 담당했던 환관들을 통해 계급을 뛰어넘어 아래로 전파됐다.

대중들은 고단하고 궁핍한 현실을 잊기 위해 아편에 탐닉했다. 도심 거리에조차 아편굴이 떳떳하게 영업을 할 정도였다. 아편에 중독된 남성들 대신 중국의 경제를 떠받친 것은 아편에 찌들지 않은 여성, 아편에 팔려간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하류계급에까지 아편이 보급되자 상류계급은 이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금지했다. 취미가 단순한 소비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으로 재해석됐던 것이다.

저자는 케임브리지대학 도서관 기록보관고와 런던공공기록보관소, 영국 도서관에 소장된 유럽과 중국의 문헌을 꼼꼼히 뒤져서 아편을 통해 중국사에서 계급의 취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구별되는지, 또 중국사회가 가진 구조적 모순이 어떻게 아편의 보급에 일조했는지를 살핀다. 동시에 아편 취미가 만들어낸 다양한 예술품과 중국인들의 의식 변천을 꼼꼼하게 복원한다. 물질문화연구에 대한 방법론을 설명한 서문이 장황하거나 어렵게 느껴진다면 건너뛰고 읽어도 무방하다. 공원국 옮김. 1만8000원

<윤민용기자 vist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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