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오·남 대법관과 대법원장 공백 해결 서둘러야

대법원은 16일 대법관 회의에서 내년 1월1일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의 후임자 임명 제청 절차를 일절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준 부결로 사법수장 공백 사태가 한 달이 다 돼가는데, 내년에는 대법관 14명 중 11명 체제가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권한대행이 재판장을 맡아 심리·선고를 하는 쪽으로 뜻이 모아졌지만, 후임 인선이 지연되면 여성 대법관이 1명도 없는 소부가 생기게 된다. 현재 소부 3개에 한 명씩 여성 대법관을 배치한 구성조차 깨지는 것이다. 대법원의 혼선과 파행이 본격화되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법원 구성은 점차 옛날로 회귀하고 있다. 내년 1월 민 대법관 후임 임명이 안 되면, 2018년 4명으로 늘어난 여성 대법관은 2명으로 줄게 된다. 지난 7월 박정화 대법관이 퇴임한 후 불과 반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당시 박 전 대법관 후임 제청 과정에서 여성 후보 2명에 대한 비토설이 대통령실에서 흘러나오면서, 결국 여성 후보가 대법원의 추천 대상에서 제외된 결과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3명의 대법관은 모두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이다. 낙마한 60대의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까지 포함하면 ‘범 서·오·남’ 일색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시대적 흐름과 달리,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용광로’인 대법원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17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중요한 판결에 참여하는 여성 법관 숫자는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전국 6개 고등법원 118개 재판부 중에서 여성 법관이 1명도 없는 곳이 60개(50.8%)에 달한다. 오경미 대법관은 지난 8월 법원 내부 강연에서 성평등 이슈에 관한 법원 판결에서는 여성 대법관들이 살아온 삶·경험·시각에 입각해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40년 만의 강제추행죄 성립요건 완화가 대표적이다. 법관 구성의 다양성 문제는 성범죄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여성 대법관 4명 시대’ 때 대법원의 전원일치 판결은 이전의 ‘서·오·남’ 대법원에 비해 2분의 1로 줄어들었다. 대법원 구성원이 경력·성별로 다양해지면서 소수 의견이 많아졌고,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기존 기준을 폐기하는 전향적인 결정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법원장 공백 상태를 마냥 방관할 때가 아니다. 국회는 사법수장으로서의 부적격자를 부결시켰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게 사법부를 이끌 수 있는 대법원장 적격자를 이른 시일 내에 지명하고, 성심성의껏 국회 동의를 구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국가 중대사의 방향을 정하고 시민들의 일상 규범이 된다. 그런 만큼 헌법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적극 보호하는 대법원이 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 혼선에 책임감을 갖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대법원장 체제에서 다양한 대법관들이 사법부를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한수빈 기자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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