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신문기자를 이르던 옛말 ‘기별서리’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매년 4월7일은 ‘신문의날’이다. 이날은 ‘독립신문’ 창간기념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 정부가 발행한 한자 신문 ‘한성순보’다. 독립신문은 그로부터 3년 뒤에 창간되고 3년여 짧은 기간 독자와 만났지만, 뚜렷이 빛나는 족적을 남겼다. 최초의 민간 신문이자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은 민중계몽에 앞장서고, 여러 민간 신문의 창간을 이끌기도 했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민간 언론의 역사는 130년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근대 신문의 관점이고, 역사를 통틀어보면 그 연원은 440여년 전으로 올라간다. 조선시대의 ‘조보(朝報)’다. 조보는 ‘조정에서 매일 발간하는 소식지’였다. 중종 때 기록에도 보이는 조보는 왕의 지시사항, 조정의 인사이동, 상소문의 내용, 각종 사건·사고, 중국·일본의 동향 등을 두루 담았다.

조보를 발간하던 곳은 승정원 산하 기별청(奇別廳)이다. 이 때문에 조보는 ‘기별’로도 불렸으며, 조보를 쓰던 이들을 ‘기별서리(奇別書吏)’라고 했다. 현대 ‘신문기자’의 옛 이름이 ‘기별서리’인 셈이다.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야?”처럼 ‘소식을 전함’을 뜻하는 말 ‘기별’도 여기서 유래했다. 이러한 조보의 실물(1577년 음력 11월6일 자 등)이 2017년 경북 영천시 용화사에서 발견됐다. 이는 세계 최초의 일간 신문으로 알려진 독일의 ‘아인코멘데 자이퉁’(1650년)보다 70여년 앞선 기록물이다.

이런 조보는 관보로 발간됐지만 민간에도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이에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민간에서 의정부에 허가를 요청해 ‘민간 조보’가 발행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안 선조가 대로해 민간 조보는 발행 3개월 만에 폐간되고, 관련자들은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왕실과 조정의 일이 일반 백성에게 알려져 혹여 체면을 구길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자주 벌어지는 일종의 언론탄압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에게 언론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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