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생일시’를 통해 묻다, 시와 시인의 샛길을

김여란 기자

단원고 희생자들 생일 때마다 시인들이 헌시

‘시가 뭐냐’ 자문자답하면서 또다른 역할 타진


‘생일시.’ 세월호를 타고 간 아이의 생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없는 아이의 목소리로 쓰는 시다. 지난해 9월27일 안중근군 생일을 시작으로 김선우·진은영·나희덕·이병률·도종환 등 시인 25명이 단원고 2학년 학생들 생일마다 시를 썼다. 다가오는 225명의 생일에 또 다른 시인 225명이 생일시를 쓸 것이다.

생일시가 친지와 가족을 위로할 때, 시인들은 ‘시가 뭐냐’는 질문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간을 겪었다. 박연준 시인은 세월호 이후에야 시가 ‘대속’(남의 죄를 대신하여 받음)의 역할일 수 있음을 깨닫고 충격받았다고 했다. “시가 원래 그런 일을 했었구나, 그런 일을 해야만 하는 거였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 이전에는 시를 잘 쓰고 싶고, 독특한 표현을 쓰고 싶어했다면, 생일시를 쓸 때는 그런 마음이 조금도 없었거든요. 오직 희생당한 온유 학생과 시를 읽을 사람들만 생각하며 썼어요.”(박연준, 좌담 중) 생일시를 쓴 김소연·김민정·박준·박연준·신해욱 시인이 소회를 나눈 좌담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엄마. 나야.’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세월호 생일시’를 통해 묻다, 시와 시인의 샛길을

지난 4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와동 ‘치유공간 이웃’에서는 단원고 2학년 박성호군의 생일모임이 열렸다. 이웃 대표 정혜신·이명수씨가 진행하는 모임은 가족과 친지가 1시간 반 가까이 성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자리로, 그 끝은 언제나 생일시 낭독이다. 성호를 추억하며 웃고 울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성호가 말을 건네듯 쓰인 생일시를 읽는다. 이날은 신부가 되길 꿈꿨던 성호처럼 가톨릭 신자인 박성우 시인이 생일시를 보냈다. “어제는 이태석 요한 신부님과 함께/ 아프리카에 있는 수단 톤즈에/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갑자기 이태석 요한 신부님께서/ 그니깐 저한테 막 갑자기 아이유 댄스를 추라는 거예요.”

생일모임을 구상할 때부터 생일시는 그 핵심이었다. 이웃 대표 이명수씨는 “부모님들은 공통적으로 ‘아이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숨쉴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며 “시의 힘, 치유력을 믿는 것”이라고 밝혔다. 2월23일 김제훈군 생일시를 쓴 김민정 시인에게는 생일모임 후 제훈군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와 “우리 제훈이 정말 잘 있어요? 건강해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김 시인은 “저는 진짜라고, 제훈이 잘 있으니까 밥 잘 드시라고, 제훈이의 안부를 어머니에게 전해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제훈군 어머니가 만나는 이들과 생일시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말에 명함 형태로 생일시를 디자인해 전했다.

제한된 정보만으로 만난 적 없는 아이에 대해 쓰는 일이자 위로가 목적이기에 생일시는 필연적으로 독창성이나 미학 같은 기존 문학성 개념과는 멀어진다. 그래서 생일시 쓰기는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해체하고 새로 주조하는 일이 된다. 김소연 시인은 생일시를 통해 마주한 사람들의 시에 대한 믿음이 두려웠다고 했다. 좌담에서 그는 “요즘 시인들 자족적이네, 자폐적이네, 현실을 도외시하네, 지적을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시는 어떠어떠해야 한다, 라는 의견에 흥, 하고 말았는데 그 말들은 지적이 아니라 시를 믿어온 오랜 전통이었다”며 “우리가 쓰는 시 이대로 괜찮을까 이런 고민을 지나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 시인도 좌담에서 “(생일시를 쓰면서) 우리의 삶이 아름답지 못한데 문학과 예술이 계속 미적인 것을 좇는 것이 과연 아름다운 일인가 물음이 계속 든다”고 했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거라는 회의감이 팽배’한 시대, 생일시가 시의 샛길을 열어줄 수 있을까. 생일시는 대부분 ‘받아 적다’로 끝난다. ‘맑고 깊은 지혜의 음성을 시인 이원이 받아 적다’ 같은 식이다. “이런 글쓰기는 처음 해보는 거라 놀라웠어요. ‘나’를 생각하지 않고, 자의식으로 언어를 고르지도 않고, 오로지 ‘대상’을 생각하고, 이 마음이 읽는 이에게 잘 전달될까를 고민하는 글쓰기요.”(박연준)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