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셰익스피어?…분리·혐오 극에 달한 지금, 다시 셰익스피어

문학수 선임기자

연극 ‘코리올라누스’로 5년 만에 무대 돌아온 연출가 양정웅

양정웅이 연출하는 연극 <코리올라누스>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으로 불린다.   LG아트센터 제공

양정웅이 연출하는 연극 <코리올라누스>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으로 불린다. LG아트센터 제공

내 욕망·목소리 세던 과거를 지나
이젠 ‘원작’의 본질 공유하고 싶어

신념 지키며 죽음 불사하는 인물로
풍요와 빈곤 충돌하는 세계 표현해

다시 셰익스피어다. 연극무대로 5년 만에 복귀하는 연출가 양정웅(53)의 손에는 역시 셰익스피어가 들렸다. 그동안 연출한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이번까지 모두 8편이다. 1998년 <로미오와 줄리엣>을 시작으로 <리어왕>(1999), <한여름밤의 꿈>(2002), <멕베스>를 재해석한 <환(幻)>(2004), <십이야>(2008), <햄릿>(2009), <페리클레스>(2015)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과 <십이야>를 완전히 다른 버전으로 다시 공연한 적이 있으니, 작품 개수로 따지면 모두 10편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코리올라누스>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으로 불린다. ‘전쟁의 달인’이었던 로마의 장군 코리올라누스의 이야기다. 가장 높은 권좌에까지 오르지만 정치적 라이벌들의 음모와 민중의 반란으로 로마에서 추방된 그를 셰익스피어는 ‘비극적 영웅’으로 그려냈다.

지난 20일 만난 연출가에게 던진 첫 질문은 ‘왜 셰익스피어인가?’였다. 그는 연극에 입문하던 시절부터 자신을 잡아끌었던 ‘셰익스피어의 매력’을 이렇게 들려줬다. “처음에는 그의 문학적 수사, 아름다우면서도 깊이 있는 대사에 매혹됐습니다. 두번째로는 강렬한 스토리와 캐릭터, 영화처럼 빠른 전개를 꼽을 수 있겠지요. 그런 지점들이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확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다양한 해석과 변주의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그 지점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끝에 양정웅은 “저작권에서 자유롭고 맘대로 각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진지함과 농담을 오가며 대화 자체를 즐긴다. 덕분에 인터뷰는 유쾌했다. 그는 20여년간 셰익스피어에 집중해오면서 몇 차례 변천을 거쳤다는 이야기도 꺼내놨다. “초창기에는 신체언어와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식을 즐겼다”고 했다. 예컨대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밤의 꿈> <환> 등이 그렇다. 이어서 “셰익스피어와 한국적 전통의 융합”이 화두였다. 이런 방법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역시 <햄릿>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또 셰익스피어?…분리·혐오 극에 달한 지금, 다시 셰익스피어

2009년 초연했던 양정웅표 <햄릿>은 강렬했다. 무대 전면에는 굿당에서나 볼 수 있는 무신도가 내걸렸고, 바닥에는 2t가량의 쌀이 흩뿌려졌다. 짤랑짤랑하는 요령 소리가 울려퍼졌고 객석 뒷부분까지 향 냄새가 진동했다. 그의 <햄릿>은 첫 장면부터 한판의 굿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독특한 <햄릿>에 영국 관객들이 환호했다. 양정웅이 선보였던 ‘셰익스피어의 한국적 변주’ 중에서도 해외 무대에서, 특히 영국에서 열렬한 박수를 받은 작품으로 <한여름밤의 꿈>과 <햄릿>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양정웅은 “지금은 또 달라졌다”고 했다. 그 말을 꺼내놓는 눈빛이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이제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과거에는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도 항상 내가 중심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썼을까보다는, 나 같으면 이렇게 쓰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많았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 내 목소리가 세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도 ‘나의 예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더 중요하게 느끼는 것은 ‘원작’ 그 자체입니다. 애초에 셰익스피어가 말하고자 했던 본질, 그의 목소리…, 이런 것들을 관객과 공유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먼 길을 돌아 다시 왔다. ‘연극 연출가’ 양정웅은 그동안 오페라, 뮤지컬, 발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고 평창 올림픽 개막식까지 연출하면서 ‘스타 연출가’의 입지를 굳혔다. 평창 올림픽 직후에는 “어릴 때부터 꿈꿨던” 영화감독으로도 나섰다. 입봉작은 지난 3월 하순 개봉한 <더 박스>다. 이 지점에서 양정웅은 “나는 연극을 시작하기 전에, 영화배우로 먼저 출발했다”며 또 웃음을 터뜨렸다. “1986년 개봉했던 <젊은 밤 후회 없다>라는 영화가 있어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건달 역할로 나왔는데, 못 보셨어요?(웃음) 사실은 어릴 때부터 꿈이 영화감독이었지요. 저는 두 장르가 별개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영국의 샘 멘데스도 연극에서 출발해 영화까지 하고 있잖아요?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연극도 포기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저도 두 장르를 함께할 겁니다.”

“별개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결국 그는 월급 꼬박꼬박 받았던 교수직을 그만뒀다. “두 가지 모두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였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여덟번째로 선택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코리올라누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코리올라누스라는 인물이 참 매력적입니다. 신념을 꺾지 않는 인간, 그래서 결국 죽음까지 받아들이는 인간형이지요. 저는 코리올라누스를 보면서 아서 밀러의 <시련>에 등장하는 존 프락터가 곧장 떠올랐습니다. 연극 <코리올라누스>는 귀족과 평민, 전쟁과 평화, 풍요와 빈곤,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이야기입니다. 분리와 혐오가 극에 달한 작금의 세상과 놀랍도록 닮았지요. 그것이 400여년 전의 희곡을 다시 꺼내든 이유입니다.”

20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 코리올라누스를 연기하는 배우는 남윤호다. 무대 디자인은 임일진이 맡았다.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서울 LG아트센터가 ‘역삼동 시절’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작품이다. LG아트센터는 이 공연을 끝으로 서울 강서구 마곡동으로 이전한다. 7월3~15일 LG아트센터에서 초연 이후, 8월20~21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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