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2)한아 얻은 이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글 :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늙은이(老子) 39월은 한아(一者) 얻은 이의 글월이다. 한아는 하나로 솟은 님이요, 그 님은 두루 있지 않은 곳이 없는 큰이(大我)다. 집집 우주에 오롯한 하나요, 바탈 알짬의 싱싱한 빈탕의 몸이다. 바탈 알짬의 몸이니 그 몸이 또한 얼빛의 참나(眞我)다. 그 참나를 이루는 한아에 하나라는 씨가 있다. 그 없이 있는 하나의 씨알이 움돌로 솟아 돌아가며 숨 돌린다. 스스로 저절로의 세상을 짓는다.

다석은 왜 한아(一者)라고 했을까? 하나(一)와 한아(一者)는 무엇이 다른가?

1956년, 57년, 60년, 61년의 말씀을 묶어낸 <씨알의 메아리-다석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사람은 ‘하나’의 존재를 바로 계신 자리에서 느낀다. 이 ‘하나’ 밖에 다른 것은 없다. … 나는 이 ‘하나’를 증거 하여야겠다. 다른 것은 다 모르니까 ‘하나’라는 것을 증거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참나(眞我)라는 ‘하나’의 증인이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했다. “한아님을 불일지지(不一知止)로, 하나 아닌 것이 없는 것을 아는데 이르는 것이다. ‘불일지지’는 모두를 하나가 다스린다. 그대로 ‘하나’ 당신이 주관한다. 한아님을 불일지지할 때 빈탕한데(虛空)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곳곳에 이런 말도 남겼다.

“예수는 한아님이 계신다는 증거를 특별히 한 것이 없다. ‘나를 본 자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고 하였을 때의 ‘나’는 자기 속에 있는 한아님의 씨를 가리키는 것이다.”

“상대와 절대, 유한과 무한, 정신과 물질이 따로 있을 리 없다. 둘일 리가 없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다.”

“예수나 미륵불을 기다리지 말라. 그것은 헛일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오시는 분이다. 구경(究竟)은 생명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 공간과 다른 어떤 곳에도, 오는 것이 가는 것이고 가는 것이 오는 것이다.”

“없(無)을 내가 말하는 데 수십 년 전부터 내가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머리가 맘대로 트이지 않았다. 나는 없에 가자는 것이다. 없는 데까지 가야 크다. 태극에서 무극에로 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내 철학의 결론이다.”

“나는 하늘을 한늘이라고 생각한다. 한량없는 공간과 한량없는 시간의 이 우주다. 없(無), 빔(空), 빈탕(太空)이다. 한늘 한 동그라미는 부정할 수 없다. 나라는 게 나와서 죽을 때까지 이 한 동그라미 안에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안도 밖도 없는 한 동그라미 안.”

“한아님은 없이 계신이다. 한아님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어림없는 말이다.”

“나는 큰나(大我)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말로는 ‘한아’, ‘한나’라면 큰나를 뜻한다. 이 큰나는 얼의 나로 아버지 한아님과 하나다. 큰나에 나(自我)란 없다. … 한아님아버지와 같이 온전한 나, 한아님의 얼이 주관하는 나가 큰나요, 참나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것들 위에 비치는 빛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 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닝겔, 텅빈 오후, 2019, 오브제.jpg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것들 위에 비치는 빛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 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닝겔, 텅빈 오후, 2019, 오브제.jpg

한아는 집집 우주의 빈탕(虛空)조차도 품은이다. 크고 큰 한늘이 그 안팎에 있으니, 상대 ·절대 · 유한 · 무한 · 정신 · 물질 따위가 따로 있지 않은 오롯한 하나다. 한아는 다 하나요, 그 하나가 다일 수밖에 없는 한아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것들 위에 비치는 빛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 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무토막을 쪼개 보라. 내가 그곳에 있다. 돌을 들추어 보라. 그러면 그곳에서 너희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오쇼, <도마복음강의>, 592쪽) 자, 그러면 이제 옛날에 한아 얻은 이의 노래를 보자.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2)한아 얻은 이

떠돌이와 깨달이가 아직 강가에 있다. 깊은 밤이다. 그믐이어서 밤하늘은 온통 별빛이다. 둘은 나루터에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서 말을 나눈다.

깨달이 : (나지막이 떠돌이가 한 말을 읊조린다.) 속알도 놓고 뜻도 놓고 일 이루려는 마음도 놓고 자기를 높이려는 싶음도 놓고 저 잘난 척에 빠지는 제뵘도 놓아야 높속알에 오른다……. 놓아야 비어지겠어. 다 놓아야…… 놓아야…… (사이) …… (그는 불현 듯 생각의 끈조차 놓아 버려서 있는 듯 없는 듯했다. 강어귀로 몰려 온 물결이 나루터에 묶인 배를 가볍게 흔들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시원한 바람이 둘 사이로 흘렀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2)한아 얻은 이

떠돌이 : 옛날에 한아를 얻은 이가 있었지. 한아를 얻었으니 그이는 온통 하나여서 여기저기거기 있지 않는 데가 없고 또 뚫려 솟구쳤으니 세상의 고디(貞)로 늘 올발랐어. 참 하나로 그 꼭 가 이른 한아였지. 세상 사람들은 억지힘 크게 가져 다스리는 이를 임금이라고 하지만, 참 임금은 하나를 얻어서 세상 속 고디가 된 이라고 해야 해. 하늘 하나, 땅 하나, 사람 하나. 그 셋 하나를 뚫고 없꼭대기(無極)로 솟아오르는 거야.

깨달이 : 한아는 바탈 알짬의 얼빛 씨알과 같아서 사람 마음에 심으면 하나로 솟는 임금이 되지. 얼빛의 참나가 돼. 하늘도 그 하나를 얻어서 맑게 쓰고, 땅도 그 하나를 얻어서 편안케 쓰고, 신도 하나를 얻어서 령케 쓰지. 그래서 신령한 거야. 신령은 얼이고….

떠돌이 : 골짜기도 그 하나를 얻어서 참(盈)으로 써. 비어 빈 그 빈탕으로 가득가득한 것이 골짜기의 참이지. 잘몬도 그 하나를 얻어서 삶(生)으로 써. 낳고 낳고 되고 되고 이루는 그 모든 잘몬의 삶.

깨달이 : 그러니 하나는 한아의 참 씨알이라고 봐야지. 참 씨알은 싱싱하면서 텅 비었어. 움돌(生靈)로 가득 숨돌(氣運)로 가득 가득이지.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2)한아 얻은 이

떠돌이 : 그 하나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하늘로 맑게 씀이 없으니 갈라져 찢어지고, 땅으로 편안을 씀이 없으니 흩어져 푹 퍼져 버리고, 신으로 령을 씀이 없으니 그저 가라앉아 쉴 뿐이고, 골로 참을 씀이 없으니 말라서 다할 뿐이요, 잘몬으로 삶을 씀이 없으니 사라져 없어지지. 그렇다면 임금들은?

깨달이 : 하나로 솟구쳤으나, 그 임금들로 고디를 씀이 없이 높이기만 하면 엎어져 믿그러져 버리지. ‘믿그러져’는 믿(信)이 어그러진다는 거야.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2)한아 얻은 이

떠돌이 : 그러니 높임은 낮힘으로서 밑을 삼고, 높은 아래로 터 됐다고 하는 거군.

깨달이 : 낮은 데의 힘이 없이는 높일 수 없어. 낮은 데의 힘으로 올려야 높여지지. 하지만 ‘높’은 그런 게 아니야. 힘으로 올리는 게 아니거든. 스스로 저절로의 ‘높’은 그저 ‘아래’가 터 되면 될 뿐이야. 그런데 임금들이 고디가 없이 자꾸자꾸 낮힘으로 높이려고만 하지. 그러니 믿(信)이 어그러질 수밖에.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2)한아 얻은 이

떠돌이 : 그래서 하나로 솟아 세상 고디가 된 임금들이 저 스스로 말하기를 외롭이, 홀아비, 쭉정이라고 하지. 그러면 이 외롭이, 홀아비, 쭉정이를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그 낮힘으로서 밑삼음일까 아닐까?

깨달이 : 수레를 하나하나 따져 발리면 거기에 수레가 있어? 수레는 수레로 두어야 수레가 있지. 하나는 하나로 있어야 하나야. 그걸 따져 발리면 하나는 없어.

떠돌이 : 그래서 말쑥말쑥한 옥 같거나, 데굴데굴한 돌 같지도 않고자 하는 것이구나. 높은 아래로 터 됐을 뿐 외롭이니 홀아비니 쭉정이라고 하지도 않고, 옥이니 돌을 따지지도 않아. 하나를 얻어서 그저 쓸 뿐이지.

깨달이 : 한아 얻은 이는 하나로 그 꼭 까 이른 한아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야 되겠군.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2)한아 얻은 이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