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기후 양병’ 이제라도 제대로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

[주간경향] 지금으로부터 4세기 전인 1592년 조선은 일본의 침략으로 약 7년 동안 전란을 겪으면서 온갖 고초를 당했다. 국토는 황폐화되고 많은 건축물과 서적, 미술품 등이 불에 타거나 약탈당했다. 전쟁 기간 조선 군사와 백성 22만여명이 숨졌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조선 인구의 2%가량이다. 임진왜란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가장 아쉬운 건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전쟁이라는 점이다. 율곡 이이는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는 ‘토붕와해(土崩瓦解)’에 빗대 일본의 위험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 당시 위정자들은 그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의 예측은 10년도 안 돼 적중했다. 지금 전 세계가 겪는 기후위기 대응의 양태는 마치 과거 10만 양병설과 임진왜란 이야기를 글로벌 버전으로 재판한 느낌이 든다.

지난 11월 6일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의 정상회의에서 사미흐 슈크리 의장(왼쪽 연단)이 연설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 11월 6일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의 정상회의에서 사미흐 슈크리 의장(왼쪽 연단)이 연설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30년간 실패한 10만 기후 양병

과학자들은 19세기 들어 이산화탄소를 온실가스로 인식했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고 지구가 더워지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후 1979년 미국의 세계적인 해양생물학 연구기관인 우주홀 해양학연구소에 모인 과학자들이 ‘차니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기후변화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두 배로 늘어날 경우 지구 온도가 약 3℃ 올라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보고서는 이전까지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연구결과를 확립하고, 기후 재난을 막기 위해 인류가 국제협력을 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지구온난화의 위협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오다 1988년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기상기구(WMO)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를 창설해 기후변화 진행 상황과 영향에 대한 분석과 미래 시나리오 등을 담은 평가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마침내 유엔기후변화협약이 탄생한다.

어쩌면 전 세계는 이때부터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글로벌 10만 양병설과 같은 논의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베를린에서 첫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1)가 열렸다. 이후 교토에서 열린 COP3에서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한 교토의정서를 채택했다. 37개 선진국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낮추도록 의무화했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COP15에서 교토의정서 이후의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데 실패하면서 유엔기후변화협약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5년 COP21에 와서야 파리협정이라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신기후체제가 마련된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 모든 국가가 스스로 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5년 단위로 제출하고 국내적으로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언론에서 많이 등장하고 있는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는 2030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의미한다.

기후위기의 위협에 대비하고자 지난 30년간 국제사회는 논의의 틀을 만들고 협정을 체결해왔다. 10만 양병설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뜻이다. 기후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양병에는 지난 30년간 실패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만들어진 30년 전 전 세계는 연간 330억t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9년에는 거의 500억t 가까운 수준으로 늘었다. 지난해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회의 이후 24개국이 새롭게 제출한 수정 NDC를 다 지키더라도 인류는 금세기 내 2.5℃까지 상승하는 시나리오 안에 놓여 있다. 모든 국가가 목표대로 감축을 실현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과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거의 3도 상승 경로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IPCC 1.5℃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2℃만 상승해도 전 세계에 물, 식량, 건강 위협 등의 부문이 다 리스크에 노출된다. 해당 인구 숫자는 최대 12억명에 달한다.

한국에서의 기후부정의

기후위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양병은 길러지지 않는 사이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한 기후전쟁의 피해는 이미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역대 최악의 폭염에 이어 2020년 최장 기간의 장마가 있었다. 올해에는 최장 기간의 산불과 기록적인 수도권 폭우 피해를 입었다. 파키스탄에서는 4개월간의 대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3000만명 넘게 수해를 당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기후위기가 가시화되면서 피해 역시 불공평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비정부기구인 ‘저먼와치’가 발간한 ‘2021글로벌기후위험지수’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기후변화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상위 10개국 모두 개발도상국을 의미하는 용어인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이다.

이들은 기후위기를 유발한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상대적으로 덜한데도 불구하고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또 다른 통계를 보더라도 산업혁명 이후 2020년까지 누적 배출량에서 저소득국가의 배출량은 전체의 0.6%에 불가하다. 미국이 전체의 25%가량이며 유럽연합(EU)이 17%다. 미국과 유럽만 합쳐도 전 세계 절반 가까이 된다. 한국 역시 순위로는 전 세계 17위이며 역사적 누적 배출량은 약 1.1%를 차지한다. 비중으로 보면 작아 보이지만 하위 129개국의 누적 배출량을 합친 것과 같은 양이다.

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불공평한 양상을 보인다면 국내에서도 기후 불평등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올여름 국내에서는 반지하에서 살던 시민들이 폭우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들의 죽음에 대해 한국사회는 반지하의 열악한 주거 현실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는 기후 불평등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기후위기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심화될수록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역이나 주거환경에서는 피해가 늘게 마련이다. 상습 침수 지역이 발생하고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역일수록 경제적으로 열악한 계층이 더 밀집될 수밖에 없다. 매년 반복되는 극한 기후현상으로 반지하·쪽방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이들이 기후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국내에서 기후위기의 가장 큰 책임을 진 집단은 거대 기업인데 그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받는 계층은 노동자 집단이라는 점도 기후 불평등을 보여준다. 한국환경연구원이 발간한 ‘2020 폭염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약 300명이다. 폭염일수가 30일을 넘긴 2018년 온열질환자 숫자는 무려 4만4094명에 이른다. 직업군별로 보면 야외노동자 1만명당 28.7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그 외 직업군에서는 3.5명 발생했다.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책임은 기업에 있다. 녹색연합의 조사(2021년 10월)에 따르면 10대 대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달한다. 정부는 기업들의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배출권 거래제를 2015년 도입했지만, 2015년 대비 2021년까지 삼성전자의 배출량은 116%, SK하이닉스는 62%, 현대제철은 46%가 늘었다.

COP27 대회장 바깥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가장 크게 오염을 일으킨 자가 지불하라’라는 뜻이 담긴 옷을 입고 있다. | AP연합뉴스

COP27 대회장 바깥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가장 크게 오염을 일으킨 자가 지불하라’라는 뜻이 담긴 옷을 입고 있다. | AP연합뉴스

다가오는 평가의 시간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인 문제인 동시에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는 경제, 외교, 사회, 안전 등 모든 분야의 주요 문제로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집트 해안도시 샤름 엘셰이크에서 열리고 있는 COP27회의에서 한국이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국내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COP27의 가장 큰 이슈는 기후위기의 피해를 입는 국가, 특히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에 대해 기후위기의 역사적 책임이 큰 한국을 비롯한 부유한 글로벌 북반구 국가들이 적절한 재정적 보상을 약속하는가 여부다. 이를 위해 ‘손실과 피해’에 대한 금융기금 설립(Loss and Damage Finance Facility·LDFF) 구성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의 역사적 책임과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기금 설립을 지지하고 재정적 보상에도 참여해야 한다.

막대한 화석연료 투자 역시 중단해야 한다. ‘지구의 벗 미국지부’ 등에 따르면 한국은 2019년과 20201년 사이 연평균 약 8조3000억원의 공적 금융을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제공했다. 이는 조사 대상인 G20 국가 가운데 일본과 캐나다에 이어 가장 큰 규모다. 이처럼 부끄러운 행태를 이어가며 COP27 정상회의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이 주요 외교 목표라고 말한다. 한국 정부는 화석연료 투자 대신 국내외에서 재생에너지를 더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곳 이집트 COP27에 참가해 매일매일 다양한 정부 대표단의 협상을 지켜보며 머릿속에 지속해서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다. “매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고 알려진 이 말은 사실 누가 말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30년간의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의 실패를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COP27 개최국인 이집트와 COP26 개최국이었던 영국 정부 의뢰로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비용을 추산한 보고서가 COP27에서 발표됐다. 보고서의 수석 저자는 이미 2006년 ‘스턴 보고서’를 작성했던 세계적인 기후경제학자인 니콜라스 스턴이다. ‘기후행동을 위한 금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개도국이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시키고 극단적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투자 규모가 중국을 제외해도 2025년 1조달러, 2030년에는 2조4000억달러(약 3330조원)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절반은 개도국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고, 나머지는 세계은행(WB)을 비롯한 다자개발은행(MDB)이 외부자금을 조달해 충당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금액이지만, 한편 전 세계는 기후위기에 비해서는 훨씬 작은 위기인 코로나19 대응을 위해서 이미 10조달러가 넘는 비용을 조달한 바 있다.

이대로 가면 기후위기 대응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하는 1.5℃ 상승이 이번 세기말이 아니라 2030년대에 발생할 것이라는 게 과학적 예측이다. 따라서, 2030년까지가 기후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이다. 전면적인 전환이 시급하다. 30년간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고, 골든타임을 낭비하게 되면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는 피해와 더 큰 재정의 투입이 필요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래세대가 한국을 비롯한 전 지구인이 벌인 10만 기후 양병 운동을 성공 또는 실패로 기록할지, 평가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번 COP27에서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베이도스의 미아 모틀리 총리는 정상 연설에서 “우리는 변화할 수 있는 집단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전염병이 덮쳤을 때 2년 안에 백신을 찾았고,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게 무언지 알고 있다. 약속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이행하고 사람들의 삶을 확실히 변화시킬 정치적 의지가 이곳에서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COP27이 기후정의를 실현하고, 지난 30년간의 실패를 딛고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의 전환점을 마련한 자리로 역사에 기록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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