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세계 최초 언론 협동조합의 생존

우석훈 |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경제학 박사

‘쥐라기 공원’의 돌연변이, 프레시안

지난 7월31일 기준으로 2261개의 협동조합이 신고서를 제출했다. 서울이 660개로 월등히 많다. 경기가 280개, 광주 201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5인 이상이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끔 법이 바뀌고 나서 특히 많이 늘었다. 협동조합 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과연 이러한 흐름이 한국 경제에 작은 반향이라도 일으킬지, 좀 더 나아가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바꿀 수 있을지 아직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 협동조합은 국민경제 지탱하는 세 개의 다리 중 하나

나는 협동조합을 국민경제를 지탱하는 세 개의 다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무엇인지, 경제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잘 알고 있다. 한국 경제의 발전 자체가 개발독재라는 양상을 가지고 시작됐다.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월별 수출 실적을 관리하고 각 기업을 독려했다. 세계은행에서는 이 양상을 ‘경연 시장(contestible market)’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경쟁은 존재하지 않지만 국가가 중재해서 일종의 콘테스트를 벌인다는 의미다. 열심히 수출하거나 성과를 보인 기업은 국가가 “예쁘다”고 칭찬해주고, 그 대가로 수출금융 등을 지원했다. 흔히 유신경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시대에 국가는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다. 한국의 강력한 국가주의는 이런 역사적 전통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초기의 자금 축적 역시 차관을 쥐고 있는 국가가 좌지우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전히 금융을 결정하는 것은 공무원들이고, 그들 눈 밖에 나서는 정말 추울 수밖에 없다.

19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시장이 무엇인지도 우리가 똑똑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말은 시장이지만 사실은 독점 혹은 과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재벌들을 시장이라고 부른다. 업종별로 독과점화된 이 시장주도적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폐해를 지칭하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이고,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맞추면 주주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독과점적 위치에서 벌어들이는 독점 이윤을 재투자하거나 고용을 늘리는 데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주주들의 배당금을 높이는 식으로 결정하는 것을 주주자본주의라고 부른다. 1인 1표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주식회사 안에서는 잠시 정지하고 1원 1표가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주주자본주의도 양반이다. 그 정도의 소유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총수 일가가 사사로이 기업을 자신의 전유물처럼 2대, 3대에게 세습하는 것이 지금 우리 형편이다.

협동조합은 국민경제를 지탱하는 세 개의 다리 중 하나다. 시장이라는 괴물, 국가주의라는 공포 속에서 이 세 번째 다리를 만드는 길 외에 우리가 장기적으로 영광과 번영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프레시안의 생존이 올해 가장 큰 사건이자 다음 시대를 여는 열쇠다. 지난 8일 서울 서교동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기자 조합원들이 취재와 기사 작성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협동조합은 국민경제를 지탱하는 세 개의 다리 중 하나다. 시장이라는 괴물, 국가주의라는 공포 속에서 이 세 번째 다리를 만드는 길 외에 우리가 장기적으로 영광과 번영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프레시안의 생존이 올해 가장 큰 사건이자 다음 시대를 여는 열쇠다. 지난 8일 서울 서교동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기자 조합원들이 취재와 기사 작성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좀 더 한국적 특징으로 이 문제를 보면 올해 갑자기 튀어나온 갑을 문제 혹은 ‘갑의 횡포’의 형태로 나타난다. 특정 몇 개의 기업이 국가까지 장악해 쥐고 흔들다보니, 효율성이라는 미명으로 게임의 법칙을 자기들 편한 대로 바꾼다. 경쟁과 균형에 의해서 움직이는 시장 메커니즘에서 심판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갑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 너무 강력해진 시장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자본주의도 이 정도로 황당하게 움직이지는 않다. 안티트러스트, 독과점으로 찍힌 기업에 미국 법원은 가혹하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제재 조치를 내린다. 그러나 이런 시장 제어 장치들을 없애는 것을 한국 공무원들은 DJ 시절 이후 ‘규제합리화’라고 불렀고, 이것을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전가의 보도처럼 호도해왔다. 제도를 규제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부른 지난 15년, 한국은 공룡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이 되었다. 진짜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쥐라기 공원’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민주화 과정에서 진행된 민주화 논의를 국가와 시장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본다면, 국가를 장악해서 시장을 제어하자,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 기구를 총괄하는 대선이 중요하고, 그 대선으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로 총선을 이해하고, 그보다 하위 단계로 지방선거를 이해했던 게 우리의 선거 이해 방식이 아니었던가? 국가 기구를 누가 장악할 것인가, 그 문제에 모든 촉을 세웠다. 그러나 과연 국가만 장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 선거에 이겼다고 해서 국가를 장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런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원칙적으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수많은 자리를 활용해서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적·물리적인 기반이 없는 한, 경제와 괴리된 정치는 언제나 외로울 뿐이고, 그 고독한 개혁은 늘 영웅적 개인이 합리적이기를 바라는 위태로운 균형일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국민경제의 세 번째 다리는 아직도 경제학적으로 정립된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한 영역에 속한다. 한국의 경제학과에서 정상적으로 학부 공부를 한 학생이라면 협동조합에 대해서 한 번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경제학과에서는 그런 거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가장 최근의 MBA 과정, 즉 경영학 대학원에서 공부한 학생이라면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을 굉장히 중요한 주제로 배웠을 수도 있다. 트렌드는 트렌드이지만, 한국의 경제학과 학부의 시계는 1990년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협동조합 같은 것은 가르치지 않거나, 아니면 그냥 ‘일각에서 하는 얘기다’, 이렇게 언급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경우라면 ‘사회적 경제’라는 이름으로 배웠을 수도 있다.

연대(solidarity)의 경제, 시민의 경제, 사회적 경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국민경제의 세 번째 다리는 2013년 현재 아직 불투명하다. 존재 이유는 물론이고 그 역할에 대해서도 정립된 이론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어쨌든 2012년은 유엔이 정한 협동조합의 해였다. 내 식으로 보자면, 협동조합은 국가도 아니고 시장도 아닌, 그야말로 제3의 존재이다. 마르크스 이후 스탈린주의자들은 협동조합 경향의 흐름을 ‘공상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계급이 아니라 조합원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하여 조합주의라는 딱지를 붙였다. 간단히 말하면, 혁명을 해야 하는 순간에 혁명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어떻게든 고쳐 쓸 수 있다는 망상을 가졌다는 의미로 배신자 취급을 했다.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도 1980~1990년대에 상당히 강했다. 협동조합 중 소비자들이 주로 구성하는 생활협동조합의 초창기에 한살림협동조합은 중산층 여성들의 사치스러운 소비행위로 1980년대를 주름잡던 운동권 남성들의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한국의 생태운동은 그렇게 운동권 엘리트 남성들의 손가락질과 비아냥 속에서 출발했다.

■ 우파는 물론 좌파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협동조합

정치적인 눈으로 보자면, 협동조합으로 상징되는 시민의 경제는 좌파의 하부 영역이라기보다는 아나키즘, 즉 무정부주의자의 영역이다. 협동, 자치, 이 두 가지를 엮어주는 키워드는 바로 아나키즘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논쟁에서 지친 사람들은 “다 귀찮다. 그냥 정부 없이 살면 안돼?”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국가도 피곤하고, 그렇다고 삼성만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도 싫은 사람들, 그 힘들은 아나키즘이라는 키워드로 묶인다. 그러나 ‘정권을 바꾸자’는 강력한 파토스 없이 아나키즘이 하나의 흐름으로 모일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 제3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기 일쑤이지만, 자본주의의 태동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합과 공동체의 흐름이 등장했다. 세탁기라는 발명물 자체가 오웬 공동체에서 등장한 것 아닌가.

보수에서는 최근의 협동조합이 좌파들의 음모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협동조합기본법을 발의한 손학규가 언제부터 한국에서 좌파로 이해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한국 좌파들도 협동조합을 안 좋아한다. 혁명의 배신자이고 개량주의자라는 딱지를 수십년간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기반인 칼 폴라니나 증여경제론의 마셀 모스, 이런 이름만 나오면 레닌의 배신자라고 했던 그 강렬한 스탈린주의자들의 영향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강하다.

이런 와중에 진보언론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 프레시안이 돌연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실제로 조합원 총회를 통해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최근 한국일보 사주가 오랜 갈등 끝에 결국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틈만 나면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장대비가 쏟아지던 장마 중에 프레시안을 방문했다. 박인규 이사장을 만나기로 한 날인데, 뭐 내가 늘 그렇듯이, 그날도 늦었다. 솔직히 그에게 엄청난 얘기를 들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도 아니고, 정말로 “만나기는 했다”, 그런 형식적인 자리가 될 거라는 생각이 강했다. 현직 대표나 이사장 같은 사람들 입에서 내가 모르는 얘기를 듣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입조심이 체질화된 그 사람들 입에서 진짜 정보가 나오는 일이 없어서 그렇다.

언론사 프레시안 2층 난간,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면서 박인규 이사장은 나에게 협동조합 전환의 전부를 알려주었다. 솔직히 지난 몇 달 동안 경향신문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진행했던 인터뷰 중 가장 성공한 인터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묻지도 않았는데 그가 내가 듣고 알아야 하는 일들을 먼저 얘기한 그런 자리였다. 좌파든 우파든, 내 앞에서는 감추려 하고, 나는 그 감추는 것들을 어떻게든 돌려서 진실을 확인하려 하는 게 내가 겪은 인터뷰였다.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다.

사건의 전말을 정리해보자. 대선을 앞둔 작년 여름, 박인규는 언론사 대표로 프레시안을 이끄는 것이 너무 인간적으로 피곤한 일이라서 사퇴를 결심했다. 그리고 주요 주주들과 협상해서 편집권은 보장하는 선에서 매각을 결정했다. 언론사도 일종의 상품이라, 팔고 사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리고 올 초 실제로 그 일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니 프레시안 기자들이 “그럴 수는 없다”고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더 이상 경영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대표와 주주들 앞에 젊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딱 막아선 그 형국, 도대체 대안은 무엇일까?

“내가 배신 때렸지.”

결정적으로 박인규 대표가 젊은 기자들의 의견 쪽으로 쏠리면서 매각으로 결정을 했던 기존 사주들의 방향에 전환이 왔다. 뭐, 어차피 큰돈도 안되는 인터넷 언론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게 배신까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박인규가 그야말로 선배로서, 후배 기자들의 강력한 의견에 손을 들면서 한국 최초로, 아니 세계 최초로 독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언론 협동조합이 생겨나게 되었다. AP통신사도 협동조합이기는 한데, 그건 제작자들이 조합원으로 구성된 곳이다.

■ 식물언론 시대, 프레시안의 생존은 미래를 여는 열쇠

삼성과 현대로 상징되는 티라노사우루스급 공룡들이 해맑고 밝게 뛰어노는 대한민국 쥐라기 공원에 뮤턴트(mutant), 즉 돌연변이 하나가 이렇게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막 태동하는 한국 경제의 세 번째 다리, 시민의 경제에 ‘입’ 하나가 장착된 것이다. 협동조합은 누가 대변해줄 것인가. 스스로 협동조합 언론이 된 프레시안이 할 것 아닌가. 좋든 싫든, 협동조합은 이제 입을 하나 장착한 셈이다.

선대인 소장과 진행했던 ‘맨발의 경제학’에서 내 마지막 현장 취재는 프레시안이다. 이곳에서 끝내고 싶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이 기회를 빌려 경향신문 독자들에게 ‘동지적 우정’으로 호소하고 싶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어주시라고! 시장이라는 괴물, 국가주의라는 공포 속에서 경제의 세 번째 다리를 만드는 길 외에 우리가 장기적으로 영광과 번영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전두환이 너무너무 밉다는 박정희주의자들이 경제와 언론을 모두 장악한 지금, 프레시안의 생존이 다음 시대를 여는 열쇠가 아닌가 싶다. 정치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는 이 작은 언론사의 생존이 올해의 가장 큰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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