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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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5공화국 이야기 “우리는 늘 함께 맞서왔다”
<제5공화국 전사(前史)>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5공 신군부가 쓴 ‘승리의 역사서’다. 동시에 ‘패배의 과정’을 자인하는 기록물이기도 하다. 군부 독재정권이 자신들만의 역사를 쓰고 있던 시간,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은 ‘민의의 역사’를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다. 어깨를 겯고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들은 결국 권위주의 정권을 넘어 스스로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5공 전사>는 1981년 3월 전 전 대통령의 12대 대통령 취임 직후를 기록하며 끝난다. 책은 마무리됐지만 역사의 종착점은 아니다. <5공 전사>가 지우고, 숨기고, 왜곡한 ‘진짜’ 이야기가 행간에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5공화국체제를 넘어 온 사람들, 그리고 이후 세대들에게 물었다. ‘왜 여전히 5공화국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달랐지만 답들은 서로 닿아 있다. 5공을 겪은 이들은 자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실현돼온 역사를 돌이켜봤다. 5공 이후 세대... -
2475쪽 긴 이야기 종착지는 결국 ‘전두환 집권 합리화’
98일. 5·18민주화운동이 무력진압된 1980년 5월27일부터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그해 9월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신군부는 유신체제가 무너진 10·26 이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열기를 군홧발로 짓밟으며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와 제5공화국 출범(1981년 3월) 준비에 속도를 냈다. 사전정비 작업인 ‘숙청’과 ‘숙정’이 이어진 것이다. 정적들을 제거하고, ‘사회정화’란 이름 아래 언론과 시민사회, 재계를 옥죄었다. 신군부가 편찬한 <제5공화국 전사(前史)>는 이 과정을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새 사회 건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본문 5·6편 주인공은 전두환…5공화국 출범 과정 그려국보위 ‘사회 정화’ 명목으로 정치·사회·종교 망라 ‘숙청’<5공 전사> 본문 5·6편은 제5공화국의 출범 과정과 그 직후를 다룬다. 이제 <5공 전사>의 유일무이한 주인공은 ‘전두환’... -
마지막 문장 속 ‘민주, 복지, 정의사회’를 실현한 건 군홧발에도 굴하지 않은 시민들
“지금은 새 시대의 문턱에서 오랜 산고 끝에 배태된 새로운 청사진을 바라보면서 훗날 그러한 약속들이 신뢰의 바탕 위에 현실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1982년 5월 완성된 <제5공화국 전사(前史)>는 앞선 박정희 독재정권의 실정, 이후 과도기 민간정부의 무능, 여기에 ‘북괴’와 ‘경제위기’라는 혼란을 잠재울 전두환 대통령의 지도력과 신군부의 애국충정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5공 출범 직후까지만을 다룬 <5공 전사>의 마지막 절은 ‘제5공화국의 출범과 국정지표’다. 전두환 대통령과 신군부, 즉 5공의 ‘새로운 청사진’이자 국민들에 대한 ‘5공의 약속’이다.<5공 전사>는 5공의 집권 과정을 “사회 저변에 깊게 물들어 있던 온갖 비리와 파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일시에 표면에 드러남으로써 누적된 상처를 자체 정화해야 했던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표현했다. 또 “ ‘국민적 합의’의 실천에 합당한 실천과제를 찾아야 했다”면서 민...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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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구체제’·최규하 ‘유약’·김대중 ‘용공분자’…입맛대로 평가한 신군부, 자기모순 함정에 빠지다
■ 이승만 전 대통령(재임 1948·7~1960·4)사사오입 개헌, 종신제 시도 사건경향신문 필화도 권력확장 의도로“독재에만 신경 쓴 대통령” 비난“반공과 반일을 앞세워 정적을 타도하고 권력기반을 확장하는 일에 더 신경을 쓴 반면, 진정한 의미의 자주독립국가 건설 작업에는 소홀했다.”전두환 신군부의 <제5공화국 전사>에 적힌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신군부는 12년간 이어진 이승만 체제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1인 독재를 ‘구체제’로 비판하면서 신군부의 5공화국을 ‘새 정치 질서’로 차별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쿠데타로 집권해 군부독재를 이어간 5공화국을 돌아보면 ‘자기모순’이다.<5공 전사>는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1945년 8월15일부터 한국 현대사를 기록하고 있다. 본문 1편 첫 부분에 이 전 대통령의 자유당 시대를 평가했다.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 전 대통령의... -
신군부의, 신군부에 의한, 신군부를 위한 현대사 평가…1945년 광복부터 전두환 집권 성공까지
전두환 신군부의 <제5공화국 전사(前史)> 편찬자들은 “진실을 후세에 전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그 취지를 적고 있다. 하지만 실제론 ‘신군부의, 신군부에 의한, 신군부를 위한’ 뒤틀린 역사서다. 1945년 해방부터 1981년 5공화국 출범까지 한국 정치 전면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평가에서도 이 같은 점이 드러난다. 신군부는 역사를 기술한다는 명목으로 당대 정치현상을 서술하면서, <5공 전사> 곳곳에 인물평들을 섞어놓았다. 인물평 역시 철저히 ‘5공’ 중심이다. 12·12 쿠데타로 등장한 5공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유리한 면은 띄우고, 불리한 면은 지우거나 왜곡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구체제’로 비판하면서 5공이 ‘새 정치질서’라고 강조한다. 박 전 대통령 사망 뒤 권한을 이양받은 최규하 전 대통령은 ‘유약한 인물’로 표현했다.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부각시키고 집권의 정당성을 담보하고자 한 의도로 풀이된다...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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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이 전한 ‘12·12’ ‘5·18’ 한국 도서관엔 없다
미국 ‘타임’ 1979~1980 관련 보도찢기고 검정 칠…2건만 살아남아외신 확인할 근거 검열로 지워내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보관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서 1979~1980년 한국 관련 기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회도서관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진 10·26과 신군부 반란인 12·12, 5·18민주화운동 등을 다룬 기사는 수록된 쪽의 전체나 일부가 찢겨나가거나, 문장들이 검게 칠해져 있다(사진). 전두환 신군부, 제5공화국 언론 검열의 생생한 증거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은 것이다.1970~1980년대 외국 언론은 10·26, 12·12, 5·18, 전두환 대통령 집권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기록했다. 연이은 군부 권위주의 정권의 등장에 한국 민주주의가 질식 상태에 놓였던 시기다. 경향신문 <제5공화국 전사(前史)> ... -
12·12 정당화 위한 증언들, 역사의 심판대에서 ‘자백’이 되다
<제5공화국 전사(前史)>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의 집권 과정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신군부의 정권탈취 시발점이 된 12·12 쿠데타를 미화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노태우·황영시·백운택·박준병·박희도·최세창·장기오·유학성·차규헌 등 당시 쿠데타 주역들의 생생한 증언을 대거 실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신군부 주역들은 <5공 전사>에 실린 증언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판단을 입을 모아 칭송하고 우국충정에 감사한다. 또 군의 신뢰 회복과 국가 혼란 진정을 위한 ‘구국의 결단’을 도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증언은 12·12 진행 과정에서 신군부가 무엇을 정당화하려 했는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강조하려 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다. 자신들의 관점과 입맛에 맞게 정리된 증언은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으로 구성돼 있다.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5공 전사>의 진실과 거짓은 이후 신군부가 역사의 심... -
전두환, 12·12 일주일 전 “속에 군복 겉엔 사복 입고 집결”
치밀하게 준비된 ‘우발적 사건’ 다른 편보다 200쪽 많은 3편 ‘전두환 승리’ 공들여 기술 정승화 체포·육본 점거 상황 ‘예기치 못한 사건’ 적으면서 노태우 증언은 “11월 초 결심” <제5공화국 전사(前史)>(전9권)의 본문 제3편은 유난히 두껍다. 다른 편들이 300~400쪽인 데 비해 1979년 12·12 쿠데타를 다룬 3편은 500쪽이 훌쩍 넘는다. 전두환 정권이 자신들의 ‘비밀 역사서’에 쿠데타의 성공, ‘승리의 날’을 얼마나 공들여 기록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신군부는 <5공 전사>에서 12·12를 박정희 독재의 시작인 5·16 쿠데타에 비교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견해” “졸견”이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12·12를 정당화하려는 이들의 주장은 오히려 스스로 기록한 <5공 전사>에 의해 곳곳에서 뒤집힌다. 자세한 기록들이 자충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5공 전사> 3편은 12·12... -
정승화 체포 문서 ‘미스터리’
<제5공화국 전사>에는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신군부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을 재가한 문건이 실려 있다. 최 대통령은 당시 재가문서에 서명하며 ‘12·13 05:10AM’이라는 시각을 적어 ‘사후 승인’임을 알린 것으로 전해져왔다. 그런데 <5공 전사>에 실린 문건의 서명란에는 이 같은 시각이 없다. 12·12 쿠데타의 불법성을 확정짓는 핵심 문건에 <5공 전사> 편찬자들이 ‘손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5공 전사>는 부록 1편 390쪽에 최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수사착수건의’ 문건을 실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12월12일 오후 6시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최 대통령이 머물던 총리 공관(최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총리 공관에 머물렀다)을 찾아가 정 총장 체포의 ‘재가’를 요청하며 내민 서류다.문건에는 “고 박정희 각하 시해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판단...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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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민 소송, 잿빛 하늘을 몰아내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변호사 르노 그리페(52)는 젊은 시절부터 꽃가루 알레르기와 천식이 있었다. 꽃가루가 날리는 5월을 보내는 게 힘들었다. 1995년 주치의에게 기관지염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며 이유를 묻자 의사는 “알레르기성 체질 때문인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원인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10여년 전부터는 꽃가루가 날리지 않는 겨울에도 점점 숨 쉬기 힘들어졌고 기관지염이 심해졌다. 이제 열두살이 된 막내아들도 자신처럼 기관지염을 심하게 앓는다. 그는 “도대체 나는, 내 아들은 왜 아픈 것인가 알고 싶었다”고 했다. 유전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취재차 찾아간 기자에게 1998년 리베라시옹 신문의 ‘자동차 vs 어린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보여줬다. 그는 “오염의 주된 희생자는 어린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증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그는 그렇게 국가가 대기오염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소송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