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난다

낯붉어 수줍고 서러워 멍들던→홍도로, 흑산도로

전국 지도를 펼쳐놓으면, 서남해쪽에 따로 네모를 쳐놓고 표시된 섬들이 있다. 제대로 축소배율을 맞춰 표시를 하기에는 너무 멀어 지도 안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목포에서 100㎞가량 떨어진 흑산도는 쾌속선으로 2시간, 거기서 다시 30분을 가면 뭍에서 120㎞나 되는 홍도가 나온다. 이 두 섬과 장도, 영산도, 소흑산도가 바로 그 네모안에 들어 있는 서해안의 섬들이다. 이 섬들은 수십년 전 노젓는 배로 다닐 때는 두어 달이 걸릴 수도, 혹은 아예 못 돌아올 수도 있었다는 멀고 먼 곳이었다. 한때는 대역죄인들을 유배 보내는 지옥의 동의어 같은 곳이었지만 쾌속선으로 2시간 만에 연결하는 요즘, 해안의 절경은 매년 여름 관광객들을 수십만씩 부르는 ‘멀고도 가까운 섬들’이 되어버렸다.

[훌쩍 떠난다]낯붉어 수줍고 서러워 멍들던→홍도로, 흑산도로

목포에서 비금·도초도-흑산도-홍도 노선을 타야 하는데, 섬들이 야산처럼 둘러싸고 있는 비금·도초도까지 바다는 아스팔트 길처럼 잔잔하다. 하지만 이후 1시간20분가량은 테마파크에서 ‘롤러 코스터’나 ‘바이킹’을 탈 때처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도 여름철에는 파도가 덜 하지만, 장마 때나 겨울에 배를 타면 순간순간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도 있다.

▲홍도

홍갈색을 띤 규암으로 섬 전체가 이루어져 홍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 그리고 저녁 무렵 먼 바다에서 홍도를 보면 섬 색깔이 불처럼 진홍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홍도는 자생란과 다양한 식물군, 조류 등으로도 중요성을 띠며 섬 전체가 1965년 천연기념물 170호로 지정된 곳이다. 조선 성종 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현재 인구가 475명, 177가구밖에 안 되고,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에는 아이들 40명에 교사가 6명이다.

도로가 없기 때문에 차는 아예 없다. 오토바이와 트럭을 결합한 듯한 소형 차량 20여대와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이 섬의 교통을 책임지고 있다. 전기가 1994년 들어오고 암반수를 개발한 것이 95년이지만, 이때부터 비약적으로 관광객이 늘어나 지금은 서울의 웬만한 지역보다 가구소득이 높다. 쾌속선이 들어오는 부두와 몽돌해수욕장이 있는 1구마을은 횟집과 여관이 즐비한 관광지이고, 하얀 등대가 있는 2구마을은 육로로 2시간, 배로 10여분을 가야 한다.

홍도의 관광포인트는 유람선 관광이다. 인간계와 선계의 중간경계지역인 것만 같은 홍도 주변에 늘어선 기암괴석의 바위들은 홍도까지의 뱃멀미와 여관의 눅눅한 방바닥을 순식간에 잊게 만들 정도다. 홍도 남문, 실금리굴, 석화굴, 탑섬, 만물상, 슬픈여, 부부탑, 독립문, 거북바위, 공작새바위 등 홍도10경이 2시간 동안 슬라이드쇼를 하듯이 펼쳐진다.

60년대 초반부터 40여년간 유람선 가이드를 했다는 최고참 가이드 정방철씨(63)는 “예전에 노젓는 배에 4~5명을 태우고 이 일을 시작해, 똑딱선에서 지금의 최신식 유람선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유람선에서 내리기 30분 전쯤에는 선상에서 회를 파는 이동횟집이 나타난다. 1접시에 2만5천원인데 서너 사람이 먹어도 넉넉하다.

▶홍도 가는길 : 목포에서 배로 2시간30분. 성수기에는 하루 5회, 평소엔 하루 2회 쾌속선이 운항한다. 유람선 관광은 1만7천원, 국립공원 입장료가 2,500원이다. 홍도에서 가장 큰 여관인 광성장(061-246-1122)을 비롯해 10여곳의 크고 작은 여관이 있고, 대부분 횟집을 겸한다. 양식장이 없어서 자연산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다. 신용카드 사용은 어렵다.

[훌쩍 떠난다]낯붉어 수줍고 서러워 멍들던→홍도로, 흑산도로

▲흑산도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있어서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 사람들의 편지에는 흑산을 번번이 자산이라 쓰고 있다. 자는 흑자와 같다.…’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신유박해(1801)로 흑산도에 유배되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손암 정약전(1758~1816)은 흑산도의 어류 155종을 조사해 펴낸 저서 ‘자산어보’의 머리말을 이렇게 엮었다.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은 곳, 흑산도는 삶의 막바지까지 와버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게 되는 유배와 절망의 땅이었다. 전광용의 소설 ‘흑산도’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같은 대중가요에서도 흑산도는 서럽고도 외로운 섬이다.

어업전진기지이자 파시가 열렸던 60~70년대 예리항 부두 유흥업소에는 아가씨들의 숫자가 400여명에 이를 정도였다.

홍어의 본고장이자 섬관광의 대명사가 된 요즘은 인근의 섬인 장도, 영산도 같은 곳으로 가는 중간기착지이기도 하다.

쾌속선 부두가 있는 예리항에서 택시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여가 걸린다. 진리에는 귀신을 불러오는 나무라는 ‘초령목’과 처녀신당이 있고, 정약전과 최익현의 유배지, 버튼만 누르면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가 흘러나오는 해발 230m에 위치한 상라봉 전망대 등이 관광코스다. 열목동굴-홍어마을-범마을-칠성동굴-돌고래바위-스님바위-촛대바위-남근석-거북이바위 등을 돌아보는 유람선 관광에는 2시간30분이 걸린다.

▶흑산도 가는길 : 목포에서 배로 2시간. 흑산 예리항에서 각 지역까지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택시도 수십대 있다. 택시는 행선지를 미리 말하고 요금을 정한 뒤 가는 것이 좋다. 택시 섬관광은 8만원선.

〈흑산도·홍도|글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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