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갯벌 ‘쏙’의 습격…바지락이 사라진다

글·사진 권순재 기자

인천·경기·충남·전북 등 바지락 생산 갯벌 피해 확산

어민 최병각씨가 30일 충남 보령시 주교면 송학2리 갯벌에서 잡은 어린 쏙을 보여주고 있다.

어민 최병각씨가 30일 충남 보령시 주교면 송학2리 갯벌에서 잡은 어린 쏙을 보여주고 있다.

30일 오전 충남 보령시 주교면 송학2리 갯벌. 이곳은 주교면 10개 리로 구성된 주교어촌계 620가구가 바지락을 채취하는 공동어장이다. 그동안 주교어촌계 소속 어민들은 갯벌에 널린 바지락 덕분에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어민들은 “몇 년 전부터 쏙이 나타나면서 바지락 어장이 망가지고 있다”고 했다.

쏙은 바닷가재를 닮은 갑각류로 갯벌 속에서 산다. 번식력이 좋은 쏙이 바지락과 서식지·먹이가 겹치다보니 쏙이 있는 곳마다 바지락이 사라진다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어민 최병각씨(54)의 안내를 받아 썰물로 드러난 갯벌에 들어갔다. 500m 정도 이동하자 지름 1㎝ 크기의 구멍들이 갯벌을 뒤덮고 있는 게 보였다. 바지락의 숨구멍처럼 보였지만 대부분 쏙이 파놓은 것이었다. 바지락은 갯벌 표면에서 10㎝ 정도 아래, 쏙은 0.1~1m 깊이 사이에 ‘Y’자형 구멍을 뚫고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먹고 산다.

최씨가 구멍 수십 개가 뚫려 있는 곳을 삽으로 파내자 500원 동전 크기의 구멍들이 드러났다. 쏙이 뚫어놓은 구멍은 갯벌 아래로 들어가면서 지름이 더 커지는 구조였다. 구멍을 더 파자 어린 쏙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씨는 “쏙이 촘촘하고 넓게 여러 개의 구멍을 내다보니 바지락이 살 공간이 없어진다”며 “쏙이 파낸 모래가 바지락의 숨구멍을 막아 바지락이 폐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쏙이 뚫어놓은 구멍은 갯벌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쏙이 뚫어놓은 구멍은 갯벌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씨는 이어 “주교어촌계의 바지락 어장 면적은 138㏊였지만 2010년 쏙이 나타난 뒤부터 점점 면적이 감소해 올해는 20㏊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서해안 갯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갯벌연구센터는 인천·경기·충남·전북지역에서 바지락을 생산하는 갯벌 1만2319㏊ 중 적게는 8000㏊, 많게는 1만㏊가 쏙 서식에 따른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국내 전체 갯벌어장의 피해 규모나 쏙의 창궐 원인 등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쏙이 창궐하면서 바지락이 줄고 있다는 정도만 파악된 상태다.

바지락 대신 쏙을 식용이나 낚시미끼용으로 잡아 판매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지만 갯벌 표면 1m 아래에 서식하는 쏙을 채취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민들은 전했다. 쏙 제거를 위해 트랙터로 갯벌을 갈아엎어 쏙을 갯벌 위로 끄집어낸 뒤 사람이 수거하거나 갈매기가 잡아먹도록 하는 방법도 있지만 늘고 있는 쏙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어민들은 당국에 쏙 제거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농어업비서관 등도 서해안을 찾아 쏙 피해 실태를 점검했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쏙을 제거할 수 있는 경운장비나 약품 등을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다”며 “관련 연구자 등과 함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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