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비에르라인 오스트리아 헌재소장 “헌재 선고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4개월 반”

빈(오스트리아) | 글·사진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신속한 결론이 성급한 결론은 아니다

<b>“헌재가 위헌 과정을 모두 주도하지 않는다”</b> 브리기테 비에르라인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소장이 지난달 자신의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비에르라인 소장은 “법률이 위헌으로 결정되는 과정을 헌재가 모두 주도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입법, 행정, 사법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헌재가 위헌 과정을 모두 주도하지 않는다” 브리기테 비에르라인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소장이 지난달 자신의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비에르라인 소장은 “법률이 위헌으로 결정되는 과정을 헌재가 모두 주도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입법, 행정, 사법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작년 5047건 접수, 4719건 처리…헌재가 위헌 선고해도 의회가 최종 폐지 ‘최장 18개월 숙려’
헌법재판관 12명 중 3명 ‘수도 밖 거주’ 일종의 지역 안배…현실감각 유지 위해 겸직도 허용
법학자 한스 켈젠의 “위헌 조정하는 별도기관 필요” 주장으로 1920년 세계 최초 헌재 문 열어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는 찾기 어려웠다. 유명 관광지인 슈테판성당과 가까운 시내 중심이었지만 미술관 등과 건물을 나눠 쓰고 있었다. 정문 바로 앞은 작은 도로여서 건물 마당이 없었다. 오스트리아 은행이던 이곳에 2012년 들어왔다. 그 전에는 오랫동안(1946~2012년) 행정재판소와 같은 건물에 있었다. 청사가 크지 않은 이유는 상근하는 재판관이 소장 정도라서다. 부소장도 거의 매일 출근하지만 대학교수를 겸직하고 있으며, 재판관 12명도 교수나 변호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관은 겸직이 허용된다. 그렇지 않은 민사·형사·행정 재판관과 다르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 재판소 측은 “재판소 밖에서 일어나는 각종 법률 문제들을 접하면서 살아 있는 현실감각을 유지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1층에는 안내하는 직원이 있고 2층부터 소장실, 사무국, 심판정 등이 있다. 로비 격인 2층 복도에 세계적인 법학자 한스 켈젠의 동상이 있다. 그의 이론에 기초해 1920년 오스트리아에 세계 첫 헌재가 생겼다. 켈젠은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지만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라고 박사학위도 빈대학에서 받았다. 켈젠은 “국가 통치이념이자 최고 규범인 헌법에 일치하도록 법률, 명령, 규칙이 만들어져야 한다. 헌법에 맞지 않는 법률 등을 위헌무효로 결정할 수 있는 별도의 헌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이 1920년 오스트리아 헌법에 반영됐고 같은 해 헌재가 문을 열었다. 켈젠 자신도 초대 재판관으로 1930년까지 일했다. 여기까지가 널리 알려진 얘기인데 오스트리아 헌재 안내책자에는 뜻밖에 체코슬로바키아 헌재가 언급돼 있다. 오스트리아보다 몇 달 앞서 체코가 헌재를 만들었지만 별달리 중요한 업적을 내지 못했다고 돼 있다. 이런 이유로 세계에서 처음 헌재를 만든 나라로 오스트리아가 인정받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인구는 남한의 17% 수준인 870만명에 국토는 한반도의 38%가량인 8만3879㎢다. 국내총생산(GDP)도 한국의 27% 정도다. 이렇게 작은 유럽의 한 나라가 우리나라 헌법재판 논쟁에 자주 등장한다. 여러 유명한 법률가들이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에 관해 논문을 썼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박일환 전 대법관, 정종섭 전 서울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역시 세계에서 처음 헌재를 열었다는 점이 이유다. 의회의 법률을 위헌으로 선언하는 헌법재판을 발명한 나라는 미국이다. 하지만 일반법원과 분리된 헌재는 오스트리아가 처음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헌법재판이 핵심이지만 그 외 사건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이탈리아 헌재는 일반 민·형사 법원과 분리돼 있다. 논문을 쓴 세 사람은 모두 헌재에서 연구관을 거쳤다. 논문을 작성한 시점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다. 우리나라 헌재가 확고하게 방향을 정하지 못한 시절에 원류를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한동안 오스트리아에 대해서는 별다른 소개가 없다가 최근 대법원과 헌재가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에 대해 다른 해석이 담긴 보고서를 내놨다.

경향신문이 브리기테 비에르라인 헌법재판소장을 지난달 그의 집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오스트리아 헌재는 사전에 보낸 질문에 서면답변도 준비하고 통계도 제공했다. 현장 인터뷰와 문서 답변 등을 종합했다.

빠른 사건 처리 속도가 현재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건이 접수돼 결정이 선고되는 데 평균 4개월 반이 걸린다. 지난해 사건 처리율은 93.5%에 이른다. 5047건을 접수해 4719건을 끝냈다. 처리율이 낮은 해가 이렇다. 2016년에는 99.4%로 3920건을 받아 3895건을 처리했고, 2015년에도 98.1%로 3551건을 접수해 3485건을 처리했다. 100%를 넘기도 한다. 2014년에 106.3%로 2995건을 접수해 3184건을 처리했다. 전년도 미제를 포함하기 때문에 나오는 수치다. 우리나라에서는 헌재 결정을 두고 늦다는 비판이 많다. 헌법재판소법은 180일 이내에 사건을 끝내도록 정하고 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180일 규정이 현실적이지 않으니 없애자는 의견도 있었다. 사건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에 대해 박한철 전 헌재소장은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위해서는 조항을 놔두고 헌재가 가능한 한 빠르게 처리하도록 노력하는 게 맞다”고 말한 바 있다. 늦은 처리도 문제지만 4개월 만에 끝낸다는 얘기에도 고개가 갸우뚱했다.

“모든 공공기관은 적절한 기간 안에 업무를 처리할 의무가 있고 우리 헌법재판소도 예외가 아닙니다. 평균 4개월 반이면 사건이 끝납니다. 한국의 180일과 같은 일반적인 규정은 없지만 선거사건은 4주 안에 처리해야 합니다. 그 밖에는 시간제한이 없습니다. 신속한 결론이 성급한 결론은 아닙니다. 더구나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하면서도 시한을 두고 최종 폐지는 의회가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대 18개월까지 제시합니다. 법률 공백 없이 합헌적인 법률을 만들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접수한 사건이 처음으로 5000건을 넘었습니다. 그래서 처리율이 다소 낮아졌습니다.”

의회에 위헌을 선언할 기회를 주지 않고 헌재가 곧바로 폐지하는 시스템이 오스트리아에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개정 시한을 준다고 한다. 기자는 “사건이 접수되고 나서 사회적 논쟁이 시작되기도 하는데 그런 기회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헌법재판소가 법률이 위헌으로 결정되는 과정을 모두 주도하는 게 아닙니다(의회가 위헌법률이라고 최종적으로 선언해야 하거나, 위헌결정의 취지대로 변경하기도 한다는 뜻). 이에 더해 오스트리아 헌재는 의회의 법률이 공포되고 이에 대해 소송이 제기되어야 심판을 시작합니다. 독일처럼 법률이 공포되기 전에도 심사가 가능한 것과 다릅니다.” 그러면서 지난해 동성혼을 도입하도록 명령한 결정을 예로 들었다.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고 시민결합만 가능케 한 관련 법률이 위헌이라고 지난해 결정했습니다. 이때도 개정 시한을 올해 12월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의회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동성 간 결혼이 가능해진다. 오스트리아는 일단 불완전한 입법 상태로 내년부터 동성혼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분쟁의 마지막에 헌법재판소가 있지만 오스트리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헌재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재판을 걸어놓고 본격적으로 논쟁을 벌이는 셈이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삼권이 동시에 유기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사회갈등이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된다는 설명을 스티븐 브라이어 미국 연방대법관 인터뷰에서도 들었다. 기자는 브라이어 대법관에게 “지금 한국에서는 사법기관이 모든 사회분쟁의 최종 심판자가 되어 있는데 바람직한 것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브라이어 대법관은 노예제도 단번에 사라지지 않았다는 예를 들었다. 헌법을 개정하고, 연방대법원이 판결하고, 마틴 루서 킹이 나서 민권운동을 벌여서야 철폐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결을 내리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했다. 법원이 모든 문제의 최종 해결자가 아니라는 비에르라인 소장의 얘기나 연방대법원은 판결을 하는 게 임무라는 브라이어 대법관의 얘기가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가 우리나라 법조계에서 잊혔다가 최근 떠오른 계기는 대법원과 헌재의 자존심 싸움이다. 오스트리아에는 최고재판소(민·형사), 행정재판소(행정), 헌재(헌법)가 있다. 이 가운데 헌재가 정점에 있는지를 두고 대법원과 헌재가 다르게 해석했다. 2015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은 세 재판소가 동등하다고 했다. 이듬해인 2016년 헌재 헌법재판연구원은 헌재가 상위라고 했다. 이 얘기는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났는데 이른바 본토의 유권해석자라 부를 수 있는 비에르라인 소장에게 물었다.

“민사와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최고재판소, 행정사건을 담당하는 행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보다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따라서 두 재판소가 헌재에 종속(Unterordnung)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헌재가 기능적으로 우위(funktionelle Uberordnung)에 있습니다. 이유는 헌재만이 법률을 위헌으로 폐지할 수 있고, 최고재판소나 행정재판소는 위헌의 의심이 들면 헌재에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헌재를 포함해 재판소 사이에 관할 분쟁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하는 권한도 헌재에 있습니다.”

■브리기테 비에르라인(Brigitte Bierlein)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여성 법조인이다. 194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대학 법학과를 최단기로 졸업하고 26세에 판사가 됐다. 이후 검사로 전관해 오스트리아 첫 여성 검사장이 됐다. 이때 최고재판소의 형사사건을 담당했다. 국제검사협회(IAP) 임원을 지냈다. 헌법재판소에는 2003년 첫 여성 부소장으로 취임해 지난 2월 첫 여성 소장이 됐다. 내년에 70세로 정년퇴임한다.


1925년 무렵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모습.가운데가 파울 비토렐리 초대 소장이고,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한스 켈젠이다. 켈젠은 독립된 헌법재판소라는 이론을 만든 주인공이자 이를 실현시킨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의 초대 재판관이다. 이 사진은 켈젠의 손녀 아네 페더 리(Anne Feder Lee) 박사가 경향신문에 제공했다. 초대 재판소 사진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고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측은 설명했다.

1925년 무렵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모습.가운데가 파울 비토렐리 초대 소장이고,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한스 켈젠이다. 켈젠은 독립된 헌법재판소라는 이론을 만든 주인공이자 이를 실현시킨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의 초대 재판관이다. 이 사진은 켈젠의 손녀 아네 페더 리(Anne Feder Lee) 박사가 경향신문에 제공했다. 초대 재판소 사진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고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측은 설명했다.

■나치 사상 막기 위해선 표현의 자유 제한 가능

절대적 가치 부여된 미 수정헌법 1조와 대조

헌재만이 법률을 위헌으로 폐지할 수 있어, 다른 재판소들보다 기능적으로 우위
모든 분쟁의 마지막에 헌재가 있진 않아…삼권 유기적 가동으로 다양한 해결 방법
오스트리아도 행정사건 아닌 일반사건 당사자의 위헌청구가 가능하도록 헌법 개정

이와 함께 또 다른 첨예한 논쟁은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인 재판소원 제도가 오스트리아에 있는지였다. 재판소원이 가능한 나라는 독일을 비롯해 많이 있다. 그렇지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의 원조인 오스트리아에 있는지를 두고 충돌했다. 대법원은 없다고 했고, 헌재는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도 비에르라인 소장이 설명했다.

“행정법원 판결은 헌법재판소와 행정재판소에서 다툴 수 있습니다. 일반법원의 판결은 헌재에서 다투지 못합니다. 행정사건을 헌재에서 다투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헌재의 전신인 제국재판소가 1869년에 기본권소원심판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1876년 행정재판소가 생기기도 전입니다. 최근 일부에서 헌재가 행정사건을 그만 담당하면 어떻겠냐며 헌재의 특별 행정재판권을 폐지하자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행정사건에서 헌법소원을 받는 이유는 판결이 아닌 법률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열어두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이 제도를 폐지한다면 다른 대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행정사건이 아닌) 일반사건에서도 당사자의 위헌청구가 가능해진 것처럼 말입니다.” 이와 관련, 오스트리아도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법률의 위헌성을 다툴 수 있도록 2013년 헌법이 개정됐다. 법원이 위헌제청을 하지 않아도 당사자가 법률이 위헌이라며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우리나라 제도와 비슷하다

비에르라인 소장의 집무실은 현대회화로 가득했다. 문화예술도시 빈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 자신이 본래 미대에 진학하려 했다고 한다. “현실적인 이유로 좋아하던 미술 대신 법학을 택했습니다. 부모에게서 빨리 자립하려면 가능한 한 과정이 빨리 끝나는 전공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예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전시회에 갑니다. 특별히 더 좋아하는 화가를 골라내기 어려울 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많습니다. 우리 오스트리아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나 에곤 실레는 물론이고요. 고야, 모네 같은 인상파 화가들을 좋아합니다.” 집무실에 있는 작품들은 비에르라인 소장 개인의 소유는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임대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을 빌려올지는 소장이 정했다. 오스트리아 화가인 마르쿠스 프라헨스키(Markus Prachensky)와 요제프 미클(Josef Mikl)의 그림이라고 한다. 그는 전직 판사와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파트너십 관계이다. 이에 대해 여론과 언론의 시비 대상은 아닌지 조심스레 물었다. 사적인 것은 답하기 곤란하다면서 다만 “사인은 물론이고 공인이라 해도 그가 혼인관계이든, 파트너십이든, 아니면 혼자서 살든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오스트리아는 수많은 일류 학자들을 배출한 나라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카를 포퍼,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등 손에 꼽을 수가 없다. 그리고 법학과 철학을 대표하는 한스 켈젠이 있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도 여전히 켈젠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비에르라인 소장은 우선 ‘당위는 당위에서 도출되지 존재에서 도출되지 않는다’는 순수법학이나 ‘하위법은 상위법을 지켜야 한다’는 법단계설이 여전히 유용하다고 운을 뗐다. 100년, 200년 살아남은 위대한 학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스트리아 헌재도 하루아침에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1980년대까지 오스트리아 헌재는 법률을 폐지하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의회에 상당한 자율성을 인정해준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평등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입법부가 자신의 재량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이 원칙에 따르면 의회와 정부가 실질적 평등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 위헌이 된다. 헌법재판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는데 유행을 타면서 달라진다). 그러면서 법률을 위헌으로 선언해 폐지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얘기 끝에는 이렇게 덧붙였다. “켈젠의 아이디어는 법률의 위헌성을 다투는 재판소를 따로 두자는 것이었고, 이는 미국에서 헌법재판을 시작한 것만큼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현재 재판관 전원이 심판정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현재 재판관 전원이 심판정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유럽 재판소들을 취재하면서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미국 연방대법원만큼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절대적인 가치가 부여된 미국 수정헌법 1조를 미국만의 독특한 것으로 보는 듯했다. 이와 관련해 오스트리아 의회와 정부는 히틀러가 태어난 집을 수용해 2016년 폐쇄했다. 네오나치의 순례지가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에 건물주가 헌법 위반을 주장하며 소송을 했다. 지난해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는 폐쇄가 합헌이라고 했다. 이 결정에 대해 비에르라인 소장은 “나치에 대한 절대적인 부정은 1945년 건국한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기본정신이다. 그래서 (나치 피해자인) 오스트리아의 역사적 배경에 따라 국가기관은 나치사상을 막아낼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는 1938년 나치독일에 병합됐다. 나치는 특별한 사례이지만 이 밖에도 표현의 자유를 다소 제한하는 결정이 적지 않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관의 자격 가운데는 특이하게도 주소지 기준이 있다. 9개 연방으로 이뤄진 국가라서다. 재판관 4분의 1은 주소지가 수도 빈이 아닌 곳에 있어야 한다. 재판관 12명 가운데 3명, 예비재판관 6명 가운데 2명은 빈 밖에 살아야 한다. 반대로 소장이나 부소장은 빈에 주소가 있어야 한다. “재판관 선발은 대부분 자질에 따라 결정되지 주소지 문제가 영향을 주는 경우는 적습니다(주소지를 따지지 않아도 이미 분포가 고르다는 뜻이다). 또 주소지는 재판관에 임명되는 당시에만 적용됩니다. 임명된 다음에 빈으로 이주하든, 아니면 빈에 따로 거처를 얻든 문제 되지 않습니다.” 주소지라기보다 출신지 개념에 가까운 듯했고 이 작은 나라에서도 그런 걸 따지는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지역 안배를 한다는 말도 영 촌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소 100주년인 2020년 10월에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가 어떤 행사를 준비하는지 물었다. 비에르라인 소장은 “일단 그때 내가 소장이 아니라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유럽 여러 나라에서 손님을 초대할 계획은 있고 그 밖의 나라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 헌재는 올해 개소 3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초청장을 돌렸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 헌재 건물.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 헌재 건물.


소장 1명, 부소장 1명, 재판관 12명, 예비재판관 6명으로 구성된다. 정해진 임기는 없고 70세 정년만 있다. 재판관이 되려면 법학과를 졸업하고 관련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등이다. 직업법관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직업과 병행할 수 있다. 다만 입법부와 행정부 구성원을 겸할 수 없다. 현재 소장 이외에 부소장도 거의 매일 출근하고 있으나 대학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 취재 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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