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된 인권’ 정신병원

4.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9일 오후 3시 부산의 한 대형 정신병원 3층. 정신분열증 환자 병동이다. 병원 관계자와 함께 이중으로 잠긴 출입구를 들어섰다. ‘낯선 손님’의 방문에 환자들의 시선은 일제히 기자에게 쏠렸고 한두 명씩 기자 주위로 다가왔다. 병원 관계자는 “안전한 사람이니 놀라지 말라”며 멈칫거리는 기자를 안심시킨다.

[‘감금된 인권’ 정신병원] 4.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환자 30여명이 병동 가운데 놓인 텔레비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 뒤편으로는 20여명이 ‘작업치료’를 받고 있었다. 마주보고 앉아 고무풍선을 봉지에 담는 작업이었다. 단순한 작업을 하면서 재활기능도 높이고 돈도 버는 치료방식이다. 한달에 3만~4만원정도 수입이 보장된다고 한다. 방처럼 생긴 병실에는 환자들이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다. 침대는 없고 바닥에는 장판이 깔려 있다. 약물치료를 장기간 받고 있는 환자가 많기 때문에 낮시간에도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다고 한다.

3층을 거쳐 2층으로 내려가니 러닝머신 2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환자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운동기구 옆에 ㄷ자로 만들어 놓은 소파에 환자들이 둘러 앉아 ‘음악치료’를 받고 있다. 노래방 기기에 연결된 마이크를 잡고 환자들이 돌아가면서 한곡씩 불렀다. 병실에는 1인용 침대가 놓여 있다. 3층처럼 바닥에 누워 있는 환자는 보이지 않았고 모두 침대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3층 병동과 달리 환자 숫자도 적어 쾌적한 느낌이었다.

“2·3층이 큰 차이가 난다”는 질문에 병원 관계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환자 종류가 다르다”고 말했다.

2층에는 의료보험환자를, 3층은 의료보호 1·2종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병원수입 측면에서 2층 환자는 1인당 월 1백20만원씩을 안겨준다. 40만원은 정부보조금이고 나머지 80만원은 본인이나 가족들이 부담한다. 3층 환자에게는 정부가 90만원을 보조해준다. 환자 위에 환자가 있는 꼴이다.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정작 이 병원의 주 수입은 3층에서 생활하는 의료보호 환자에게서 발생한다.

[‘감금된 인권’ 정신병원] 4.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이 병원 노조에 따르면 월 수입은 4억여원. 그 중 70%가 정부보조금이다. 600여명의 환자 중 85%가 의료보호 환자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3층 환자들이 이 병원을 먹여살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보조금이 고스란히 환자들을 위해 쓰여지는 건 아니다. 실제 지출은 의사 등 병원 의료진 임금과 병원시설 유지·보수에 60%가 사용되고 환자를 위한 지출은 10%에 불과하다. 노후 시설 개보수, 냉난방 시설교체, 의료인력 확충 등을 병원측에 수차례 요구했지만 적자를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노조측은 주장했다.

이 병원의 한 전문의는 “의사 1인당 환자수가 60명이 정상인데 현재 120명을 돌보고 있다”면서 “환자를 위한 진료 수준이 떨어지고 있지만 병원은 아무런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적자라고 주장하지만 병원 수입은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었다. 김종대 노조 지부장은 “적자를 이유로 투자를 회피하던 이사장이 최근 병원 공금 34억원을 횡령,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면서 “횡령한 돈은 병원 이사장이 운영하는 또 다른 병원의 운영자금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환자들을 위해 쓰여져야할 돈이 이사장 ‘호주머니’로 들어간 것이다.

병원 역시 이사장의 횡령혐의를 시인했다. 이 병원 이사장은 문제가 된 정신병원의 이사장직을 내놓았지만 인근지역에 또 다른 정신병원 1곳과 노인전문병원 1곳을 운영중이다.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이라도 남았지만 기자가 찾은 정신병원에는 ‘욕심’과 ‘비리’의 악취만 진동하는 듯 했다.

〈조현철기자 cho197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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