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익씨 유서 전문

금속노조 한지중공업지회 김주익 지회장이 농성을 벌이던 크레인의 운전석에서 노란색 봉투에 담긴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 라는 제목의 3장은 가족에게 남긴 것이며 지난 9월9일 작성한 것이어서 김지회장은 한달전부터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동지 여러분’ 이라는 제목의 1장은 10월 4일에 작성됐다.

다음은 유서의 전문이다.

-유서-

오랫만에 맑고 구름없는 밤이구나. 내일모레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원이 다 되어가는데, 내가 85호기 크레인 위로 올라온지 벌써 90여일. 조합원 동지들의 전면 파업이 50일이 되었건만 회사는 교섭한번 하지 않고 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조합에 협조적인 조합원의 씨를 말리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노동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1년 단기 순이익의 1.5배, 2.5배를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수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원 정도의 배당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천5백억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러한 회사에서 강용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

이 회사에 들어온지 만 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 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팔십몇만원. 근속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 놈의 보수언론은 입만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달 말인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경영진들은 지금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

하지만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농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고 말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리할 때까지 이번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빨리 가는 것 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하나 해준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힐리스(바퀴달린 신발)인지 뭔지를 집에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지 며칠 안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 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준엽아, 혜민아, 준하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지 십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징이 되었네. 그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 해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가신 부모님과 막내누라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안녕

2003년 9월 9일
김주익

-조합원 동지 여러분-

회사의 경영진들은 우리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인간 대우를 해달라는 요구를 끝내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대의원 이상 간부 동지들. 그리고 조합원 동지 여러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투쟁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노동조합을 사수할 수 있고 우리 모두의 생존권도 지켜낼수 있습니다.

동지들!나의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간에 나의 주검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입니다.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킬 것이며 조합원의 승리를 지킬 것입니다.

10.4. 김주익


Today`s HOT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폭격 맞은 라파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