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된 로스쿨 오탈자···"사회적 약자층부터 탈락된다"

김찬호 기자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된 지난 4월 21일 최상원씨가 변호사시험 개선을 요구하며 법무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최상원씨 제공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된 지난 4월 21일 최상원씨가 변호사시험 개선을 요구하며 법무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최상원씨 제공

최상원씨는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눈을 감을 때마다 막막한 현실이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최씨의 꿈은 ‘장애인을 돕는 법조인’이었다. 오직 변호사가 되기 위해 10년을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최씨는 한국에서 법조인이 될 자격이 ‘영원히’ 박탈됐다. 변호사시험은 로스쿨을 졸업한 5년 내, 5번만 응시할 수 있다는 제한에 걸렸기 때문이다. 최씨는 이른바 ‘오탈자’가 됐다.

최씨의 사례는 사회적 약자층이 겪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의 문제를 총망라한다. 장애인, 저소득층, 변시낭인, 합격률 등의 문제가 모두 최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매해 약 200명 정도가 최씨처럼 ‘오탈자’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30대 중반이라는 나이, 사회에서 낙오됐다는 자괴감에 공개적으로 나서길 꺼린다. 분명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씨는 ‘다양한 경험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로스쿨 도입 취지를 믿었다. 하지만 현재 최씨에게는 수천만원의 빚과 공황장애만이 남았다. 지난 5월 10일 지방 본가에 머무르고 있는 최씨와 화상통화 방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최씨는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제한해야 한다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말을 전하며 ‘이기적인 법조계의 민낯’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최씨와 나눈 대화 전문이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1983년생으로 올해 서른여덟 살이다. 연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학부 졸업 후 작은 방송국에 취업해 1년 반 정도 일했다. 평소 장애인 관련 일에 관심이 많아 시민단체로 이직해 1년 정도 더 일했다.”

-로스쿨 진학은 언제, 왜 결심하게 됐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해외에서 열린 장애인 세미나에 참여했다. 각 나라의 젊은 법률가들이 자국의 장애인 관련 법 등을 설명한 반면, 우리는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법률가를 찾기 쉽지 않았다. 내가 직접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로스쿨 4기를 모집하고 있었고, 서강대 로스쿨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 당시, 정부의 로스쿨 정책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나.

“그렇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게 한다는 취지였다. 이를 위한 수단이 변호사 수 증대나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 등이라고 이해했다. 나의 꿈이기도 했던 장애인을 위한 법률 활동은 정부의 로스쿨 도입 취지와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입학 이후 어려움은 없었나.

“나는 뇌병변장애로 오른쪽 손, 발이 불편하다.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았다. 2년 정도 휴학하고 돈을 벌어가며 공부했다. 대부분의 로스쿨생들이 비슷하겠지만 학교 수업만으로 따라가기 어려웠다. 인터넷강의 같은 사교육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일을 하며 그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사교육까지 받아야 하나.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 동기들도 서로 도와가며 공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떨어지면서 사실상 상대평가가 됐고, 남들보다 1점이라도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현재는 90% 이상이 사교육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신촌에 있는 한 학원의 1년 과정은 200만원 정도였다. 과외식으로 하면 1000만원 정도다. 나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수업 후 칠판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 강의를 들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원에서 행정 아르바이트도 했다. 변호사시험은 빈부격차가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집안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은 시험 합격이 점점 어려워진다.”

-로스쿨은 특별전형 학생들이 법조계로 진출하는 데 유리한 제도가 아니었나.

“특별전형은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 탈북민 등의 법조계 진출을 돕는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는다. 로스쿨 입학 기회는 주지만 대부분 변호사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오탈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이들을 희망고문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특별전형 학생들의 합격률은 어느 정도인가.

“특별전형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5회 시험 이후로는 공개하지 않는다. 자체 조사에 따르면 10% 정도만 합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 주위 특별전형 친구들만 봐도 합격한 사람이 거의 없다. 탈북민 역시 마찬가지다. 직접 목격한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지체장애인 친구였다. 그 친구는 로스쿨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변호사시험에 4번 도전한 끝에 스스로 포기했다. 4박5일 시험 일정을 체력적으로 견뎌내기 힘들어했다.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안 되는 것을 보면 법학은 내 적성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던 마지막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인위적으로 합격률을 고정하면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 한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공부하는 특별전형 학생들이 가장 먼저 낙오된다.”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된 지난 4월 21일 최상원씨가 변호사시험 개선을 요구하며 법무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최상원씨 제공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된 지난 4월 21일 최상원씨가 변호사시험 개선을 요구하며 법무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최상원씨 제공

-시험 합격률이 문제의 근원인가.

“무조건 응시자의 절반은 떨어진다. 변호사로서 갖춰야 할 절대적 능력과는 관계가 없다. 로스쿨과 비슷한 시기에 도입된 의학전문대학원을 보라. 의사 국가고시의 합격률은 97% 이상이다. 대학을 졸업한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입학한다는 점은 같지만 결과는 다르다. 시험 합격률이 50%라는 점이 졸업 후 5년 내, 5번 시험 안에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는 제한과 맞물리며 문제가 증폭된다.”

-5번 응시 제한은 왜 생긴 것인가.

“이 제도를 만든 교수님을 직접 만났다. 그분은 80~90% 정도 합격률을 생각해 5번 응시 제한을 뒀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합격률은 50% 정도다. 만약 합격률을 올릴 수 없다면 5년 내, 5번 응시 제한이라도 개선해야 한다. 졸업하고 5년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두 번째 시험을 칠 때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고 항암치료를 위해 가족 모두 시골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부가 응시 제한을 둔 것은 ‘사시낭인’을 막기 위한 것 아닌가. 실제 효과가 없다는 것인가.

“오탈자는 최소 4년 과정의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 3년, 변호사시험 5년을 거친 뒤 나온다. 나처럼 사회생활을 하다 온 사람이라면 30대 중·후반이 된다. 오탈이 된 후 사회생활을 하려고 보니 내게 남은 것은 빚과 많은 나이뿐이었다. 시험에 매달려 있던 지난 10년 동안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시낭인 대신 변시낭인이 양산되고 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개인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로스쿨 진학은 내 선택이고 책임이 맞다. 다만 응시제한으로 발생하는 ‘오탈’ 문제는 다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나는 아무런 중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범죄자들처럼 직업 선택에 제한이 걸린다. 한국에서 법조인이 될 기회는 영영 가질 수 없다. 이는 너무 이상한 상황 아닌가.”

-오탈되는 사람들이 누적된다는 것은 시한폭탄 같은 것인가 .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이 치를 기회비용은 커진다. 긴 시간 동안 아무런 사회 경험 없이 시험에만 매달린 오탈자들이 매해 200명씩 나온다. 이미 누적된 인원만 1000여명 정도 될 것이다. 서울권의 작은 로스쿨의 경우 입학자의 25% 정도가 오탈이나 적응 실패로 다른 길을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 중 정신적 충격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다. 로스쿨을 선택했다가 폐인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최상원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 5월 6일 김광진 청와대 청년비서관과 간담회를 갖고 변호사시험 개선을 요구했다.  / 최상원씨 제공

최상원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 5월 6일 김광진 청와대 청년비서관과 간담회를 갖고 변호사시험 개선을 요구했다. / 최상원씨 제공

-정부에는 이 사실을 전했나.

“전해철 장관, 김남국 의원 등을 만났고 최근에는 김광진 대통령비서실 청년비서관도 만났다. 이분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함부로 손댈 수 없다’는 말만 똑같이 했다. 피해자가 더 많이 나와 도저히 개선하지 않을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움직인다는 말 아니겠나.”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은 이 문제를 알고 있지 않나.

“사실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이다. 초창기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된 이들은 시험 합격률 70~80%대의 수혜를 누렸다. 당시 시험 합격률이 떨어질까봐 정부를 찾아가 시위까지 했던 이들이다. 일단 변호사시험에 통과해서 시장에서 평가받겠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들이 나서서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줄이자고 한다. 본인들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논리다. 여전히 높은 변호사 비용으로 피해를 받는 것은 일반 국민들이다.”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차라리 처음부터 입학 정원을 제한해 변호사 배출 숫자와 비슷하게 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하면 3년 동안 변호사 시험에만 매달리는 현상을 예방하고, 로스쿨 도입 취지에 맞는 교육도 가능하다. 하지만 로스쿨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에서 이 역시 쉽지 않다.”

-앞으로 계획은.

“사실 지금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수험 과정에서 공황장애가 생겨 응급실에도 두 번 실려갔다. 차나 지하철도 잘 못 탄다. 당장 좀 쉬고 싶지만 로스쿨을 다니며 지게 된 빚을 갚아야 한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데 막막하다.”

-다시 돌아간다면 로스쿨을 선택하겠나.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법조 카르텔을 깨겠다며 로스쿨을 도입했지만, 그분 외에 이 제도에 애정을 갖고 바로 세우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스쿨 공부를 하며 알게 된 법조계는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곳이 아니었다.”

매해 약 2000명이 로스쿨에 입학한다. 이들 중 자신의 오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로스쿨 교수들이 참석하는 입시설명회에서도 오탈 가능성을 경고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최대한 많은 수험생이 지원해야 로스쿨이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오탈은 희귀한 경우가 아니다. 매해 치르는 변호사시험에서 둘 중 한명은 시험에 떨어지고, 200여명이 오탈자로 배출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층’으로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이다.

누적 인원 1000여명 정도로 알려진 오탈자 중 일부는 정신적 문제까지 겪고 있다. 날이 갈수록 로스쿨 제도를 둘러싼 위험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경고하는 곳은 전무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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