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십니까…보이지 않는 직업병

유명종 PD

“직업병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죠. 암에 걸린 사람은 많지만 직업이 원인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일을 그만둔 뒤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2013년부터 물리교사로 일한 서울씨는 수업 시간과 동아리 활동 등에 3D프린터를 활용한 교구들을 만들었다. 3D 프린터를 활성화하는 정부 정책에 따른 것이다. 그후 5년이 지난 2018년, 그는 육종암 진단을 받았고 지난해 7월 사망했다. 서울씨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며 3D프린터를 자주 사용했던 교사도 육종암 진단을 받았으며 다른 과학고에서도 육종암 진단을 받은 교사가 나왔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3D프린터에 사용하는 소재가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를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발표했다.

학교 급식실에서 12년간 근무했던 조리사가 지난 2018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이 조리사는 지난 2월 뒤늦게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학교 급식 노동자의 ‘직업성 암’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다. 조리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를 10년, 길게는 20년간 지속적으로 흡입하면 어떻게 될까. 230도 이상 고온에서 기름을 가열할 때 지방 등의 분해로 배출되는 ‘조리흄’(Cooking Fumes)은 국제암연구소가 폐암의 위험 요인으로 분류하는 물질이다. 따라서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조리실에서 일회용 마스크 하나에 의지한 채 일하는 조리사는 폐암 발병 확률이 높다. 이번 산재 인정 이후 급식 조리사의 산재 신청은 줄을 잇고 있다.

노동자의 작업 환경에는 많은 유해 화학물질이 존재한다. 적절한 보호구나 환기를 위한 장치 없이 일을 하게 되면 유해 물질에 그대로 노출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윤근 소장은 “자기 직업에 대해서 언제든지 위험할 수 있다. 직업병에 걸릴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의심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암 환자의 4% 정도가 ‘직업성 암’일 것으로 추정한다. 국립암센터의 2018년 통계를 보면 1년에 24만명의 신규 암 환자가 발생한다. 4%로 가정을 하면 약 9600명 정도가 직업성 암 환자다. 그런데 직업성 암이 인정되는 경우는 약 200명, 0.008% 수준에 그친다.

“용접 작업을 많이 하면 폐암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작업자들은 모릅니다. 위험성을 알려줘야 할 사업주가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고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10년 이상 용접 작업을 하다가 폐암에 걸리면 거의 100% 산재로 인정이 되는데 직업병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을 인지하는 데)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 문제입니다.”(이윤근 소장)

태안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하청 노동자였던 김용균씨. 평택항 컨테이너 작업 현장에서 일하던 이선호씨.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구의역 김군. 세 사람의 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사고성 재해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주기 때문에 경각심을 갖게 한다. 반면 질병의 형태인 ‘직업병’은 위험성을 자각하기 쉽지 않다. 특히 직업성 암은 유해 물질에 노출된 후 10~40년이 지나야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피해자가 발병의 원인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산재 인정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윤근 소장은 의료기관에서 직업성 암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 진단 과정에서 직업을 묻는 의사가 많지 않아요. 직업을 인지하면 질병의 원인을 추정하기 쉬워지죠. 왜 그 질병이 생겼고, 어떻게 예방해야 할지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진료를 하면서 직업력을 확인해 직업성 암이 의심되면 직업병 심의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한국의 (직업성) 암 환자들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성 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런경향>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보이지 않는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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