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1000원 내면 병원 예약 된다던데, 어디로 가서 내면 되니?

[이진송의 아니 근데]진찰받을 권리도 온라인으로 챙기는 시대…앱 ‘똑닥’이 드러낸 디지털 소외

다음주, 부산에서 나훈아의 콘서트가 열린다. 나훈아 콘서트의 티케팅은 효도 전쟁으로 유명하다. 치열한 티케팅에서 패배한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부모님을 공연에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 나훈아는 콘서트가 끝날 무렵이면 티케팅해준 자식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라는 덕담을 건넨다고 한다.

‘나에게도 쉽지 않은 티케팅을 다들 어떻게 하고 있을까? 표를 구해줄 젊은 사람이 없는 관객은 공연에 오지 못하겠지? 자식이 없는 나는 30년 후에 가고 싶은 공연에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씁쓸함이 몰려온다. 2년 전에도 나훈아의 공연에 다녀온 엄마는 오래전 할머니와 함께 공연을 봤던 추억을 떠올렸다.

늘 농사일에 찌들어 있던 ‘엄마의 엄마’가 설레하는 모습이, 엄마에게도 커다란 기쁨이었다고 한다. 그때 어떻게 표를 구했냐고 물었더니 전화로 예매했다고 대답한 엄마는 이내 우울해졌다. “요즘은 다 인터넷으로만 하니까 우리는 못하지. 공연 끝나고 택시 타려고 하는데 다 앱으로 예약하니까, 빈 택시여도 쌩쌩 지나가기만 하고. 길에 30분 넘게 서 있다가 겨우 한 대 잡았다.” 속상한 마음에 그 메시지를 캡처해 SNS에 올렸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우르르 메시지를 보냈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과 플랫폼 서비스가 일상화되면서, ‘디지털 소외’ 혹은 ‘디지털 난민’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디지털 소외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보편화되면서 기기나 관련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디지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교육이나 소득 수준, 주거 지역, 인종, 연령, 신체적·정신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에 디지털 격차는 불평등에서 기인해 불평등을 초래한다.

구독료가 저렴해도 결국 정보 싸움
스마트폰·전자기기 활용법 모르면
‘그림의 떡’일뿐 혜택 누리지 못해
절박한 이들 순서 뺏을 수도 있다

시대 변하면서 발생하는 현상 아닌
서비스 독점해 주무르는 플랫폼 탓
가입자가 1000만명인 병원 예약 앱
회원과 비회원 간 형평성 문제 커

내 가족이 디지털 난민임을 깨닫고
막막한 허탈감 느껴본 적 있는가
장애인·약자 배제하는 디지털 규격
최적의 인간만 누리는 삶은 옳을까

디지털 소외계층은 저소득층, 장애인, 고령층, 이주민, 결혼이민자 등 다양하며, 그중에서도 고령층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최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경기에서, 온라인 예매로만 티켓을 판매해 고령층 팬들은 경기장에서 야구를 볼 수 없는 문제가 보도되었다. 버스·기차 탑승권을 온라인 예매 위주로 판매하면서 고령층이 시간에 맞춰 터미널과 역에 방문해도 표를 구할 수 없다는 문제 제기 또한 꾸준히 이어졌다.

현금 없는 버스와 매장의 운영, 키오스크 주문의 증가 등은 효율과 비용 절감만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변화에 따르는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시킨다. 온라인 쇼핑 혜택이나 할인 정보를 빠삭하게 파악하지 못해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사거나, 각종 서비스에서 ‘덤터기’를 쓰는 경우는 ‘노인세’ 혹은 ‘고령세’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다. 필요한 물건을 최저가로 사달라는 ‘지령’을 받은 자식들이 온라인 사이트를 뒤지다가 효도와 귀찮음 사이에서 감정적 널을 뛰고, 마침내 고령층이 처한 현실에 허탈함을 느끼는 엔딩은 보편적인 공감을 사는 일화다.

그런데 디지털 소외는 단순히 ‘시대가 변하니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우리를 서서히 미래로 인도하는, 막을 수 없는 발전의 흐름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서비스를 독점해 생태계를 파괴하고, 착취와 다름없는 이익을 추구하는 플랫폼도 한몫 단단히 한다. 최근 이슈가 된 ‘똑닥’ 사태는 디지털 소외와 형평성 저해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똑닥’은 병원 예약 기능을 제공하는 앱으로, 출시 7년 만에 누적 가입자 수 1000만명을 돌파했으며 연계된 병의원은 1만곳을 넘는다.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시간에 진료 예약을 하고, 그 시간에 맞춰 병원에 찾아가면 되는 똑닥의 서비스는 2023년 9월5일 유료로 전환됐다.

월 1000원의 비용은 저렴하다면 저렴한 금액이지만, 진료를 받으려면 반드시 결제해야 하는 시스템은 유료 전환 전후부터 논란이었다. 똑닥 유료 전환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 소아청소년과라는 사실에 주목한 기사는 “똑닥은 진료 예약의 편의성을 증대하는, 사회의 필요를 채우는 서비스라기보다 오히려 필요에 ‘침투’한 서비스”(조경숙, <월 1000원 ‘똑닥’이 의료 공공성에 던진 질문>, 시사IN, 2023·9·23)라고 지적했다.

진료 수가가 낮아 문을 닫는 병원이 늘면서,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대기하는 ‘오픈런’이 화제일 만큼 소아청소년과는 진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똑닥을 통해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문제는 일부 사라졌고 대기가 짧아져 선호하는 소비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진료난이라는 근원적 문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온라인·유료 서비스를 통해 일부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의료 공공성을 해친다. 앱을 사용하지 않는 환자들은 대기를 해도 진료를 받을 수 없거나, 예약 필수인 병원에서 진료받을 권리조차 침해받는다. 유료 이용자와 무료 또는 비회원 간의 진료 접근성 차이는 결국 정보와 경제 격차로 인한 진료 차별 현상이다.

유료 구독료가 ‘겨우’ 1000원인데 이게 무슨 경제 격차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다. 특정 앱을 깔아야 하고, 사용자 정보 제공에 동의해야 하는 데이터 경제가 물밑에 도사리고 있다. 또한 시장이 아닌 곳에 침투한 플랫폼 기업이 어떻게 생태계를 장악하고, 가장 취약하고 절박한 이들에게 비용을 떠넘기며 그 부담을 점점 증가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선례가 있다.

광고를 넣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카카오, 처음에는 예약 기능만 있었지만 점점 추가 요금을 내지 않으면 기사도 손님도 사용이 어려워지는 카카오택시, ‘배달비’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배달의민족, 무료라고 광고했지만 이용자가 늘어나자 15기가 이상의 용량은 이용료를 지불하라고 바꾼 구글 포토, 광고를 붙이면서 ‘광고 없는 버전’을 유료로 판매하는 유튜브….

이런 식으로 무료를 앞세워 이용자를 확보한 후 유료화를 통해 이익을 뽑아내는 수법은 ‘약탈적 비즈니스’라고 비판받는다. 지금은 1000원이지만, 소비자의 의료 정보를 수집하고 시장을 독점한 결과는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

‘매직패스(Magic Pass)’는 롯데월드가 2006년 도입한 놀이기구 탑승 예약 시스템으로, 미리 예약한 시간에 놀이기구 앞으로 가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줄과 무관하게 바로 탑승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을 모를 때는 한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유유히 지나쳐 먼저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차례대로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고, 누군가 어떤 이유로 새치기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찝찝함. 문제는 특정 고객에게 혜택을 제공하느라 발생하는 비용을 기업이 아니라 또 다른 고객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매직패스 때문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기 시간은 야금야금 늘어난다. 매직패스가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따로 확충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자원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예상하듯이, 아는 사람만 쓸 수 있는 무료였던 매직패스는 이제 유료이며 비싸다.

디지털 소외는 취약계층에게 생존과 직결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에서 다니엘 블레이크는 평생을 목수로 성실하게 일했으나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노동 능력을 상실한다. 다니엘은 관공서로부터 지원을 받으려 시도하지만, 복지부처 담당 공무원과 전화 연결이 되는 데만 거의 2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지원을 받으려면 온라인으로 신청을 해야 하는데, 고령층인 다니엘에게는 이 모든 절차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효율과 편의를 명분으로 모든 것을 디지털화할 때, 그 매끄러운 폭주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구성원을 사회적으로 내다 버린다. 표를 예매하거나 택시를 잡거나, 가게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행위에서 거절당하게 만들고, 무력함을 학습시킨다.

환자가 진찰받을 권리를 온라인 예약으로 결정하는 똑닥은 디지털 소외 문제에, 플랫폼 기업의 수법이 결합되었다. 똑닥의 예약 시스템은 워낙 치열해서 ‘1초 컷’으로 불린다. 환자가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가 단 1초 안에 판가름 나고, 그마저 어딘가에 회원 가입을 하고 얼마의 돈을 지불해야 주어진다는 사실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한 장면 같다.

지금은 소아청소년과가 가장 두드러지지만, 누구든지 언제든지 정보 격차와 지불 여부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에서 ‘뒤로 밀리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누구나 현재의 기술을 가장 빠르게 습득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고, 젊은 나이로 영원히 사는 존재는 없다. 키오스크가 노인뿐 아니라 휠체어 사용자나 어린이, 시각장애인까지 모두 배제하듯이 디지털화의 규격은 점점 더 ‘좁은 문’이 되어가고 있다. 최신과 최적의 인간만 최선의 삶을 누리는 세계는 당연하지 않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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