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 사진들

빛이 바랜 깃발은 지난 세월을 그대로 품었습니다

강윤중 기자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4월 1일

<찢긴 상처 틈새로 ‘하나된 봄’이 왔다> 지난 4일 전남 진도항 팽목방파제에 ‘기억하고 행동하겠다’는 다짐이 새겨진 노란 깃발이 지난 세월에 바래고 뜯겨나간 채 나부끼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찢긴 상처 틈새로 ‘하나된 봄’이 왔다> 지난 4일 전남 진도항 팽목방파제에 ‘기억하고 행동하겠다’는 다짐이 새겨진 노란 깃발이 지난 세월에 바래고 뜯겨나간 채 나부끼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 10번째 봄을 맞았습니다.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데에 어떤 주기가 있다는 것이 영 민망한 일이지만, 10주기를 앞두고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들은 전국을 걸었고, 매체들은 기획을 준비합니다. 1일자 1면에는 1회차 기획을 아우르는 한 컷의 사진이 필요했습니다. 후보는 진도 팽목방파제에서 찍은 두 장의 노란 깃발 사진이었습니다. 뭘 써도 좋았지만, 최종 낙점된 사진은 바닷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깃발과 붉은 등대 진도 앞바다가 담겼습니다. 바람에 올이 뜯겨나간 빛이 바랜 깃발은 지난 세월을 그대로 품었습니다.

■4월 2일

<대통령 지켜보는 의사...무슨 생각 중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1일 서울 시내 대형병원에서 한 의사가 생중계되는 대통령 담화를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대통령 지켜보는 의사...무슨 생각 중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1일 서울 시내 대형병원에서 한 의사가 생중계되는 대통령 담화를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날 사진취재에 나선 후배에게 준 미션은 일단 TV가 있는 대형병원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가 진행되는 동안 환자나 의사의 시선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지시했습니다. 대통령의 담화 사진이 대통령실 제공으로 뿌려졌지만, 이를 바라보는 의사의 시선이 있으면 입체적이면서도 이슈에 더 충실한 사진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날 대통령의 담화는 51분 동안 이어졌고,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안은 중단할 수 없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4월 3일

<제주 4·3 76주기...아물지 않는 아픔> 제주 4·3 사건 76주기를 하루 앞둔 2일 제주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 앞에서 사건 당시 부모·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이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4·3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해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문재원 기자

<제주 4·3 76주기...아물지 않는 아픔> 제주 4·3 사건 76주기를 하루 앞둔 2일 제주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 앞에서 사건 당시 부모·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이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4·3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해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문재원 기자

매년 챙기는 기념일 중 하나는 현대사의 비극인 4·3입니다. 76주기가 되었습니다만 4·3은 여전히 제주의 아물지 않는 아픔입니다. 추념일 당일 지면에 사진을 쓰기 위해 전날 새벽에 제주로 날아가서 아침부터 4·3평화공원에서 스케치를 했습니다. 매번 같은 현장을 가지만 다른 사진이 마감됩니다. 가는 기자가 달라서이기도 하고, 같은 기자가 가도 그새 다른 상황, 다른 시선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빼곡한 행방불명인 표석들과 주변에 흐드러진 벚꽃 사진을 골랐습니다.

■4월 4일

<위태로운 건물> 3일 대만 동부 화렌현 일대를 강타한 규모 7.2 강진의 영향으로 화롄시의 한 건물이 기울어지자 소방당국이 주변을 봉쇄한 채 사다리차를 이용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위태로운 건물> 3일 대만 동부 화렌현 일대를 강타한 규모 7.2 강진의 영향으로 화롄시의 한 건물이 기울어지자 소방당국이 주변을 봉쇄한 채 사다리차를 이용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출근하자마자 ‘대만서 규모 7.3 강진’ 속보가 떴습니다. 1면 사진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1면 사진이 결정되면 연쇄적으로 다른 지면의 사진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1면 사진이 빨리 나타나면 일과가 수월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25년 만에 최대 규모’라는데 외신에는 피해의 규모를 드러내 주는 사진은 없었습니다. 건물 한 채가 위태롭게 기울어진 것 말고는 눈에 띄는 사진도 없었지요. 1면 사진 회의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지진 사망자 4명(3일 15시 기준)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사망자 수도 지진 규모에 비해서는 적다 싶었습니다. 한 인간으로 볼 땐 그만하면 다행한 일이지만, 1면 사진에 대한 강박이 있는 자에겐 아쉬운 대목입니다. 사망자의 수가 사진에 의미를 부여할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께름칙해서 이날 중국으로 떠난 푸바오 배웅 사진에도 눈길을 줬습니다. 결국 기울어진 건물 사진을 썼습니다. 놀랍게도 다음 날 아침 사무실로 배달된 모든 일간지 1면에 이 기울어진 건물 사진이 게재됐습니다.

■4월 4일

<불법 촬영 막아라...탐지 장비로 점검>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일을 하루 앞둔 4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 마련된 인천 중구 운서동 제2 사전투표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불법 촬영 탐지 장비를 이용해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불법 촬영 막아라...탐지 장비로 점검>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일을 하루 앞둔 4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 마련된 인천 중구 운서동 제2 사전투표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불법 촬영 탐지 장비를 이용해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 취재는 ‘4년 전엔 뭐 했더라’가 기준이 됩니다. 돌발이 없는 한 사진은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날은 사전투표소 설치 장면을 찍습니다. 그 많은 투표소 중 어디를 갈 것인가 고민하지요. 대선이든 총선이든 서울역 대기실이 인기였지만 요즘 이곳에는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습니다. 이날은 인천공항 출국장에 설치되는 투표소를 찾았습니다. 이번 설치와 점검에는 불법 촬영을 막기 위한 탐지 장비가 동원됐습니다. 사전투표 첫날 보는 1면 사진에는 투표 독려의 의미도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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