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 🎓폰카 없이 살 수 있을까? : 사진 없는 사진첩, 응시

폰카 없이 살 수 있을까? : 사진 없는 사진첩, 응시

Photographs Not Taken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04), 2023.11.8,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웹에서 보기 Web link

키워드: 사진, 폰카, 기억, 인증샷, 응시

1.머리말
2.사진 없는 사진첩 : 글로 쓴 사진
3.우물쭈물했던 순간 : 관찰의 시작
4.카메라 없이 응시하고 머무르기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저는 최근 핸드폰 사진첩 약 10년치를 정리했습니다.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기계 안에 들어있던 사진을 폴더별로 노트북에 넣어둔 것인데요.

오랜만에 추억을 되살려볼겸, 두근대며 정리를 하다보니 자주 갸우뚱해졌습니다. 분명 내가 찍은 사진인데, 대체 무슨 상황에서 무슨 생각으로 찍은 사진인지 알쏭달쏭한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찍어둔 하늘이나 풍경, 음식 사진은 대체로 다 똑같아 보였고, 가을이 될 때마다 비슷한 구도의 은행나무를 잔뜩 찍어둔 노란 사진들이 뭉텅이로 발견되었습니다. 심지어 여행지에서 찍은 인증샷들도 언제 찍은 것인지 곰곰 기억을 되짚어봐야 겨우 기억이 날까말까한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들을 보며 애써 기억을 되살려보아도, 여전히 정작 그곳에서 실제로 무엇을 보고, 느꼈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깜깜했죠.

실망스러운 사진뭉치를 앞에 두고, ‘내가 그때 사진을 더 잘, 더 많이 찍었다면 달라졌을까?’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은 강렬합니다. 우리는 어떤 간직하고 싶은 특별한 순간에 사진을 열심히 찍곤 합니다. 어떤 여행지들은 아예 '인증샷'을 찍기에 좋게 기획되고 있죠.(왼쪽) 최근 미국 앱스토어 1위에 오르면서 눈길을 끈 일회용카메라 앱 Lapse. 촬영 컷수에 제한이 있으며, 찍고나서 바로 확인이 불가능하고 며칠의 '인화' 기간을 거쳐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MBC, Lapse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기록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이전에도 필름이나 피처폰 카메라가 있긴 했지만, 이처럼 모두가 고화질의 카메라를 거의 24시간 손에 들고다니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죠. 어디서나 내가 왔다 갔다는 증거를 남기는 ‘인증샷’ 문화도 일상이 된지 오래고요.

마치 SF 소설 속, 내가 본 광경을 모조리 빠짐없이 기록하는 ‘리멤’ 장치1)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 최근 미국에선 ‘Lapse’라는 카메라앱이 앱스토어 1위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낳았는데요.(링크) 이 앱은 필름 카메라처럼 일정 컷수를 찍고 나면, 실제로 인화하는 것처럼 시간이 걸려서 무한정 찍지 못합니다. 이 앱은 특히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폰을 쥐고 자라온 젊은 세대들 사이 인기라고 합니다.

저는 이 소식을 흥미롭게 보았는데요.

사람들은 왜, 이처럼 무한대로 사진을 찍고 얼마든 저장할 수 있는 시대에 오히려 더 적게 찍으려고 하는 걸까요?

과연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찍고 보관하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각별히 관찰하고, 추억을 간직하고, 더 재밌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될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윌 스티어시 엮음), <궁핍한 날의 벗>(박제가) 등을 지팡이 삼아 ‘찍기와 응시하기’에 대해 해찰해보려 합니다.

1)테드 창의 단편 소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 등장하는 장치입니다. 모든 것을 '라이프로그'로 저장하고, 언제든 키워드만 넣으면 그 순간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동영상 증거'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내가 작년에 둘리랑 같이 떡볶이 먹었을 때 영상 불러줘') 나의 평생 일거수일투족을, 블랙박스처럼 모조리 기록하는 것이죠.

【2.사진 없는 사진첩 : 글로 쓴 사진】

사진가들은 사진 찍기의 ‘프로’입니다. 숙련된 사진가들은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를 들고 멋진 사진을 찍을 절호의 타이밍을 기다리죠.

그런데 이런 사진가들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서도 사진을 찍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요?

윌 스티어시가 엮은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라는 책은 꽤 독특한 컨셉의 책입니다.

이 책은 활발하게 자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진가들이, 자신이 ‘찍은 사진’이 아닌 ‘찍지 않은(못한) 사진’들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책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사진에 대한 책이면서도, 이 책에서 다뤄진 사진들은 단 한장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진 없는 사진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요. 실제 이 책의 부제는 ‘글로 쓴 사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진가들의 특성도 다양하고(보도, 예술사진 작가...) 그들이 맞닥뜨린 상황도 천차 만별인데요.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이들이 기가 막힌 ‘무언가’를 보고도 사진기를 들어 찍는 대신 가만히 그 상태에 머무르기를 택했다는 점이죠.

“사진가들은 어떤 순간에 사진을 안 찍기로 결심했을까? 그리고 그 찍지 않은 ‘순간’은, 사진 대신 그들에게 어떤 감정과 경험을 주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게 됩니다.

'글로 쓴 사진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 책 표지 (왼쪽) 사진가들은 어째서 카메라가 있었음에도 인상적인 장면들을 찍지 않았을까요? / 현실문화, Unsplash

책 속의 다양한 상황에서 사진가들이 “찍지 않기로 한” 이유는 아주 다양합니다.

이런 ‘안 찍기’의 다양한 결을 잘 보여주는 책 속 한 대목을 짧게 소개해보겠습니다.

사진가로서 우리가 내리는 가장 기본적인 결정 가운데 하나는 과연 언제 실제로 우리 앞에 있는 것을 ‘취해서take’ 사진으로 변화시킬 것인지의 문제일 것이다[...](사진을 찍지 않는) 그 순간은 사진으로 ‘찍기take’에는 ‘너무나’ 과도하게 특별한 무엇이다. 너무 위험하거나, 너무 내밀하거나, 너무 즉각적이거나, 너무 복잡하거나, 너무 강렬하거나, 너무 공포스럽거나, 너무 사적이거나, 너무 공격적이거나, 너무 당황스럽거나, 너무 흥미롭거나, 너무 감상적이거나, 너무 정형적이거나, 너무 열광적이거나, 너무 환상적인 순간이거나, 단순히 촬영이 너무나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아론 슈만, ‘사진 찍기의 어려움’(<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 중·이하 동일)

필자는 기본적으로 ‘사진 찍기’란 남길만한 의미가 있고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처럼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거나 ‘너무 ㅇㅇ한’ 상황에서는 사진기를 들지 못하고 그저 흘러가는대로 상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이처럼 ‘너무 ㅇㅇ해서’ 사진을 찍지 못한 경우들이 많이 실려있는데요.

우선 사진가 사이먼 로버츠는 짐바브웨에서 어린시절부터 학대를 받고, HIV에 감염돼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열일곱 소녀 프리실라를 알게 됩니다. 수척하지만 우아함을 간직한 이 소녀는 어느날 그를 찾아온 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요. 노래하는 합창단 아이들과 소녀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사진가는 아이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도무지 이 상황과 복잡한 감정을 카메라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프리실라를 포함해 모든 소녀들이 노래를 부르던 도중 울기 시작했다. 나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냥 물리적으로 그랬다. 사진가로 일하기 시작한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혹시 촬영에 성공했을지라도, 그 사진이 그 순간의 가슴 저미는 아픔을 포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은 어떤 방식으로도 구성한다거나 분석할 수 없는, 혹은 단순화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살아 숨쉬는 순간이었을 뿐이다. 프리실라가 자신의 짧은 생에서 겪은 두려움이나 본인이 곧 이 세상을 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진으로는 전달할 수 없었을 테다.
프리실라는 내가 짐바브웨를 떠나고 몇 주 뒤인 2001년 1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사이먼 로버츠, ‘우리는 곧 다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페루의 루스코 지역을 방문한 사진가 에이리크 존슨은, 수많은 악단들이 떠들썩하게 모여 온 산을 진동하게 했던 기묘한 밤의 정경을 사진으로 “담지 않았”습니다.

땅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과 깜깜한 어둠과 흐릿한 불빛, 떠들썩하고 심산한 불협화음은 사진으로는 전혀 담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몇년 후에도 그 상황에서 자신이 “사진을 찍지 않기로 한 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고, 또 글로 남겼습니다.

나는 텐트 안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적어도 20개는 되는 악단이 경쟁하듯이 멜로디를 연주했다[…]그들은 발을 굴러 스텝을 맞추며 연주를 했는데 그 와중에 늪지를 건너 뛰느라 땅에 살짝 진동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침낭 속에 누워서, 계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퍼져나가는 음악 소리의 장중한 불협화음을 가늠해 보려고 애썼다. 텐트를 박차고 나가 내 청각적 경험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것도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했다면 내가 원했던 바가 과연 사진에 드러났을까?
거의 7년이 다 된 이야기지만, 아직도 온 산으로 울려 퍼지던, 그 기묘한 소리의 뒤섞임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떤 사진도 존재하지 않는다.

-에이리크 존슨, ‘소리의 사진’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느 늦은 밤 공원을 걷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던 오카리나 소리에 한참 귀를 기울였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주변에 인적이 전혀 없고 안개가 살짝 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요. 순간 부랴부랴 핸드폰 카메라앱을 켜려다가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 그냥 눈을 감고 그 자리에 한참 서있었습니다. 설령 동영상으로 상황을 담았어도, 갑자기 이런 오묘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의 감정은 전혀 담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때 사진이든 동영상을 찍지 않은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손바닥을 둥글게 맞붙여 물을 떠옮기려는 것같은 일이었을 겁니다.

【3.우물쭈물했던 순간 : 몰입, 관찰】

사진가들은 어떤 순간들과 맞닥뜨렸을 때, 사진을 찍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장면을 마음에 담아두는 쪽을 택했습니다.

한편 저는 이 책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를 읽으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테마에 주목했습니다. 조금 더 그 상황에 ‘각별하게 몰입(관여), 관찰’하고 싶다는 차원에서 사진을 찍지 않은 경우입니다.

많은 사진가들은 ‘일상’에서도 사진을 찍을지 말지 자주 망설였습니다.

의도치 않은 인상적인 장면이란 때때로 일상에서도 툭툭 튀어나오는 법이니까요. 이를테면 가족 휴가를 갔던 중에, 길을 걷다가, 어린 아이들과 놀아주던 중에, 가족 모임을 하다가 등이요.

이런 상황에서 사진가들이 “찍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 찰나의 순간에 흠뻑 “몰입”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 신비한 상황이라든지 상대방과의 관계에요.

나는 모자 속에 숨겨진 카메라를 늘 꿈꾸었다. 나는 완벽한 구도의 장면들이 내 시야를 벗어나 시작과 동시에 사라져버리는 순간들을 경험하곤 했다[...](하지만) 찍고 싶은 사진은 모조리 촬영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함으로써 나는 작가로서 내 사진의 소재들에 더욱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아이들이 태어나던 그 순간을 남겼다면 그 사진이 지금의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일는지 때때로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그저 카메라를 내려놓는 순간을 본능적으로 인식해 온전히 그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다브 칸더,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할 순간’

이 대목에서, 우선 저는 사진가들 역시 ‘FOMO(Fear Of Missing Out·어떤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글은 나중에 두고두고 곱씹으면 된다 치더라도, 절묘한 사진을 찍을 기회란 훅 지나가버리고 마니까요. 이 때문에 한때 필자는 ‘머리에 써서 모든 장면을 기록하는 장치’까지 가지고 싶어했지만, 오히려 포기할 것은 포기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후엔 한층 절박하지만 신중하게 카메라를 들고 있다고 합니다.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할 순간’을 본능적으로 인식해 그 순간에 머무르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하고요.

저는 처음엔 ‘사진가들이 찍지 않은 사진’에 대한 책의 기획이 다소 엉뚱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사진가들은 사진을 찍는 프로일 뿐 아니라 사진을 찍지 않는 데도 프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순간을 기록 해놓은 사진, 영상 등은 분명 훗날 이를 떠올리는 데는 어느정도 도움이 될테지만, 그것은 결코 ‘대충 흘러가버린 현재’의 보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쌍둥이를 낳은 뒤 - 아이들에게 온전히 정신을 쏟고 싶은 ‘어머니’로서의 자아와,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사진작가’로서의 자아가 충돌하는 경우에 대한 이야깁니다.

모든 것이 바뀐 것은 2004년 8월 19일 남자아이인 에덴과 여자 아이인 엠마누엘, 이 쌍둥이 아이들을 출산하던 때 부터이다[…]그것이 설사 1/125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아이들에게 나는 그만큼의 시간 동안 없었던 셈이다[…]아이들은 너무나 빨리 자랐고,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들이 카메라를 피해 내 눈앞에서 매일 펼쳐졌다. 나는 그 찰나들을 어떻게든 보존해야 했고, 이것은 내가 늘 지니고 있던 욕구였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나는 사진의 대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너무 확고하게 선을 그어버린 대가로 내게 남은 것이라곤 내가 담아내고 싶었던 모든 감정이 빠진 이미지들 뿐이다.

-앨리노어 카루치, ‘사진작가인 나와 어머니인 나의 전쟁’

저는 이 대목에서 ‘1/125초’라는 단어에 주목했습니다.

실은 1/125초란 의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입니다. 그 정돈 없어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비슷한 생각으로 평소 무언가를 하다가 무시로 ‘잠깐’ 멈춰서 사진을 찍고 또 폰을 넣고 ‘하던 것을 그대로’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저는 1/125초는 단순한 1/125초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빨려들어갈 것 같은 소설이나 눈물이 나는 영화를 보거나, 세상에 둘만 있는 것같은 깊은 대화를 하거나, 어둑한 새벽녘에 명상을 하는 등 몰입의 순간에 ‘잠깐’ 폰을 꺼내서 알림을 확인하는 것을 떠올려볼 수 있으신가요?

과연 몰입, 명상의 상황에서 폰을 꺼내어 ‘인증샷’을 찍으면 우리는 저 순간을 더 각별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될까요?(왼쪽) 책을 읽다보면, 어떤 순간은 절묘한 비눗방울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섬세하게 그 상황에 섬세하게 몰입하지 않으면 곧 터져버리고 맙니다. / Unsplash

이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어떤 상황이나 관계, 몰입, 분위기란 일정한 흐름, 혹은 터지기 쉬운 커다란 비눗방울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잠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실은 ‘잠깐’이 아니라는 거죠. 그 순간 미묘한 흐름은 끊겨버리고, 비눗방울은 ‘뾱’ 터져버리고 말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위태로운 낯선 사람과의 관계였다면 ‘위대하고 이상한 우연’이 발생하려다가 말 가능성이 크죠. 폰을 쳐다보느라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해서 - 우리는 그 ‘1/125초’ 동안 무엇을 놓쳤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고요.

한층 더 안좋은 것은, 우리가 폰카메라를 꺼내드는 순간은 - 대체로 지루한 일상 속 ‘무언가’ 미묘함, 매력을 어렴풋이 감지한 상황이라는 사실입니다.

졸린 눈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지며 머리 위에 느낌표(혹은 물음표)가 뜬 상황이죠.

우리는 보통 ‘무언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냄새’를 맡고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관찰, 응시를 시작하게됩니다. 하지만 이때 카메라를 꺼내 그 장면을 찍어버리고 나면, 언제든 이를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 찍는 순간, 안심하며 관찰을 멈춰버리고 마는 것이죠.

저는 이를 독서에 비유하자면, 서가를 돌아다닐 때 왠지 모르게 이상하고 재밌을 것 같은 책을 만난 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인터넷에서 재밌을 것 같은 기사를 발견했거나요. 이때 만약 북마크를 해두고, 혹은 책을 스캔해두고 ‘창고’에 쌓아둔다면 그건 영영 다시 서랍속에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순간의 ‘반짝 흥미’가 무엇이었는지조차 까먹고요.

이런 일은 마치 ‘무언가 안에 재밌는 게 들어있을 것 같은 문’을 열려다가, 매번 문짝 사진만 찍고 지나가버리는 것과 같은 처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편 이 책에서 ‘우물쭈물하는(그러다가 사진을 못찍고 지나가버린) 순간’들도 나오는데요.

한 예로 1990년대 중반, 북아일랜드의 공업도시 벨파스트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포착하기 위해 그곳에서 머무르며 관찰한 한 사진가의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몇 달이나 벨파스트에 머무르며 기회를 탐색했는데요. 어느날, 너무 이상적인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는 망설이다가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지 못하고,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맙니다.

습하고 흐리던 어느 날, 사람들이 나서기 전인 이른 아침에 나는 벨파스트 서쪽의 어느 큰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머리 위에서 지저귀며 날고 있었고, 고독감과 적막감이 나를 감쌌다. 바로 그때 내쪽으로 다가오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의 코트 단추는 잘못 채워져 있었다. 강철빛의 하늘, 은색의 갈매기, 짙은 회색의 코트, 단지 그뿐인 무채색의 장면이었다. 그후로 잠깐동안 갈매기들이 무리를 짓더니 남자 뒤편으로 날아올라서 마치 그와 동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남자의 모습은 강철과 안개로 구축된 이 공업도시의 영혼을 반영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망설였고 카메라는 여전히 내 목에 매달려 있었다. 남자와 나는 어깨를 스치며 서로를 지나쳤다.

이 기억은 이제 10년도 더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이 기억을 바꾸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올바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것들은 필연적으로 수정하거나 소멸시키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이 이미지는 내가 실제로 촬영한 그 어느 사진들보다도 내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곤 한다.

-케일리 데브니, '1990년대 중반 벨파스트에서'

저는 처음에 이 대목을 읽으면서, 훌륭한 사진가들도 역시 가끔은 어리버리하기도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만.

다시 읽다보니 - 저는 어쩌면 사진가가 ‘그 완벽한 순간’에 압도당한 나머지, 사진기로 ‘얻는take’하는 대신, 무의식적으로 그 순간에 머물러 응시, 관찰하기로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눈 앞에 등장한, 자신의 머릿 속에서 고스란히 꺼낸 것 같은 이상적인 사진을요.

【4.카메라 없이 응시하고 머무르기】

이처럼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조차도, 사진을 찍을지 말지를 고민하고 - 때론 사진을 찍는 대신 순간에 머무르기를 택하곤 합니다.

책을 덮으면서 제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사진을 ‘찍을지 말지’에 대해 고민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는 건 사진”이고 사진을 많이 찍어두면 여러모로 나중에 기억해두기도 좋으니까요. 하지만 과연 사진을 찍는 순간 때문에 사라지는 기회, 감정, 관찰, 응시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얼마나 고민을 해보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제가 간단히 살펴보고 싶은 글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가 쓴 유람기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입니다.

‘뜬금없이 한문 기행문이라니?’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를 읽으면서 여러번 떠오른 글이었습니다.

옛날 문학 교과서에서 이처럼 과거 선비들이 어떤 풍경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적어내려간 글들을 보신 적이 있으실텐데요.

그런데 이런 글들을 조금 색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 당시엔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에 강제로(?) 그 각별한 순간을 모두 종이에 옮기는 것밖엔 답이 없었겠죠. 오늘날엔 카메라 없이 여행을 간다는 게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2), 그땐 오히려 카메라 없이 여행하는 것 밖엔 선택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제가(1750~1805) (왼쪽) '묘향산소기'의 배경이 된 묘향산의 풍경. 20세 때 박제가는 이곳을 유람하며 본 것을 글로 적었습니다. wikipedia

이런 생각을 머리에 담고 이 글을 곰곰 다시 읽어내려가다보면, 어떻게 풍경을 보고 이렇게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각별하게 궁리하고 또 관찰할 수 있을까? 하면서 입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글 전체가 굉장히 인상적이지만, 그의 세밀한 관찰력과 아름다운 글솜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을 일부 옮겨 적어봅니다.

천수대는 작은 섬같이 둥그스름하게 길가에 얌전히 앉아 있다. 잘쑥 잘린 고개턱에 어깨가 낄 것만 같다.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은 무릎을 넘는다. 새벽빛이 막 걷히자 단풍 빛깔은 빨간 물이 뚝뚝 듣는가 싶다. 말발굽은 자라같이 하얀 모래 위에 도장을 찍으며 나간다. 여기부터 동으로 긴 숲이 늘어서있다. 역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오른다. 정정한 전나무 다섯그루가 산꼭대기에 은은히 보인다. 거기가 이른바 사절정四絶亭이 있는 곳임을 알겠다.
산등성이가 잘린 고개마다 반드시 고목이 서있고, 그 아래에는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까마귀, 솔개가 뼈다귀를 쪼다가 떨어뜨리고는 고목에 올라앉아 울고 있다. 촌 무당이 나풀나풀 춤을 추며 종이를 찢어 나뭇가지에 잔뜩 걸어 놓았다[...]길을 좇아 들어갈수록 침침한 산 기운에 마치 굴속에 들어가는 듯하다. 길가에 널린 돌들은 기러기 떼가 앉은 듯하고, 바둑돌을 흩어 놓은 듯하다...
-박제가, 묘향산소기 (안대회 역, <궁핍한 날의 벗> 中·이하 동일)

이런 표현을 천천히 입 안으로 굴려가며 읽다보면, 어떻게 어떤 장면을 보고서 이런 유려한 표현이 가능할까 생각하여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을 떠올리고 쓰기 위해선 그만큼 오랫동안 그 장면을 응시하고 그 순간에 흠뻑 젖어들어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런 관찰은 단지 풍경의 겉모습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깨달음, 인간 삶에 대한 통찰으로 종횡무진 이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과거 많은 기행문들은 풍경 유람을 구실삼아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한탄, 깨달음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제가 오늘날 같은 장면을 봤다면, 그냥 “우아, 멋지다!”하고서 스마트폰을 꺼내 ‘찰칵찰칵’, 그리고 같이 간 일행과 함께 ‘찰칵찰칵’을 하고서 다른 곳으로 재빠르게 걸어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묘향산소기는 아래와 같이 끝납니다.

무릇 유람이란 정취를 위주로 해야 한다. 날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아름다운 데를 만나면 바로 멈추고, 지기의 벗을 데리고 마음에 맞는 곳을 찾아야 한다. 분잡하고 떠들썩한 여행은 나의 뜻이 아니다. 저 속된 자들은 선방에서 기생을 끼고 물가에서 풍악을 베푼다. 이야말로 꽃 아래서 향을 피우며 차 앞에 과자를 놓는 꼴이다.
어떤 이가 와서 “산중에서 음악을 들으니 어떻던가?”하고 묻는다. 나는 “나의 귀는 다만 물소리와 스님의 낙엽 밟는 소리만을 들었노라”고 대답하였다.

박제가는 오직 그곳에서 그 순간, 자신의 눈 앞에 있는 풍경에 오롯이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오늘날 이 정도의 ‘집요함’으로 풍경을 관찰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요.

2)카메라 없이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 상상이 안되기 때문에, '카메라 없이 여행을 떠났다'라는 컨셉으로 손글씨와 그림만을 실은 여행기가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참고문헌란을 참고해주세요)

【5.맺음말】

기억은 소중합니다.

소중한 순간에 대한 각별한 기억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다보면 쉽게 잊지 못할, 나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 순간을 만나게 되고 - 우리는 이런 특별한 경험에 대해 두고두고 기억하기 위해 작은 기념품을 간직하거나, 서랍 속에 낡은 사진을 두고 살펴보곤 합니다.

하지만 ‘기억’과 ‘증거’는 다릅니다.

오늘날 폰카로 어딜가나 쉽게 찍곤 하는 인증샷들은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긴 후 내게 자연스럽게 남은 ‘기억’이라기보다는 ‘증거’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모든 삶과 내가 본 것, 다녀온 것을 ‘모조리’ 수집해서 ‘모조리’ 기억하려는 사람처럼요.

어쩌면 이는 단풍이 잔뜩 있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산에 가서, 바닥의 단풍잎 도토리만 줍다가 제대로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한 사람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대체로 삶이 이런식으로 흘러간다고 할 때, 과연 우리가 기억에 남을만한 인상적인 추억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기억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지난해 6월 20일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와중에 홀로 맥주캔을 소중히 두손으로 쥔 채 타이거 우즈의 샷을 바라본 남자 마크 라데틱(사진 맨 왼쪽)의 모습(왼쪽) 그의 모습은 맥주회사에 의해 '굿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티셔츠에는 '어떤 것을 당신이 진짜로 즐길 때에만 가치가 있다It's only worth it if you enjoy it'이라는 문구가 적혔습니다. Getty image, twitter

지난해 6월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가 결정적인 샷을 휘두르는 장면에서, 정작 타이거 우즈보다 주목을 받은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결정적인 샷의 장면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있던 차에, 그는 혼자 양손에 핸드폰 대신 맥주캔을 들고 있었던 것이죠. 모두가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증거를 남기는 데 급급한 세상에서, 상황 자체에 오롯이 집중하려 한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사진을 찍는 순간 - 내가 얻는(take) 것 외에, ‘내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떠올려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무조건 많이, 번잡하게 살펴보고 이것저것 찍고서 마치 그 모든 풍경과 경험이 모조리 내 것이 된 양 안심하는 대신, 그 순간에 충분히 머물러 관찰하고 그 순간을 새겨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는 비단 ‘풍경’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

“나는 이 순간을 고이 간직하길 간절히 원했다. 필름에 특정한 상황을 담는다면 마치 그것이 더욱 실제적인 것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는 나의 이야기가 어떤 모양인지를 시각적으로 밝힌다면 그것이 더 흥미진진해질 것처럼 느꼈다[...](하지만) 그 대신 나는 손을 낡은 나무로 된 피크닉 테이블에 대고 앉아 우리가 잠시 될 수 있었던 존재에 시선을 돌리고 또 귀 기울였다.”

-에이미 앨킨스, '아버지와 함께 한 14분 30초'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윌 스티어시 엮음, 최민정 옮김,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 현실문화, 2013.

-예전에 한 외국 작가의 에세이를 인상깊게 읽었었습니다. 그는 1960년대에 여행을 하면서 대성당들을 많이 보았고 사진을 많이 찍고서는, 그 이후로 여행을 할 때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을 당시엔 그 순간에 집중했다고 생각했지만, 관찰도 제대로 못하고 나중에 남은 것은 '별로 좋지도 않은 사진 무더기' 뿐이었기 때문이죠. 차라리 어떤 순간엔 기억을 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대신 그 순간에 흠뻑 몰입하겠다는 겁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많이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은 수십명의 개성 넘치는 사진작가들이 맞닥뜨린 제각각의 '너무 ㅇㅇ한 순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사진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봐도 ('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읽을거리입니다. 오늘 레터에 적은 내용 외에도 아주 다양한 해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박제가, 안대회 옮김, 『궁핍한 날의 벗』, 태학사, 2022.

-박제가의 산문을 51편 엄선하여 옮기고 엮은 책입니다. 2000년 구판 이후 근래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글들은 오늘날에도 박제가의 글이 읽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촌철살인같은 글들입니다. 오늘 레터에는 분량 관계상 직접 인용은 하지 못했지만, 묘향산소기 이전에 실린 ‘동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라는 글 또한 금강산에서 낚시를 하며 생각을 거침없이 확장해가는 호방함이 돋보이는 명문입니다.

이다, 『내 손으로 치앙마이』, 시공사, 2017.

-이 책의 부제는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카메라 없는 핸드메이드 여행일기'입니다. 부제대로, 이다가 2달간 태국 치앙마이, 방콕에 머무르며 적은 '그림일기 혹은 기행문'입니다. 이 책 외에도 교토 등을 같은 컨셉으로 적어 낸 책이 있습니다.

저도 학생 때 일부러 카메라 없이 스케치북과 펜만 들고 국내여행을 해본적이 있는데요. 하루는 종일 비가 오는 바람에 하루는 대체로 숙소(한옥)에만 있어야 했어서 숙소 그림을 많이 그렸고, 숙소의 장판 냄새와 도톰한 이불의 색깔, 녹색 모기장이 찢어져있었던 것까지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걸 기억해서 어쩔 셈이야 싶기도 한데, 왠지 모르게 다른 거창한 기념물을 많이 보고 블루투스 셀카봉까지 가져가서 사진을 어마어마하게 찍은 해외여행보다도 당시의 여행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김영하 “여행은 몸으로 읽는 텍스트”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2800자

🖍글 속 한 문장

“여행을 떠남으로써 가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텍스트를 읽게 된다고 생각해요. 이 텍스트는 몸으로 읽어야 합니다. 오감을 활짝 열고 듣고 감각하고 맛봐야 하는 것이죠. 우리의 긴 인생, 일상을 압축해 강렬한 경험으로 만드는 게 여행이고, 이걸 다른 방식으로 압축하면 소설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텍스트와 같습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소설가 김영하가 여행에 대한 에세이 <여행의 이유>를 낸 뒤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그는 <여행의 이유>에서 순탄한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여행이든 소설이든 '타자가 되는 경험'이며, 이를 오롯이 체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노바디(Nobody)'가 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위에 인용한 문장은, 인터뷰의 말미에 그에게 "김영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라는데요. 무엇을 시도하고 또 보려고 하든 간에, 새로운 경험에 몰입하겠다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이 꼭 '삶'과 동떨어져있는 경험이라고 할 순 없겠죠.

카메라 없던 시절, 빛을 담은 ‘청사진’

독서시간: 약 8분 / 글자수: 약 4300자

🖍글 속 한 문장

“오랜 기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청사진집이 있다. 제목은 다소 밋밋하다. <영국 해조류 사진(Photographs of British Algae)>[...]앳킨스는 화학물질이 발린 감광지 위에 말린 식물을 올려놓고 햇빛에 노광했다. 식물도감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애나 앳킨스의 청사진 식물도감 작업은 10년 동안 지속됐다. 389종의 식물들이 3부작으로 제작됐다[...]제작 시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애나 앳킨스는 사진집을 최초로 제작한 사진가로 기록할 수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19세기의 여성 식물학자 애나 앳킨스는 10년간 <영국 해조류 사진>이라는 사진집을 제작했습니다. 당시엔 사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일이 복잡한 과정을 통해 ‘청사진’을 제작했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오늘 주로 레터에서 다루었던 일상을 찍는 것과는 그닥 연관이 없지만, 내 눈 앞에 있는 한 '장면'을 제대로 보존하고 기억하는 것이 불과 200년 전만해도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된 계기였습니다. 다양한 사진가들에 대한 심도있는 칼럼을 읽을 수 있는 시리즈(김창길의 사진공책·목차)의 다른 글들도 추천합니다.

일상은 인증이다, ‘ㅇㅈ세대’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2700자

🖍글 속 한 문장

“스마트폰의 편의성과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이 두 가지가 ‘ㅇㅈ세대’를 만들어 낸 원동력이다[...]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요즘 청년들은 ‘소외’ 당하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소외당하지 않고 ‘주목’을 받기 위해 2030 청년들은 SNS라는 창구를 선택했다.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ㅇㅈ세대’의 트렌드는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할 것””

👤김스피의 블라블라

내가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부터 공과금 고지서, 운동 레슨 후 인증샷 등을 찍어 자신의 일상을 남기는 ‘ㅇㅈ(인증)세대’에 대한 기사(2016년)입니다. 오늘날에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폰카라든지 인증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오늘 맺음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 ‘인증하는 순간 혹시 내가 잃고 있는 것은 없을까’에 대한 감각 정도는 가지는 편이 좀더 순간을 풍요롭게 누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인증한다, 고로 존재한다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700자

🖍글 속 한 문장

“이런 인증샷들이 너무 인스턴트적이고 획일적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은 장소, 같은 구도로 찍은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촬영자가 어떤 순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촬영할지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개인이 SNS라는 공개 일기장에 많은 인증샷을 올리면 올릴수록 결국 그 사람의 삶이 시각적으로 구성돼 하나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형성된 ‘개성적인 분위기’는 같은 성향을 가진 이들을 끌어들이며 새로운 사회관계망이 형성되기도 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인증샷의 의미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 고찰해본 사진기자의 글입니다. 인증샷을 통상 너무 획일적이고 얕다고 비판하곤 하지만, 사진은 찍는 순간 ‘어찌됐든간에’ 촬영자의 개성을 반영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풍요로운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앞서 소개한 ‘ㅇㅈ세대’에 대한 기사와 함께 붙여 읽어보며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있습니다.

오늘 레터 본문에서는 인증샷이라는 '결과물'보다는, 인증샷을 찍는 ‘순간’ 주체의 경험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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