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수자들의 주거권을 돌려주세요”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나는 2년여 전에 영구임대아파트 앞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동네산책을 하다가 휠체어 장애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장애인들이 개천가나 공원 곳곳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더 나아가 초여름이 되니 동네 호프집의 파라솔 밑에서 휠체어 장애인들끼리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와 민영아파트 단지들이 있어 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는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미국에 유학 가는 친구의 송별회를 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몇 년째 교정시설에 입소해 있어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늦게까지 놀기도 한다. 이사와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계층,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지혜를 삶속에서 체득하게 한 것 같아 흐뭇하기 짝이 없다.

[가족이야기]“사회 소수자들의 주거권을 돌려주세요”

살아가면서 주거처럼 중요한 것이 있을까? 하루의 삶이 아무리 팍팍하고 고되더라도 돌아가서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집과 공간이 있는 사람은 최소한 “불행하다”고 이야기하면 안된다.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조약에도 주거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 규정돼 있고, ‘대한민국 헌법’과 관련 법률도 각종 주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삶의 터전이어야 할 집이 투기의 대상인 부동산공화국이 돼버렸으니,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공임대아파트를 지을 공간은 없어 보이고, 임대용 다가구·다세대주택, 공동생활가정(그룹홈)도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독립 지연, 폭력 피해자들이 폭력을 피해 탈출하지 않아 폭력이 유지·재생산되는 문제, 애정 없는 파트너들이 소 닭 보듯이 하면서도 헤어지지 않는 불행이 지속되는 이유에는 경제적 문제와 자녀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핵심에 내재해 있는 것은 ‘주거 문제’다. 사실상 가족정책은 가족 밖의 정책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가족 밖 정책 중에서도 주거정책은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는 주거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이야기]“사회 소수자들의 주거권을 돌려주세요”

최근 낙태하지 않고 출산하여 양육을 하는 미(비)혼 한부모가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센서스를 기초로 보면 연간 총 6400∼6500여가구의 미혼모 가구가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혼모 시설에서 퇴소한 후 소위 “처녀가 애를 배 와서 집안망신이다”라는 이유로 원가족과 관계를 단절한 뒤 어린아이를 햇볕도 안 드는 지하 월세방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양육하는 미혼모도 몇 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아이하고 햇볕 드는 집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에요. 그날이 언제 올까요?” 임대주택의 입주 자격·순위 및 가점제도는 정작 이러한 제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문턱이 너무 높게 설계돼 있다.

현재 시각장애인과 뇌성마비장애인이 함께 상호부양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생활공동체는 법이 규정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주택 마련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마을에서 더 나아가 진정으로 다양성이 보장되는 마을공동체가 되는 것은 ‘민법’ 제779조가 규정하는 가족의 범위 밖에 있는 생활공동체에 대한 제도적 지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청년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 폭력 피해자들과 사회적 소수자들의 주거권이 인정되는 가족정책의 변화는 공공임대주택의 규모를 확대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혜택이 돌아가게 할 때 가능하다. 그것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가족이 제대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의미있는 한걸음을 떼게 하지 않을까?

앞으로 20대 중반에 당당하게 ‘독립’을 선언했지만 정작 선배의 대학가 월세방(화장실은 공용)에 얹혀 살다가 백기투항하고 일주일 만에 귀가했던 20대의 나 같은 사람이 2013년 이후에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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